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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규 Nov 17. 2020

코리안 쿨

세계를 사로잡은 대중문화 강국 '코리아' 탄생기

2014년 나는 콜롬비아에서 1년간 공부를 했다.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서 마주한 풍경은 생경했지만, 이내 그들의 문화와 습속에 적응해 그럭저럭 살아낼 수 있었다. 콜롬비아는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나라였다. 오랜 기간 스페인과 유럽인들에게 식민 지배를 당한 나라는 독립을 했음에도 그 식민의 잔재가 문화 곳곳에 남아있었다. 남미, 특히 콜롬비아의 여성을 매력적이라고 한다지만, 이는 사실 백인 지배자들과 원주민들의 혼혈, 메스티소 (Mestizo)의 매력일 뿐, 여전히 사회는 백인들의 후손 위주로 굴러갔고, 원주민은 사회에서 격리된 채 핍박을 받았다. 


그 두 그룹의 경제적 양극화를 뒤로하더라도, 문화적인 측면에서만 봐도 그 빈부격차는 심해졌다. 콜롬비아의 TV 시리즈의 배우들은 대부분 백인이거나, 백인에 가까운 혼혈이었고, 원주민은 어디에서도 대변되지 못했다. 식민성과 자유 민주주의의 공존이 한국과 콜롬비아의 공통점이라면, 그 내재한 문화는 완벽하게 달랐다. 한국의 문화는 그 혼종성을 더욱 정교하게 직조해 다층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한국은 혼종의 나라였다. 한국인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경험과 이데올로기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유교 문화는 여전히 한국인의 내면에서 강력한 도덕적 사상으로 역할을 하고 있었고, 이에 급격한 경제 발전 덕분에 구축된 서구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더해졌다. 서구의 습속들은 '근대성'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수입되었고, 근대 (modern)적인 것은 가장 좋은 것으로 치부되어 유교의 서열 문화와 결합했다. 반세기의 일제 식민시대는 한국인에게 외부에 대한 배타성을 키워나갔다. 한국인은 여전히 서구의 근대적 면모와 근대적 사람들을 갈망하면서도 자신과 다른 특히 자신보다 사회적으로 '낫지 않은' 이들을 배척했다. 


분단 이데올로기는 이 모든 혼종을 더욱 어지럽게 만들었다. 반공이라는 기치로 나뉜 사회는 사회를 양분화했고, 유교와 근대성과 자본주의와 자유 민주주의와 식민성과 페미니즘이 한데 섞인 사회를 만들어냈다. 비로소 혼종의 한국, 코리안 쿨이었다. 콜롬비아에서 시리즈를 보다가 느낀 것은, 한 에피소드에 유독 죽는 사람, 마약을 소비하는 사람, 성관계를 갖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열정의 나라 콜롬비아라지만, 텔레비전으로 표출되는 폭력성은 상상 이상이었다. 기실 대중문화에서 표현되는 폭력성은 그 나라와 일상의 해석이라고 할 수 있었다. 폭력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는 나라에서 폭력적인 장면은 일상의 재현일 뿐이었다. 그런 콜롬비아인들에게 한국의 시리즈는 결이 다른 문화였다. 


한 번은 리서치를 하다가 한국 드라마 팬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 친구들이 이런 말을 했더란다. 한국 드라마는 열 개의 에피소드가 지나도록 사람이 죽거나, 마약을 소비하거나, 관계를 맺지 않아요. 그저 세련된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이 서로의 손을 맞잡을 뿐이죠. 그 섬세함과 현대적 (아마 한국이 성취해낸 근대의 모습일 것이다)함에 사로잡혔어요. 그녀는 아마 한류의 유교적 측면이 녹여진 세련된 자본주의에 반했을 거다. 아, 최근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페미니즘적 가치는 덤이다. 위의 설명이 다분히 문화적인 측면에 치우쳐 있다면 코리안 쿨의 저자 유니 홍은 한류의 성공을 경제적인 측면과 역사적 한국인의 특성에 빗대어 설명한다. 


'이 책에서 논의한 한국의 성공 사례는 거의 다 이렇게 대단히 가부장적이고, 대체로 호의적인 ‘자발적 강요’에 빚지고 있다. 최근 한국이 제조업 분야에서 호황을 누리고, 삼성이 식품업에서 반도체 산업으로 주력 종목을 성공적으로 전환했고, 국가 차원에서 대규모의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고, 대중문화를 전 세계에 수출하는 등의 성과는 한국인의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즉 국가에 이로운 것은 기업에도 이롭고, 기업에 이로운 것은 개인에게도 이롭다는 의식이 성공의 이면에 있었다. 한국인은 수익을 제로섬 게임으로 보지 않는다. 즉, 어느 한 쪽이 다른 한쪽의 희생으로 이익을 얻는 게 아니라 모두가 득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핵심은 이것이다. 한국인은 비록 정부의 뜻에 수긍하지 않거나 기업의 탐욕에 분개하더라도 스스로를 한 국가의 국민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은 자기 주변 사람들의 행복이 자기 자신의 행복에 이바지한다고 믿는다. 이런 의식이 한국이라는 나라 안에 고루 배어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모든 학교는 똑같은 교과 과정을 따른다.' 유니홍 


"지정학적 요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범 아시아적 영향력을 발휘한 다른 나라들은 정치적으로 나쁜 역할도 했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과거에 제국주의 강대국이었고 식민주의자 내지는 최소한 주변 지역의 권력자로 여겨졌죠.” 반면에 한국은 다른 경로를 따랐다. 무력이 아니라 소비재로 아시아를 장악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한국은 신흥시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사람들이 한국은 산타클로스처럼 생각해요. 아시아인은 ‘한국인을 우리 시장에 근사한 소비재를 가져다주는 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을 경제적 점령군으로 여기지 않아요. 천연자원을 싹쓸이하거나 유적을 빼앗거나 그렇지 않으면 막무가내로 문화를 점령하는 그런 무뢰한이 아닌 거죠." 유니홍 


대한민국 인구의 4퍼센트라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2012년에 <슈퍼스타K 4> 오디션에 참가했다. 인구 5000만의 국가에서 한 해에 무려 208만 명이 케이팝 스타 자리를 놓고 경쟁에 뛰어든 것이다. 그에 비해 그야말로 거대 기업 수준인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에는 같은 해에 고작 8만 명 정도만 경쟁자로 나섰다. 이는 미국 인구의 0.03퍼센트에 해당하는 아주 미미한 수다. 이것만 보더라도 한류의 영향력과 한류에 투자하는 정부의 전략이 미래를 바라보는 한국 젊은이들의 시각에 어떤 변동을 일으켰는지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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