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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규 Nov 21. 2020

안나 카레니나

우리가 불행한 이유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Все счастливые семьи похожи друг на друга, каждая несчастливая семья несчастлива по-своему.) 매번 고전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질리게도 하는 말이 있다. 바로 고전을 읽는 건 천 개 피스 짜리 직소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워낙 복잡하고 난해해, 그 인생을 낱개의 키워드로 간추려내는 건 요원한 일이다. 하물며 그렇게 인생을 관통하는 관념들마저 주관적이고 한 사람의 생애가 기반을 둔 문화와 역사에 좌지우지되기 마련이니 하나의 인생을 요약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 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작가들은 하나의 관념을, 그 관념이 뭉쳐 이루어낸 한 사람을, 그 사람이 살아낸 시대를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표현해내려고 했다. 그것이 바로 고전 소설이고, 우리는 소설들을 읽으며 인생이라는 복잡한 퍼즐을 맞추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책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Self-help book을 제외하곤) 읽는 내게 고전은 손이 잘 가지 않지만, 가장 귀하게 남는 책들이다. 고전은 어둑한 방에 전구색 등 하나 켜놓고 예의를 갖춰 읽어야 할 책이고, 움직이는 버스나 지하철이 아닌 반듯한 책상에 펼쳐놓고 읽어야 할 책이다. 


고전들은 각자 하나 혹은 여러 개의 관념을 관통해나가는데, 그렇게 한 권의 고전을 읽으면 인생의 퍼즐 조각 하나를 맞춘 느낌이 들고는 했다.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 가운데,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과 백야,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 루쉰의 아큐정전 등을 읽으며 나는 퍼즐 조각들을 맞춰나갔다. 물론 고전들엔 다분히 서구 '근대성'에 의존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명암이 깔려있다. 정글북의 러디어드 키플링은 백인의 짐 (The White Man's Burden)이라는 시를 통해 서구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찬양했고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또한 미개한 아프리카인들을 교화시키는 서구 유럽의 우월만을 표현해냈을 뿐이다. 서구가 세계의 중심이 된 이후 지식과 문화는 서구에 종속되었고, 그 때문에 다양한 맥락의 다른 문화를 고전으로 접할 수 없다는 사실은 슬프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전은 인생을 알아가는데 좋은 나침반이 되어 준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안나 카레니나는 그 모든 서사를 뒤로하고, 한 인간의 감정을 가장 명확하게 빚어낸 작품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안나라는 러시아 여성의 불륜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개인과 인간 군상의 행복과 불행을 표현해낸다. 안나 카레니나라는 여인의 파국을 지켜보며 우리는, 동정을 느끼다가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이해하다가도 경멸하며 우리 자신과 자신 주의의 삶을 대입시킨다. 톨스토이는 길다면 길지만 짧은 한 권의 책을 통해 타인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애정과 그 덧없음에 관하여,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리는 우리 삶의 행복과 불행에 관하여 명확한 문체로 포착해낸다. 우리는 소설을 통해 안나와 카레닌, 때론 브론스키가 되어 감정의 시작과 끝을 탐닉한다. '안나 아르카디예브나는 책을 읽었고 이해도 했지만 읽는다는 것, 즉 책에 쓰인 타인의 생활을 뒤따라간다는 것이 불쾌했다. 그녀는 무엇이든 직접 체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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