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가 마주했던 식민지배의 참상에 관하여
'카스트는 영국 식민지 시대 이전에 특별히 확립되었던 사회 제도가 아니었었다. 물론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여러 변형된 형태가 있었지만, 카스트는 종교적 믿음과 정치, 그리고 보통 당시의 지배자들의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의해서 형성되고 재창조되었던 대체로 유동적인 형태의 사회 조직이었다. 그러나 영국은 카스트 제도와 차별이 인도 사회를 움직이는 데 영향을 주었다는 이론을 널리 퍼뜨렸다. 이것은 어쩌면 인도 사회가 영국 식민 통치 이전에 실제로 어떻게 움직였는지에 대해 아주 편협하게 규정짓는 것이다. 그런데 식민 통치로 인해서 그것은 현재 전통적인 상식이 되었다.' 샤시 타루르
인도에서 한 학기를 공부하면서 마주한 풍경은 빈곤의 일상이었다. 명목 GDP 순위 5위 인도의 위엄은 사라진 채 식민이 선사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샤시 타루르는 그의 저서 암흑의 시대를 통해 그 퇴보를 분석해낸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진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 대국 중 하나였던 인도는 영국의 지배 180년이 지나고 나서 절대적 빈곤에 허우적대는 나라 중 하나로 변한다. 무슬림과 어울리던 힌두들은 어느새 타 종교를 배타하고, 힌두 민족주의의 정당은 집권당이 되어 힌두교의 차별적 사상을 답습한다.
샤시 타루르는 그 모든 퇴보의 역사를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찾는다. 암흑의 시대가 인도에게 남긴 것은 가늠할 수 없는 어둠일 뿐이었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인도의 번성했던 제조 산업의 파괴 위에서 만들어졌다. 섬유 산업은 이와 관련된 상징적인 사례였다. 즉, 영국은 인도의 섬유 산업을 영국에서 생산되는 영국의 산업으로 대체하면서, 인도의 섬유 산업의 제조와 수출을 조직적으로 파괴하기 시작했다. 얄궂게도 영국은 인도의 원자재를 사용하여 완제품을 만들어 인도와 전 세계로 재수출하였는데, 인도의 섬유 산업에는 설상가상이었다.' 샤시 타루르
유엔 사무총장 후보에 올랐던 타루르의 식견은 통계와 사실을 넘나들며 '대영제국'이 만들어낸 식민의 역사를 집어낸다. 인도인의 정체성은 무너졌고, 무슬림과 힌두는 서로를 적대하게 되었으며, 굳건해진 카스트 제도는 서로를 향한 적대와 차별로 치닫게 만들었다. 그의 말마따나 19세기가 끝날 즈음에 인도는 영국의 가장 큰 세수의 원천이었다. 영국의 수출품을 가장 많이 구입하는 나라였고, 영국 공무원들과 군인들 모두는 인도의 자체 비용으로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인도 사람들은 그야말로 자기 자신들의 탄압에 대해 강제로 돈을 지불하였던 것이었다.
그는 인도의 슬픈 식민사를 마무리하며 이런 말을 건넨다. 서구가 했었던 산업화에 대한 인도의 무능력이 인도의 실패 원인이라거나, 인도를 통치했던 영국 사람들의 조직적으로 계획된 의도적인 정책의 결과라기보다는 어떤 일종의 내부의 결함의 결과라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인도가 산업화의 버스를 놓쳤기 때문에 인도의 GDP가 내려갔다면, 그것은 영국이 인도 사람을 바퀴 밑으로 던져 넣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주목할 만한 반제국주의자 월터 스트릭랜드 경은 이제는 절판된 책인 『The Black Spot in the East』의 서문에서 격렬하게 적었다. ‘집에서 이것을 읽는 영국 사람들은 달여 낸 유해한 타닌의 즙을 마실 때, 인간의 살과 피를 마신다는 사실을 반성해야 한다. 그것은 차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활력의 붉은 씨앗이 전혀 없는 노예들의 메마른 피를 마시는 것이다.’' 샤시 타루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