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한규 Nov 21. 2020

그리스인 조르바

가장 자유로운 영혼, 조르바의 발걸음으로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연못가의 비쩍 마른 뇌조가 되기보다는 새장의 살진 참새가 되고 싶다는 사람, 인생의 껍질, 논리와 도덕과 정직성의 껍데기를 깨고 표면으로 뛰쳐나오려는 원시적인 인간. 어린아이처럼 모든 사물과 생소하게 만나며, 영원히 놀라고, 왜, 어째서 하고 캐묻는 사람, 아침마다 눈을 뜨면서 바라보는 나무와 돌과 바다와 새에 놀라는, 만사가 기적으로 다가오는 사람. 그는 조르바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만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그리스인 조르바 말이다. '해는  졌고 언덕들은 희미하다. 내 마음의 산맥에는 아직 산꼭대기에 빛이 조금 남았지만 성스러운 빛이 감돌고 있으니, 밤은 대지로부터  솟아 나오고,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빛은 항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구원이 없음을 안다. 빛은 항복하지 않겠지만, 숨을  거두어야 하리라.' 니코스 카잔차키스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이 있다. 바다, 여자, 술, 그리고 힘든 노동! 일과 술과 사랑에 자신을 던져놓고 하느님과 악마를 두려워하지 않는 하나의 영혼이 있다. 그 영혼은 절대 무겁지 않다. 바스락거리는 종이 따위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영혼은 가볍기만 하다. 그는 언어를 춤으로 승화시키고, 모든 여자에게 추파를 던진다. (과부를 탐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술은 그의 낙이요, 산투르는 그의 호흡이다. 그가 걷는 길은, 비록 휘청일지라도 담대하다. 그 어떤 부질없는 삶보다 굳세고, 아름다우며 생이 가득하다. 그 영혼의 소유자는 바로 조르바이다. 


스무 살 무렵, 삶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할 때면 나는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이곤 했다. 어떤 불확실한 것, 애매 모호한 길의 한가운데에서 애매와 모호의 경계를 찾아 헤매는 느낌. 쓰이지 않은 삶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그와 동시에 심연의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삶은 한순간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오다가도, 어느 순간엔 참을 수 없이 가볍게 날아올랐다. 삶의 역설. 우리는 그 역설을 극복하고자 단어와 문장과 책을 읽고, 성현의 말씀이라며 검정과 하양이 대조된 종이 쪼가리를 머릿속에 쑤셔 넣는다. 조르바에 따르면 기실 그 모든 관념은 쓸데없는 것이다. '조르바에게 복이 있을진저. 조르바는 내 내부에서 떨고 있는 추상적인 관념에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살아 있는 육체를 부여했다. 조르바가 없으면 나는 다시 떨게 되리라.' 


그의 호흡과 산투르 소리에 우리의 영혼은 전율을 일으킨다. 구겨놓은 지식은 해체되고 막연한 생의 위대함을 느끼게 된다. 삶은 텍스트 따위로 거저 얻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고, 술을 마시고, 노동하고, 여자를 만나야만 삶이 성립되는 것이다. 스무 살의 나는 조르바를 만났다. 크레타섬의 조르바를,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났다. 그는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으며 외쳤다. 일과 술과 사랑에 자신을 던져 넣자. 그것이 젊음이란 것이다. 십 년이 훌쩍 지나 다시 책을 읽으며 나는 콜롬비아와 체코, 독일과 아르헨티나, 인도와 한국 땅을 전전해온 한 명의 조르바를 보았다. 나는 적어도 조르바에게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나 카레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