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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규 Mar 23. 2021

비행사

당신과 나의 역사

'우리는, 우리 각자는, 그저 기억의 조각을 지키기 위해 사는 거야. 영원한 후회와 한 때 존재했음을 알고 있는 어떤 곳에 대한 갈망에 빠진 채, 그곳의 열쇠 구멍에 대한 기억, 바닥의 타일과, 열린 문 아래 닳아버린 문지방에 대한 기억을 지키기 위해,' 니콜 크라우스  


지나간 삶의 궤적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면 종종 불필요한 풍경의 조각을 끄집어내고는 했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 처음으로 맡았던 수영장의 소독약 냄새, 엄마 손을 잡고 탔던 버스에서 바라봤던 색바랜 도시의 풍경들 따위의 이야기들 말이다. 굵직한 사건들로 기억되는 역사에서 사소한 기억들은 아무런 중요성조차 띄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나라는 개인을 이루는 서사였고, 그 서사라는 비행기에 탈 수 있어야만 나라는 사람을, 내가 살아가는 시대를 이해할 수 있을 터였다. 우리의 삶은 무의미한 냄새들과 우연히 귀에 익은 소음들, 자주 눈에 밟히는 풍경들과 같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기 마련이고, 그 의미들 속에서야 우리가 온전해질 수 있기 때문일 터였다. 콜롬비아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런 말을 했더란다.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온전히 기억하는가.  


사실 러시아 문학이나 역사에 대한 내 조예는 깊지 않아서, 처음 예브게니 보돌라스킨의 비행사를 집어 들었을 때 적잖이 당황을 했더란다. 반복되는 어려운 이름들과 교차하는 역사적 풍경은 꽤 불친절하게 다가왔는데, 사실 이어지는 인노켄티의 독백과 같은 일기에 한시름 마음을 놓았다. 소설은 1900년대의 과거와 1999년의 현재를 동시에 살아가는 주인공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러시아 혁명과 볼셰비키의 출현, 그 가운데에서 역사의 풍파를 살아내었던 한 명의 시민. 마치 도스토옙스키가 그렸던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처럼, 주인공은 자신이 살았던 과거를 일기로 그려낸다. 그가 그려내는 과거는 혁명의 전야에 휩쓸려 유쾌하지도, 노동수용소나 감옥의 황폐함에 빠져 절망스럽지도 않다. 다만, 그저 버텨내는 삶의 일부에서 인노켄티가 바라보고 맡고, 들었던 풍경과 순간에 관한 이야기들을 적어나갈 뿐이다. 


'어떤 유명 잡지사에서 나에게 1919년의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기사를 하나 써달라고 연락이 왔다. (...) 그 즉시 나는 편집부 측에 연락해서 내 글이 아니어도 알 수 있는 사건이나 사람들에 대해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미리 말해둔다. 대신 지극히 사소해서 현대인들이 당연하게 여기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말이다. 이런 것들은 모든 사건과 함께 존재하다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사라진다. 이것은 모든 일이 진공 사이에서 일어난 것과 같다.'  


인노켄티는 한 명의 비행사가 되고 싶었다. 비행사가 된다는 것은 사소한 일상을 뛰어넘어 풍경 너머로 들어가는 것.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을 박차고 나와 기억의 저편을 헤집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는 쉬이 역사라는 커다란 격류에 함몰되어 일상의 가장 소중한 풍경들을 잊고는 한다. 하늘에 올라서야 다시 되돌아 마주하는 조그만 빛, 빛과 빛 사이에 우리의 일상들이 있을 터였다. 인노켄티가 몇 번이고 떠올렸던 기억 중엔 비행사 프롤로프의 마지막 비행이 있었다. 나는 그 비행에서 기실 생텍쥐페리를 읽었다. '이제 그는 야경꾼처럼 밤의 한가운데에서 밤이 인간을 보여준다는 걸 알게 된다. 이러한 호출, 이러한 불빛, 이러한 불안을 보여준다는 것을. 어둠 속에 빛나는 소박한 저 별 하나, 그건 외딴집 한 채이다. 깜박거리다 점멸하는 다른 별 하나, 그건 제 사랑에 대해 문을 닫는 집이다.'  


예브게니 보돌라스킨이 소설 비행사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오백칠십일 페이지의 빽빽한 책으로 그려낸 인노켄티의 회상과, 그의 삶에 난입해 들어온 나스챠, 그리고 그 일상을 제삼자의 시선에서 담담히 기록하는 의사 가이거까지. 인노켄티가 헤쳐 온 러시아의 연대기가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사랑, 그리고 우정으로 발전하는 순간부터 역사는 개인적이게 되고, 그 개인의 서사만이 온전한 역사가 된다. 결국 보돌라스킨은 우리의 서사가 하나의 역사라는 것을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우리가 일상적으로 바라보는 풍경들, 그 풍경에 녹아있는 소음과 냄새, 그리고 촉감들이 한 사람의 삶을 이루는 총체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라는 사실을. 우리는 결국 그 역사, 혹은 기억의 조각을 안고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임을 말이다.  


'본질은 바로 이것이다. 얼핏 봤을 때는 워털루 전투는 세계사에서 한 획을 그은 사건이고, 대화는 세계사와는 관련이 없는 것 같기 때문에 워털루 전투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대화는 비교 대상조차 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대화는 한 개인의 역사이고, 그 개인의 역사에 있어서 세계사는 고작 서곡 정도에 해당하는 일부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워털루 전투는 잊혀도, 좋은 대화는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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