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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규 May 17. 2021

가난의 문법

재활용품 수집 노인에 관하여

대학원을 마치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한국의 시위를 데이터화하고 분석하는 일은 석사 논문으로 써낸 이야기와 얼핏 맥락이 통해 있었다. 내 논문은 유튜브가 한국의 정치적 양극화에 대해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였다. 일상의 저변에서 보이는 유튜브의 역할은 사실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기보다도 우리 집에 대한 이야기에 가까웠다. 우파와 좌파, 진보와 보수, 진영으로 나뉜 유튜버들은 보수 코인과 진보 코인을 타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진실은 부차적 서사가 된 지 오래였다. 어뷰징과 조회 수, 후원과 슈퍼챗. 유튜브는 이미 언론의 역할을 방기한 채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 공장이 되어 있었다. 부족한 논문이지만 퇴고를 했고 졸업 시험을 보았다. 내 이름 석 자가 들어간 논문과 졸업장을 마주하며 기분이 묘했다. 인제야 연구자가 된 기분이었다.  


사회를 들여다보는 데엔 참 다양한 시선이 있다. 우리는 그 시선들을 아우른 학문을 사회학이라 하고, 사회학은 사회 그리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연구한다. 처음 석사를 시작할 때 어떤 논문을 써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도처에 존재하는 불평등, 그 불평등이 기반을 둔 사회 구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산더미였다. 계급과 계층과 성별과 인종과 가족과 법과 규칙, 커다란 주제들은 일상의 맥락들에 쉬이 쓸려 지나갔다. 모든 첫 번째 소설은 자서전일 수 밖에 없다는 김연수의 말마따나, 사실 모든 첫 논문도 자전적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제일 관심이 가는 주제, 나의 피부를 건드리고 그 피부 너머에서 떨림을 만들어내는 주제들, 그게 내겐 보수 태극기를 들고 광장과 거리로 나온 어르신들이었다.  


내가 그렇게 태극기를 든 노인들에 관심을 두는 동안 소준철은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들에게 관심을 두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가난의 모습은 늘 변해왔다. ... 게다가 노인이 된 상태에서 생계를 위한 유일한 지구 책은 노동뿐이지만, 사회적으로 노인의 노동을 금하기만 할 뿐, 이에 대한 지원은 딱히 없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들은 생존을 위해 자연스레 제도 바깥의 노동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만들어진 생존 경로가 바로 폐지를 줍는 일 (재활용품 수집 노인의 등장)이다.' 그에 따르면, 노인 세대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비중이 가장 높다. 노인들은 사회보험 제도가 정착하기 전에 노인이 되었고, 종사하던 업종이 노화되어 생계가 어려워지기도 했다. 그렇게 등장한 생존 경로가 바로 재활용품 수집인 것이다.  


'13시. 한여름 날의 오후, 골목에는 노인만 있다. 이 시간, 청년들은 돈을 벌러 쫓기듯 동네를 떠나 있고, 어린아이들은 학교로, 학원으로 떠나 있다. 남은 건, 직장이 없는 노인들이다. 골목 어귀의 나무 아래 작은 평상에는 노인들이 더위를 피하러 나와 있다.' 책은 일흔여섯의 윤영자 씨의 일상을 담담히 그려낸다. 작가가 인터뷰와 리서치를 통해 만들어낸 가상의 여성 노인 윤영자 씨는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재활용품 수집 노인의 일상을 보여준다. 그는 윤영자 씨를 통해 위험이 집중되는 존재인 '여성 노인'의 삶을, 그녀들이 겪어 왔을 '출생'과 '진학', 그리고 '취업', '결혼', '육아', 그리도 '자녀와의 분리'로 이어지는 생의 경로를 보여준다. 그들은 어떻게 폐지를 줍게 되었는가. 그들의 노동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따뜻하고 집요한 시선으로 소준철이 그려내는 윤영자 씨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통계 너머의 그네들의 삶이 얼핏 보이는 듯하다.  


'그러므로 여기에 대한 대답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재활용품 수집 노인의 일을 다른 것으로 전환시킬 방법은 사실상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선해야 할 일이란 노인들이 일을 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일이며, 그를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 사회의 합의를 끌어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재활용품 수집 노인은 무주물인 자원을 획득해 소득으로 전환하는 일을 하는 이들이다.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이 소득을 '재활용품 판매'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획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노인들이 (일을하지 않더라도) 더 나은 기초소득을 가질 방법을 고민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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