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혁명사
'원칙적으로 사회주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적인 관리와 통제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런데 이게 사라지고 간부들의 공장 사유화 욕망이 불거지면, 결국 오늘날과 같은 야만적 자본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두어야 할 사실입니다. 민주주의 없이, 아래로부터의 적극적인 참여와 감시 없이는 그 어떤 사회주의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러시아 혁명이 준 가장 큰 교훈이 아닐까요.' 박노자
무크(Massive Open Online Courses)의 코세라(Coursera)에서 처음으로 들었던 강의가 캘리포니아 대학교 피터 케네즈 교수의 러시아 역사 강의였다. 83세의 노교수가 가르쳐주는 러시아의 역사는 '레닌부터 푸틴까지'라는 제목으로 혁명의 풍경을 그려냈다. 국제 연구를 석사로 전공하면서 느꼈던 것은, 역사를 알지 못하고는 국제 관계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라와 나라의 관계는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단편적인 지식으로는 그 문화, 사회, 경제적 결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역사는 역시 근현대의 식민-제국주의와 제삼 세계의 비동맹 노선이었는데, 그다음으로 좋아했던 역사가 러시아 혁명사였다. 레닌, 몰로토프, 스탈린, 흐루쇼프, 브레즈네프, 고르바초프 그리고 푸틴으로 이어지는 혁명의 역사에서 나는 인류가 추구했던 이상과 그 이상을 향한 좌절을 엿봤다.
러시아 혁명사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은 역시 앞에서 언급했던 인물 중심의 역사였다. 이상향을 향한 추구와 권력을 향한 암투 속에서 살아남은 혁명의 역사는 사실 전혀 이상적이지도, 혁명적이지도 않았다. 다른 희극과 비극으로 점철된 역사가 그러하듯, 인간 군상이 펼쳐내는 슬픈 드라마는 혁명사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을 뿐이었다. 이런 혁명의 역사를 미시적으로 보기 위해 가장 좋은 책들은 역시, 소설의 형태를 빌린 개인의 서사들이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 등은 개인의 역사를 빌려 혁명의 부조리를 그려냈다.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은 그가 직접 경험한 감옥과 유형 생활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으로 4년간, 죽음의 집 수용소에서 생생한 체험을 담은 살아있는 작가의 기록이다. 작품은 서술적 자아의 체험이 갖는 객관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종종 1인칭으로 수용소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있는 그대로 겪었던 그대로의 사실들을 제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만의 담백한 문체를 더해 개인의 서사를 빗대어 혁명의 부조리와 모순을 들추어낸다. 혁명 속에서도, 여전히 삶은 가장 위중한 것이었다.
'유형 생활 첫해에 느낀 우수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으며, 몸서리쳐질 정도로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이러한 심경 때문에 첫해를 나는 주변의 상황에 대해 많은 것을 모르고 지냈다. 눈과 귀를 막고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지 않았다. 증오에 찬 동료 죄수들 중에서도 거부감을감을 유발하는 외모를 갖고 있긴 해도 사려가 깊고 감정이 풍부한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또한 독기에 찬 말을 하지만 그 속에 아무런 가식이 가미되지 않았으며, 나 이상으로 고뇌하며 살아온 영혼에서 나오는 진가를 가진 온유함과 친절한 애정이 스며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누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겠는가?' 도스토옙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