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동물 인간에 관하여
'하지만 허구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성경의 창세기, 호주 원주민의 드림타임 신화, 현대 국가의 민족주의 신화와 같은 공통의 신화들을 짜낼 수 있다. 그런 신화들 덕분에 사피엔스는 많은 숫자가 모여 유연하게 협력하는 유례없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유발 하라리
유발 하라리는 인간을 신화의 동물이라 지칭한다. 인간이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기에 인간은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 신화는 허구의 이야기로서 인간을 타'인'과 협력하게 만들었다. 협업을 통해 인간은 사회를 만들었고 사회에서 문화를 구축해냈다. 그 문화들이 발현된 것이 문명인 것이다. 여전히 인간은 '인권', '돈', '기업', '국가'와 같은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신화 속에서 살아간다. 그 어떤 것들도 실체를 띄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존재한다고 굳건히 믿고, 그 믿음 아래 사회를 일구어 나간다.
인지혁명 이후, 사피엔스는 이중의 실재 속에서 살게 되었다. 한쪽에는 강, 나무, 사자라는 객관적 실재가 있다. 다른 한쪽에는 신, 국가, 법인이라는 가상의 실재가 존재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상의 실재는 점점 더 강력해졌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강과 나무와 사자의 생존이 미국이나 구글 같은 가상의 실재들의 자비에 좌우될 지경이다. 신화와 허구는 사람들을 거의 출생 직후부터 길들여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특정한 기준에 맞게 처신하며, 특정한 것을 원하고, 특정한 규칙을 준수하도록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수백만 명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해주는 인공적 본능을 창조했다.
이런 인공적 본능의 네트워크가 바로 ‘문화’다.' 돈이나 유한회사, 인권과 마찬가지로, 국민과 소비 공동체는 상호 주관적 실체다. 이것들은 오로지 우리의 집단 상상 속에만 존재하지만, 그 힘은 막강하다. 독일인 수천만 명이 독일이란 국가의 존재를 믿고, 독일의 국가 상징을 보면 흥분하고, 국가의 신화를 거듭 이야기하고, 국가를 위해 돈과 시간과 팔다리를 기꺼이 희생하려 하는 한, 독일은 언제까지나 세계의 강대국으로 남을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많은 학자들이 문화를 일종의 정신적 감염이나 기생충처럼 보고 있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새 숙주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바이러스 같은 기생체는 숙주의 몸속에서 산다. 이들은 스스로를 복제하며 숙주에서 숙주로 퍼져나가고, 숙주를 먹고 살면서 약하게 만들고 심지어 죽게 할 때도 있다. 숙주가 기생체를 퍼뜨릴 만큼 오래 살기만 하면, 기생체는 숙주의 상태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문화적 아이디어는 인간의 마음속에 산다. 증식해서 숙주에서 숙주로 퍼져나가며, 가끔 숙주를 약하게 하고 심지어 죽이기도 한다.
기독교의 천상의 천국이나 공산주의자의 지상낙원에 대한 믿음 같은 문화적 아이디어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의 전파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걸고서 헌신하게 만든다. 해당 인간은 죽지만, 아이디어는 퍼져나간다. 이처럼 유발 하라리는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체계들 그리고 그 상징체계들이 구현된 시스템에 관해 이야기한다. 언어, 종교, 돈, 신용 그리고 제국과 자본주의의 발현. 문화와 문명이 신화 속에 구성되었듯 모든 시스템은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서 구현되었다. 실재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허구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