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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규 Nov 21. 2021

결국은 삶과의 싸움

어릴 땐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십 대의 나는 독서 편력이랄 게 없어서 문학과 비문학의 경계를 벗어난 독서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나 자신을 주인공에게 이입할 수 있는 소설이었다. 회색빛으로 점철된 고등학생의 삶을 잊을 수만 있다면 뭐든 좋았다. 나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영미문학을 탐독하며 십 대를 보냈다. 그때 형성한 세계관은 여전히 굳건하게 내 삶의 버팀목이 되어준다. 한 권의 책에 한 권의 삶, 나는 책을 통해 삶에 대해 배웠다.


스무 살이 되고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서는 쉬지 않고 썼던 거 같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글 마려운 나날들이 이어졌다. 사실 글은 나를 토해내는 배설 창구와 같았다. 치기 어린 겉멋의 발현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꾸준히 토해냈고, 계속해서 나의 삶을 기록해갔다. 다시 돌아보면 부끄러운 글들이지만, 나는 그때의 글들을 사랑한다. 스키니 진을 입고 십자가 귀걸이를 찰랑거리며 홍대 클럽을 드나들었던 스무 살의 나를 보는 듯한 글. 유치하고 가볍고 쓸데없는 글들이지만 애정한다. 그것도 결국 나였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프라하에 이 년을 살았다. 그사이 나는 더 많은 책을 읽었고, 동시에 두 권의 책을 내었다. 모든 날숨이 들숨을 필요로하듯, 나는 꾸준히 읽고, 보고, 배우고, 느끼고, 맡고, 먹고, 듣고, 사랑했고, 그 들이쉼으로 부족한 글들을 써 내려갔다. 부끄러운 두 권의 책들은 이십 대의 나를 기록으로써 박제했다. 나는 다만 내가 들이쉬는 것들을 내쉴 뿐이었다.


서른 해를 넘게 살았다. 독일과 아르헨티나, 인도를 오가며 석사도 했다. 다양한 삶의 풍경을 직시했고, 그 삶과 부대껴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쓸 게 없다. 아니, 여전히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정답이다. 삶에 치열하지 않으면 글이 나오지 않는다, 라는 말을 써본다. 내가 여태껏 내가 아닌 타인들의 장소와, 타인들의 도시에 관해 이야기했던 까닭은, 사실 나에 대해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내 삶과의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삶을 살며 어떤 방법으로든 글을 쓴다. 그것이 기획서이든, 보고서이든, 짧은 이메일이든, 연인에게 보내는 문자이든 간에 우리의 생각은 활자로 나열되고 타인에게 전달된다. 그 순간순간은 매력적이지만, 그것들을 하나의 작품으로 엮어내는 것은 이야기다. 삶의 묻어나는 이야기, 누군가에게 가닿을 수 있는 이야기, 사실 나는 한 사람에게라도 닿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자신의 삶을 똑바로 바라보고 싸워내는 사람만이 쓸 수 있었다.


애정해 마지않는 심리학자 수디르 카카르는, 식민지배 치하에서 인도인의 정신세계를 분석한 책을 이렇게 시작한다. 'I will tell you a story.' 나도 이 짧은 글에 온점을 찍으며 하나의 문장을 덧붙일까 한다. 나 자신의 삶과의 싸움에 앞서, 이야기 하나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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