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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노무브 Dec 17. 2021

먹고 입고 자는 모든 순간의 플라스틱 프리

책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리뷰(2)

물건의 일생을 추적하는 ‘물건 이야기’ 프로젝트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세상을 바꾸는 사람'을 6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놓고 있습니다.

   

싸움의 최전방에서 목소리 높여 외치거나 일인 시위에 나서는 저항자 (register)

점처럼 흩어진 사람들을 연결하고 참여자에게 긍정적 영향과 영감을 주는 네트워크 (networker)

관계를 보살피고 다른 사람 감정에 귀 기울이고 간식을 준비하는 등 살림을 챙기는 살림꾼 (nurturer)

정보를 찾고 질문을 던지고 답을 탐구하는 조사관 (investigator)

다양한 방법으로 이야기를 퍼뜨리고 참여를 부추기는 전달자 (communicator)

재생에너지 기술, 텃밭 만들기, 재활용 플라스틱 제품 등 직접 대안을 만들어내는 제작자 (builder)


 여러분은 어떤 유형에 속하시나요? 딱 맞는 유형이 없으신가요? 하나의 유형에 꼭 맞을 수도 있고 여러 유형을 넘나드는 성향일 수도 있겠지요. 어떤 모습이든 스스로가 어떤 유형인지 알고 나와 다른 유형의 사람들과 함께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면 좋겠죠?

 저자는 혼자 맨몸으로 부딪히다가 ‘나만 잘해서 무슨 재민겨’라는 생각으로 뭉친 사람들이 함께 시스템의 구멍을 메워가길 바라 본인의 일상들을 책으로 기록해두었다고 합니다. 책『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리뷰, 지난 글에서는 플라스틱의 유해성과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삶을 함께 하자는 실천팁들을 정리해봤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깨알같이 쓰여진 저자의 ‘플라스틱 프리 일상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우리 중 누구도
탄소, 수소, 산소, 햇빛, 석유, 석탄을 만들어내지 않았고, 만들어낼 수도 없다.
오랜시간을 거친 지구 덕에 선물처럼 누리는 산물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자연을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이다.





슬기로운 '의'생활 : 옷들의 순환


저자는 플라스틱의 미친 효율성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가능케 했으며 이 때문에 옷을 많이, 자주 사고 있으며 소유하는 기간도 크게 줄었다고 짚습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합성섬유가 아니었다면 의복이라는 개념은 지금보다 훨씬 귀하고 값어치가 높은 재화였을 겁니다. 한 번 사면 잘 다루고 보관하며 오래 써야 했겠지요. 면이나 마 같은 식물성 섬유 혹은 동물의 털로 만든 소재가 대부분의 옷의 재료가 되었을 테니까요.


우리 몸의 70%는 물로 이뤄졌지만, 옷 신발 가방 등 몸에 걸친 70%는 석유화학에서 뽑아낸 플라스틱이다. (...) 합성섬유에는 3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유해성, 둘째는 과도한 생산과 폐기물 발생, 셋째는 미세플라스틱이다. 화석연료에서 뽑아낸 합성섬유도 플라스틱에 속하므로 유해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123-124page)


플라스틱수프재단의 연구에 따르면 세탁기로 옷을 빨 때 폴리에스테르 재킷은 100만, 아크릴 스카프는 30만, 나일론 양말은 13만 개의 미세섬유*를 낸다고 합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옷은 세탁할 때마다 상당량의 미세플라스틱을 배출하게 되는 것이지요. 세계자연보호연맹에서는 전 세계 미세플라스틱 오염의 35% 정도가 합성섬유를 세탁할 때 나오는 미세섬유일 거라고 추산합니다. 국내 한 언론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 세탁량에 대입했을 때 1년에 1천톤이 넘는 미세섬유가 나온다고 합니다. 우리 곁에 있는 강과 바다에, 모든 물에 얼마나 많은 미세플라스틱이 부유하고 있는 걸까요.


*미세섬유 : 가늘고 긴 형태의 합성섬유 입자로, 플라스틱으로 만든 의류에서 떨어져나오는 미세플라스틱

사진작가 mandy barker 의 작품 'SOUP : Alphabet' (출처 : https://www.mandy-barker.com/soup-2)
옷 입는 행위로 동물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도 않고 바다에 미세플라스틱을 흩뿌리고 싶지도 않다. 버려진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섬유 제품들, 합성섬유를 빨아도 미세섬유가 나오지 않는 기술, 미세섬유를 걸러내는 세탁기 필터 망이 필요하다. (127page)


저자는 옷을 빨 때 조금이라도 미세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갖가지 방식을 검색하고 시도해 본 결과, 합성섬유 입자를 걸러주는 구피 프렌즈라는 세탁망을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술의 진보를 목빠지게 기다리고는 있지만 당장에는 개인의 노력밖에 답이 없기 때문이죠. 다만 이 때문에 동네 중고 가게에서 천연섬유 의류를 찾기 위해 옷 안쪽에 달린 라벨의 섬유 조성을 꼼꼼히 읽는 습관이 생겼고, 그러다 질 좋은 중고의류를 운좋게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적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식'생활 : 일회용 플라스틱 퇴출


미세플라스틱은 모든 합성수지 제품에서 나온다. 일회용 컵, 포장재, 빨대, 칫솔, 신용카드, 인조 잔디 등 끝도 없다. 도로를 굴러가는 자동차 타이어에서도 마모된 합성 고무 입자가 나와 빗물을 타고 바다에 이른다. 건물 벽이나 바닥에 칠해진 페인트에서도 입자가 떨어져 미세플라스틱이 된다. 담배 필터는 국내에서만 하루 1억 8800만 개비가 버려지는데 그 안에도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라는 플라스틱이 들어있다. (...) 비닐봉지 한 장만으로도 웬만한 광역시 인구보다 많은 약 175만개의 미세플라스틱이 생긴다. (129page)


저자는 전 세계 수돗물 샘플 중 70~98%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뉴스를 듣고 이제 망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은 물 흡수를 통해 성장하니까요. 물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나오는 지경이라면 세상 모든 먹거리가 오염되었다고 추정해도 무방할 겁니다.


더 무서운 건 미세플라스틱이 워낙 작고 가벼워 미세먼지처럼 공기 중에 떠다닌다는 사실이다. 미세먼지도 노답인데 미세플라스틱까지 코로 들이마셔야 하다니. (...) 인터넷으로 미세플라스틱 섭취 줄이는 방법을 찾아봤다. 나오는 건 오로지 플라스틱 사용 줄이는 방법뿐. 그러니까 미세플라스틱을 원치 않는다면, 특히 아이들에게 미세플라스틱 밥상을 넘기고 싶지 않다면 할 일은 하나뿐이다. 일회용 플라스틱 이제 그만. (131page)


미세플라스틱은 그 자체로도 위험하지만 주변의 유해물질을 흡수해 독성을 띌 가능성을 내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야 미세플라스틱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유해성은 아직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죠. 알 수 없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방법은 위험한 물질을 더이상 배출하지 않는 것. 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유기농 채소에서도 해산물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을 피할 수 없다면, 미세플라스틱 이제 그만 내보내기!


온갖 종류의 플라스틱이 바다에서 나오고 있다 (이미지 출처 : 그린피스)




심플 라이프 '주'생활 : 물건 다이어트


새 물건을 소비함으로써 취향을 실현하는 방법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입바른 소리를 하련다. 꼰대처럼 들려도 말이지. (...) 한 개인의 선택과 취향이 곧 쓰레기로 변할 자잘한 소비로 구현되어야 할까. 해결책은 다른 욕망을 갈고 닦는 것. 애초에 '지지 않을' 다른 선택과 취향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134page)


저자는 플라스틱과 유해물질에 반대하는 환경 활동가이자, 심플 라이프를 사랑하는 독실한 미니멀리스트지만, 동시에 탕진잼과 소확행을 통한 한 줌의 여유를 포기하기는 정말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림살이와 삶의 자세를 돌아보자고 제안하며 다른 방식의 탕진잼을 시도해보자고 권합니다.


물건을 찜해 놓고 두고두고 아껴 먹는 심정으로 일주일간 뻔질나게 보다가 지른다. 사고 싶은 물건을 두고만 보는 인내가 고달플 것 같지만 한번 맛 들여보시길. 욕망을 지연시키다 확 성취하는 만족감이 완전 꿀이다. 보고 또 보는 동안 팔랑귀 같은 마음이 식거나 더 마음에 드는 물건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취향을 한껏 다듬어 진짜 취향을 반영한, 오랫동안 곡진히 사용할 물건을 건질 수 있다. (135page)


저자의 일상에는 중고물품에 대한 애정도 드러나 있습니다. 중고물품 덕에 단조로운 취향과 스타일을 벗어나 평소에 시도하지 않던 스타일링을 해보는 즐거움을 알게 된 데다, 실패에 대한 무게감을 덜고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장점도 강조하는데요. 이를 통해 오히려 내가 몰랐던, 나에게 잘 어울리는 진짜 나다운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 최고의 탕진잼을 느낀다고 경험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공짜로 주고 받거나 부담 없는 가격의 중고 물건은 다양한 스타일에 도전할 용기를 준다. 망망대해만큼이나 실패할 자유가 넓고도 깊다. 취향도 실험하고 시도해 봐야 길러진다. 중고 가게에서 배꼽 크롭니트, 트로피칼 헤어밴드, 히피풍 귀걸이 같이 제값 주고는 못 샀을 아이템을 맘껏 지를 수 있었다. 샀다가 실패하면? 중고 장터에 내놓거나 주변 물건 돌리기 멤버들에게 나눠준다. 이때 드는 시간과 비용이 탕진잼 비용인 셈이다. (137page)
서울 동교동의 중고의류매장 '마켓인유' 직접 매입한 옷 중 깨끗한 옷을 골라 판매한다 (출처 : 마켓인유)


마지막으로 저자는  '물건 총량제'의 대원칙을 꼭 지킨다고 쓰고 있습니다. 탕진잼을 누리면서도 심플 라이프를 유지하기 위해, 집 안 물건의 가짓수를 제한하는 스스로와의 약속인 셈인데요. 원하는 물건은 집에 들이되, 들인 만큼 다른 걸 내놓아야 하는 원칙이라고 해요. 내놓을 수 있는 게 없으면 새로운 물건을 들이고 싶은 마음도 참아야 하는 것이지요. 되도록 자주 청소하고 때마다 쓰지 않는 물건을 구분하여, 주변의 필요로 하는 타인에게 나누고 있으며 반복해서 소비하는 생필품의 경우에는 최소한의 가짓수로 최소한만 사용하자고 제안합니다.


필요없는 물건은 공손하되 단호히 거절한다. 분리수거함 옆에 안 쓰는 물건용 박스를 두고 수시로 물건을 처분한다. 처분이란 동네 중고 가게에 기증하거나 아는 사람들과 나눈다는 뜻이다. (...) 쟁여두지 않고 청소할 때마다 안쓰는 물건을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면 자연스레 정리 수납 전문가가 된다. 화장품과 세제라면 최소한만 쓰는 심플 라이프가 딱이다. 나는 기초 화장품은 보습제와 선크림만 바르고 모든 살림을 2~3종의 세제로 끝내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약산성 비누 하나로 씻는다. (139page)


뭔가를 사기 전에 정말 필요한지 자문하며
의식있는 소비를 하는 습관이 제일 중요하다









물건 총량제라는 원칙을 세워두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저자의 일상을 읽으며, 언젠가 접했던 리얼리티 쇼의 제목이자 정리수납 전문가 곤도 마리에의 말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물건을 만졌을 때 설레지 않으면 버리세요" 라는.

짐을 싸며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있는 조그마한 방에서 나온 짐이 이렇게도 많을 수 있구나' 싶었던 이사하던 날의 기억도 떠오릅니다. 동시에 우리가 지구에 얼마나 많은 짐을 쌓아두고 있는 걸까 싶기도 했습니다. 바다에 떠도는 플라스틱이나 심해에 가라앉은 유리, 고철 뿐 아니라 도시의 수많은 빌딩들, 부서지고 또 새로 지어지며 위로 더 위로 올라가는 건축물이나 숲을 베어내고 지어지는 공장들. 지구에도 물건 총량제가 있을 텐데 너무 거대한 짐을 지우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요.

 늘어나기만 하고 분해할 수 없는 플라스틱은 이제 정말 그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하게 됩니다.

그러나 너무 지치지 않도록.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꾸준히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자고 전하고 싶습니다.






플라스틱 제로 슈퍼마켓(왼쪽) 출처 : 오리지날 운페어팍트 홈페이지 / 대형마트(오른쪽) 출처 : 그린포스트코리아



"인생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선을 긋는 문제이고,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지는 각자가 정해야 해. 다른 사람이 선을 대신 그어줄 수는 없어.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규칙을 지키는 것과 삶을 존중하는 건 같지 않아." 
                                                     
                                                                                                 존 버거,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중에서



저자는 위와 같이 소설가, 존 버거의 책 중 한 부분을 인용하고 그 아래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택을 북돋아주는 친구들과 함께. 한 발짝씩. 천천히."



다른 사람이 대신 선을 그어줄 순 없다.
마음이 동해서 스스로 움직일 때까지 우선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해보자.

나머진 그 선택을 북돋아주는 친구들과 사회적 제도들에 기대면서
한 발짝씩, 안단테.




커버 이미지

출처 : 내셔널지오그래픽 'Plastic or Planet' 캠페인 영상


참고 자료


도서.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고금숙. 슬로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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