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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규 Nov 21. 2020

영원한 이방인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삶에 관하여

처음 이강래의 영원한 이방인에 관해 알게 된 것은 작년 가을 무렵이다. 대학을 졸업한 지 삼 년, 오랜만에 좋아하는 교수님을 찾아뵐 기회가 생겼다. 학부생일 때에는 수업 너머의 그에 관해 큰 관심이 없었던 내게, 석사를 공부하고 사회에 발을 디디면서 그라는 존재에 관해 궁금증이 일었다. 그는 어떤 연유로 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그가 학부와 석사, 박사에서 어떤 글들을 읽고 써 내려갔을까. 그가 가장 좋아했던 글들은 무엇일까. 학교 홈페이지에서 그의 논문들을 찾아보았다. 독실한 기독교인답게 칼뱅과 관련한 논문이 몇 편, 영문학과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문화 분석 논문이 몇 편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논문이 바로 이 논문이었다. 이창래의 소설 영원한 이방인에서의 분절된 동화와 행위 (Segmented Assimilation and Performance in Chang-rae Lee's Native Speaker). 문득 이창래의 글이 궁금했다. 


먼 타지의 독일에서 나는 소설들로 위안을 받았다. 전공과 관련하여 읽는 책들은 세상을 이해하고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넓은 세상의 모진 풍경은 나를 더욱 우울하게 할 뿐이었다. 그럴 때면 소설들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마주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꺼내든 책, 일상에 치여 오늘에야 끝낸 책이 영원한 이방인이었다. '한국인은 자살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수치 때문에 자살을 하지는 않는다. 어머니는 언젠가 나에게 수난은 가장 고상한 예술이며, 고요하게 견딜수록 좋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입술을 깨물고 이것이 유일한 세계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아마 집요하게 견디게 될 것이다.' 이창래 


영원한 이방인은 사설탐정인 재미교포 2세 헨리 박이 한국계 시의원인 존 강의 뒷조사를 하면서 느끼게 되는 정체성 혼란을 그린 작품이다. 한국에서 명문대를 나왔으나 미국으로 건너온 뒤 야채상을 하며 돈 벌기 위해 전쟁 같은 삶을 살았던 아버지와 언어의 장벽을 끝내 넘지 못하고 늘 주눅 들어 살다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 헨리 박에게 미국은 그런 아버지 세대의 정체성과 재미교포 2세로서 자신의 미국적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땅이다. 그는 미국인이지만 미국인이 아니고, 한국인이지만 절대 한국인이 될 수 없는 이방인이다. 미국의 명문대를 나와 영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면서 미국인 여성과 결혼하는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에서 영원한 이방인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었다. 그의 아내는 그를 이렇게 정의한다. '아주 비밀스러운 사람. 인생에서 B+ 학생, 불법 이민자, 감정이 격한 이방인, 황인종. 근래에 이민 온 사람, 이 세계에 낯선 사람으로 이류인, 배신자, 스파이'. 


그에게 삶이란 동화의 과정이자 그 동화를 행하는 행위의 연장선이었다. 나 또한 체코와 독일, 아르헨티나와 인도를 오가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관해 자주 고민을 하곤 했다. 다른 나라의 사회적 규범과 그 사화가 부과하는 역할을 수행해가는 과정에서 나는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가. 내게 한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창래의 소설을 읽으며 적어도 한 뼘은 재미교포인 그가 평생 느꼈을, 아니 반평생을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에서 교수직을 하는 내 교수님이 느꼈을 그 '역설의 사회화'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결국 모두 영원한 이방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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