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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노무브 Jan 07. 2022

로컬 컨텐츠가 전국에서 읽히는 비결, 매거진<iiin>


제주에서, 제주의 로컬 크리에이터들에 대한 이야기와, 제주만의 로컬 이야기를 담는 잡지가 있다는데요. 종이잡지 저성장시대 속에서도 한번에 1만 부를 인쇄하는 데다, 찍을 때마다 완판이 된다는 유명 매거진. 제주를 여행하며 혹은 제주에 머무르며 서점에서, 카페에서 혹은 숙소에서 제주를 알기 위해 집어든 책자 꾸러미들 속에 '인(iiin)'이라는 제목의 잡지를 접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매거진 <인iiin>의 2020년 전권. copyright(c) 재주상회. (출처 : 매거진 <iiin> 인스타그램)


매거진 <인iiin>은 해마다 네 번, 계절의 흐름에 따라 제주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담는 계간지로 제주 내 100여 곳이 넘는 카페, 상점, 게스트하우스 및 전국의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잡지입니다. 매거진의 이름인 '인iiin' 은 "I'm in island now"의 약자이기도 하고, 제주말로 "인(있다)"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주의 젊은 세대들이 '거기 인(거기에 있니)?' 하는 식으로 흔히 쓴다고 하는데요. '제주가 이 안에 있다'는 의미를 담은 매거진이라고 합니다.



제주 해녀와 돌하르방이 그려진 매거진 <iiin>의 잡지 커버. copyright(c) 재주상회



제주라는 정체성을 토대로 짓고 담는

제주만의 고유한 과거와 지금의 이야기


매거진 <인iiin>은 컨텐츠 큐레이션 기업 '재주상회'에서 2014년부터 발행하고 있는 정기 간행물로 '원래 제주의 것'에 관심을 가지고 '제주에 살면서 알게 된 제주의 이야기들을 친구에게 들려주겠다'는 철학을 기반으로 컨텐츠를 만들고 엮고 있다고 해요. 예를 들어 제주의 봄은 사람들이 다 고사리를 따러 가서 기 동네가 조용하다는 이야기를 소개하며, 고사리를 따러 가기 위한 여정을 소개하는 '고사리 특집' 기획을 통해 고사리의 다양한 종류와 고사리에 얽힌 제주의 삶을 전하기도 하고요.


2019년 겨울에는 제주에서 광어가 너무 많이 잡힌 적이 있다고 해요.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지역 내 수협에서 광어를 사서 폐기해야 할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이때 매거진 <인iiin>은 겨울호 부록에 광어로 할 수 있는 요리들을 소개하는 미니북을 만들어 최대한 지역 안에서 광어가 소비되도록 안내하고 독려했다고 해요. 광고비를 받기 위함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이라 생각해서 결정하고 추진한 기획이라고 하니 지역과 지역주민들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느껴지죠.


할망상담소 컨텐츠 소개를 위한  지면 홍보 (출처 : topclass)


또 제주 고유의 언어를 쓰는 어르신들이 줄어듬에 따라 제주어가 점점 사라져가는 현상을 우려하여 제주어를 소개하고 알리는 '제주어 특집' 컨텐츠를 기획하기도 합니다.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제주어를 안내할 뿐 아니라 명맥이 끊겨가는 제주의 지금에 대해서도 이슈화를 하기 위함이라고 해요. 이처럼 단기적인 문제해결 혹은 장기적인 이슈대응을 위해 그때그때 필요한 이야기를 싣는가 하면, 제주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할망상담소 : 할망에게 고라봅서' 같은 코너도 연재하는데요. 독자들이 보내는 소소한 고민에 제주의 할머니들이 보내는 현답을 싣는 형식으로 구성한 시리즈라고 해요. 깨알같은 지혜와 제주만의 이야기가 묻어나 지역주민들 사이에 소통을 이뤄내며 매거진 <인iiin>에서 가장 인기있는 코너로 꼽히고 있다고 해요.


제주의 콘텐츠는 오래된 책과 사람에게 있어요. 사람 중에서도 ‘할망’이라고 생각해요. 아카이빙 작업 중인 제주 해녀 한 분이 치매에 걸렸어요. 이들의 기억이 하나씩 사라지면 제주의 이야기가 그만큼 없어지는 거예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옛 제주 이야기를 모으는 게 우리 일이에요.

                                                                       고선영 | 재주상회 대표 'topclass 와의 인터뷰 중에서'








제주의 로컬이 모이는 플랫폼

로컬 컨텐츠로 제주를 리브랜딩


매거진 <인iiin>은 잡지 발간만으로는 독자와 직접적으로 만나고 소통할 수 없다는 한계에 아쉬움을 느껴, 제주만의 이야기를 담은 오프라인 공간도 운영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사계생활'이라 불리는 이 문화공간에서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창작물을 전시, 판매하기도 하고 다양한 로컬 라이프스타일 컨텐츠와 굿즈 상품, 식음료 등을 제공하고 있다고 해요. 매거진 <인iiin> 안에서 '콘텐츠뮤지엄'으로 소개되었던 로컬 컨텐츠를 실재하는 공간으로 구현하는 작업인 거죠. 제주만의 가치와 의미를 담은 창작품을 만들지만 유통이나 브랜딩에 어려움을 느끼는 창작자들과 협업을 하는 것과 동시에 잡지에도 소개하여 온오프라인으로 로컬 컨텐츠를 알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해요. 로컬 컨텐츠 뿐 아니라 로컬 크리에이터들과의 상생도 게 여기는 재주상회의 가치관이 엿보이죠.


40년 넘은 안덕농협 건물을 개조해 만든 문화공간 ‘사계생활’ (출처 : topclass)


마을 중앙에 위치한 오래된 농협 건물을 개조해서 만든 '사계생활' 문화공간에는 지역에 오래 살던 사람도 제주로 여행 온 사람도 제주의 이야기와 직간접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다녀간다고 해요. 1층은 전시 및 카페로 사랑방 같은 공간으로 활용하고2층 공간은 디지털 노마드족을 위한 공유 사무실로 개방해놓고 있다고 하는데요. 여행자들을 위한 카페, 숙소, 식당 정보를 정리한 팜플렛을 제공하는 데다 제주만의 이야기를 담은 컨텐츠를 만나볼 수 있는 간행물과 전시, 지역 특산물로 만든 가공식품과 굿즈까지 만나볼 수 있으니, 지역주민에게도 여행자에게도 제주에 관한 지역문화발전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같죠.


사계생활에서 열린 '돌고래와 바다와 그들' 전시(오른쪽)와 매거진 내용을 전시한 '제주온더테이블'(왼쪽) 출처 : copyright(c) 비로컬.


뿐만 아니라 매거진의 독자나 지역 사람들과 대면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고 컨텐츠가 확장되면서, 제주의 로컬 식재료와 로컬 생산자를 소개하며 다양한 식문화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는 '사계미식회' 같은 프로그램도 운영하고요. 제주의 로컬 푸드로 완성한 밀키트, 레토르트 식품 등을 정기적으로 받아볼 수 있는 정기구독 서비스 '계절제주'도 운영하고 있다고 해요. 또 제주만의 식문화를 연구하기 위한 연구소 '인테이블'도 운영하고 있어요. 잊혀져 가는 식문화와 지역 내 가치있는 원물, 식재료를 아카이빙하고 참여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컨텐츠와 프로그램을 만들어 제주만의 로컬을 알리고 레시피와 식품을 연구 개발하여 유통하고 있다고 합니다. 매거진 <인iiin>에서 출발해서 온오프라인으로 연결되며 통합되는 제주 로컬 이야기들의 컨텐츠 공작소이자 집합소인 셈입니다.


<재주상회>는 제주의 이야기를 다양한 콘테이너에 담아 표현하고 있다. copyright(c) 매거진 iiin 인스타그램





제주의 삶이 담긴 로컬 컨텐츠를

이 시대의 언어로 가공하는 지속가능성


10년 넘게 여행기자로 일했던 고선영 재주상회의 대표는 일을 위해 세계 유명 도시를 옮겨 다녔다고 합니다. 각 도시에 머무르다 보면 그 지역만의 고유한 로컬 이야기를 기록하고 알리는 잡지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연 천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들르는 제주에, 세계 여느 도시마다 있는 그 도시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정기 간행물이 없다면, 누군가 꼭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고민을 거듭하다 본인이 직접 제주에 정착해 매거진을 창간하게 되었다고 해요.


매거진 <인iiin>의 2016년 전권. copyright(c) 재주상회


매거진 <iiin>은 새로 생긴 카페, 맛집, 사진 찍기 좋은 명소 같은 트렌드보다 제주에 살고 싶거나 제주의 삶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컨텐츠를 담는 잡지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합니다. 제주를 대표하는 간행물로서의 책임감이자 역할이기도 하죠. '제주의 가치있는 것을 매거진으로 담은 후 오프라인으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이 시대의 언어로 '로컬하게 만들어 힙하고 글로벌하게 완성하겠다'는 고선영 대표의 다짐처럼 매거진에 실린 제주의 이야기도 독자들에게 대면으로 가닿기 위한 오프라인 공간과 플랫폼도 그 철학을 놓치지 않아 믿고 접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매거진 <iiin>은 현재 과월호도 구하기 어려운, 전국에서 유료로 유통되는 유일한 지역잡지라고 하니 독자들도 재주상회가 추구하는 신념과 가치철학을 응원하고 신뢰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 발견되고 기록되지 않은 제주의 옛이야기들과 앞으로 생길 제주의 이야기들도 착실히 담고 재미있게 소개해 줄 재주상회의 행보가 매 계절, 기다려집니다.



지방 소멸 시대에 소멸을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해보면, 결국 콘텐츠가 있는 로컬이 소멸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매력적인 로컬에 좋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 사람들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또 그 매력적인 콘텐츠에 이끌려 또 다른 사람들이 오는 선순환이 이뤄지면 지역은 소멸되지 않겠죠. <재주상회>는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연결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를 확산하고 새로운 커뮤니티가 생겨나도록 하는 일을 하는 거죠. 로컬크리에이터 개개인만 보면 작은 움직임이지만, 그들이 성장하고 연결되어 만들어내는 것들이 모이면 하나의 큰 물결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고선영 | 재주상회 대표 '로컬 인사이트 트립 in 제주'에서






커버 이미지

출처 : 매거진 <인iiin>의 2016년 전권. copyright(c) 재주상회



참고 자료


[재주상회] 콘텐츠 그룹 재주상회 홈페이지.

[작은가게오래가게] 제주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기록하는 제주 생활. 21.02.18

[오마이뉴스] 우먼 인 로컬. 한번에 만부 찍으면 완판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매거진. 20.01.04

[topclass] 제주살이. 살아보는 제주를 잡지에 담다. 2020년 3월호.

[BELOCAL] 가장 새로운 것, 로컬 속에 답이 있다 <재주상회> 고선영 대표. 21.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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