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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노무브 Apr 20. 2022

너무도 아름다운 산호들의 구조신호<산호초를 따라서>

넷플릭스 환경 다큐 <산호초를 따라서> 리뷰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수많은 기사들에서 산호의 백화현상과 산호의 멸종위기를 다루곤 합니다. 학자들은 산호 소멸이 생태 시스템 붕괴의 시작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2050년이 되면 지구에서 산호를 볼 수 없을 거라는 연구결과도 있는데요. 산호는 누구고 어떤 역할을 하는 생물일까요? 왜 사라지고 있을까요? 산호가 사라지면 지구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다큐 <산호초를 따라서> 2017 메인 포스터


광고업계에서 10년 넘게 일하던 리처드는 바다를 사랑하고 풀잎해룡이란 해양생물을 좋아하는 다이버이자 수중 촬영가이기도 합니다. 어느날 항상 잠수하던 지역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풀잎해룡을 찾을 수 없었고 서식지에서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발견하죠. 그는 일터로 복귀해 화장지가 3겹일 때와 4겹일 때 어떤 경우에 더 잘 팔리는 지에 대해 토론하다 문득 이것보다는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그는 바닷속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고 촬영을 거듭할수록 산호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가 촬영 중이던 플로리다에서는 이미 80-90%의 산호가 사라졌고 최근 30년 동안 지구상의 산호는 50%가 소멸했다고 합니다.


소멸한 산호의 골격만 남은 플로리다 해안. 출처 : 다큐 <산호초를 따라서>


바다와 관련해서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의 무관심이에요. 홍보가 필요한 거죠.


산호는 식물이자 동물인 신비로운 생물

백화현상은 죽음의 징조


바다를 살리기 위해 산호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고 느낀 리처드의 여정은 산호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가득한 해양 생물학자, 산호 연구원, 수중 카메라 전문가와의 만남으로 이어집니다. 리처드는 산호가 낮에는 식물처럼 광합성을 하고 밤에는 동물처럼 근처에 다가온 작은 생물을 먹이로 취하는 신비로운 생명체임을 배우게 되고, 이들이 하얗게 변하고 끝내 죽음에 이르는 이유는 상승하고 있는 바다의 수온 때문임을 알게 됩니다.


산호는 평균 수온 2도가 오른 바다에서 삶을 이어갈 수 없다. 출처 : 다큐 <산호초를 따라서>


산호가 하얗게 변하는 백화현상은 일종의 스트레스 반응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몸의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열이 나는 것과 유사한 상태라고 해요. 바다생물에게 수온이 2도 상승한다는 것은, 사람 체온이 2도 올라간 채로 계속 방치되는 것과 다름 없다고 해요.


올라간 수온에서 산호의 식물파트는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하는 능력을 잃게 되고 동물파트는 이를 감지해서 몸체를 줄이고 투명한 골격만 남긴다고 합니다. 이 상태의 산호가 하얗게 변해버린 상태인데요. 아직 살아있지만 더 이상 성장하지도 번식하지도 못하고 굶주리는 상태로, 곧 죽음을 맞게 되는 상태라고 합니다.


상승한 수온으로 인해 몇주 만에 하얗게 백화된 산호. 출처 : 다큐 <산호초를 따라서>


리처드는 산호의 백화현상 이슈를 알리기 위해 수중 촬영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제작진은 수중에 두 달 이상 잠겨 촬영을 이어갈 카메라 세트를 제작하고, 산호의 백화현상을 확연하게 보여줄 수 있는 지역을 찾아 카메라를 설치하고, 산호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죽어가는 모습을 찍어서 사람들에게 문제를 알려야 한다는 양가적인 감정을 동시에 느끼며 두 달여간의 프로젝트를 이어갑니다. 말 그대로 고군분투합니다.


산호의 백화현상을 기록하기 위해 수중 촬영 중인 제작진. 출처 : 다큐 <산호초를 따라서>


그리고 상상하지 못했던 경이로운 현상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리처드는 백화현상을 거쳐 죽어가는 수많은 산호들과, 스스로를 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일종의 자외선 차단 물질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산호 군락을 촬영하게 됩니다. 그 어떤 산호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형광색의 빛을 뿜어내는 듯한 광경에 경이로움을 느끼는데요. 감탄 뒤에는 바로 우울감이 따라붙는다고 표현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변이를 일으킨 몇몇 산호 개체들도 상승 중인 수온을 오래 견디지는 못할 테니까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일종의 자외선 차단제를 만들어낸 형광빛의 산호들. 출처 : 다큐 <산호초를 따라서>




산호는 30년 전부터 이미

기후변화로 인해 사라지고 있었다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로 인해 바다 수온은 육지보다 먼저 상승하고 있었다고 해요.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열이 지구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머물게 되고, 이중 93%에 이르는 열을 바다에서 흡수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녹아내리는 빙하와 하얗게 변해가는 산호가 가장 먼저 소멸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양학자들은 설명합니다. 바다가 열을 흡수하지 않으면 지구 표면의 평균 온도는 50도가 되었을 거라고 해요.


바다 수온 상승의 원인은 기후변화로, 대기중에 모인 열의 93%를 바다에서 흡수하고 있다. 출처 : 다큐 <산호초를 따라서>


산호는 해양 생물들에게 삶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역할입니다. 수많은 해양 생물들이 산호 군락의 특정 부근을 스스로의 집으로 활용하여 살아간다고 합니다. 산호 안에 숨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먹이를 먹으러 들어가기도 한다고 해요.


산호의 골격과 구조가 크고 복잡할수록 더 다양한 생물들이 살 수 있고 이는 사람에게 건물과 같은 개념이라고 합니다. 산호 군락은 도시, 개별 산호는 커다란 빌딩 같은 역할인 것이죠. 때문에 산호가 사라져버린 부근에는 해양 생물들도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터전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해요.


지구상의 거대한 생태 시스템 안에서 산호의 역할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육지의 숲이 비가 와도 산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역할하듯이 산호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해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합니다. 태풍의 세기도 산호 군락이 건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곳과 아닌 곳의 차이가 확연하다고 해요.


제작진이 촬영하는 두달 동안 산호에게 일어난 변화. 두달 전(왼) 두달 후(오) 출처 : 다큐 <산호초를 따라서>


한 시간 가까이 산호를 찍기 위해 고생했던 과정을 담은 다큐는 제작진이 국제산호초심포지엄에 참여해 두달 동안 찍은 산호의 모습을 발표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백화현상을 거쳐 죽어버린 산호 군락에는 입주해 살던 해양 생물도 총천연색의 신비로운 움직임도 없습니다. 심포지엄 회의장은 숙연해지고 학자들은 대부분이 참담한 표정에 잠깁니다.


산호의 소멸은 그저 많고 다양한 생물 종 중의 하나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반복해서 말합니다. 해양 생물들의 근간이 되는 숲 같은 존재이기에 이는 육지의 나무와 숲이 사라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기후변화 속도를 늦춰야 얼마 남지 않은 산호를 살게 할 수 있고 그래야만 바닷속 생태계도 살릴 수 있습니다.






바닷속 산호의 지형을 찍어 구글맵처럼 기록하려는 리처드. 다큐 <산호초를 따라서>의 한 장면.


다큐 <산호초를 따라서>의 오프닝 장면에는 길을 찍어 구글지도를 만들듯 바닷속 산호 지형을 찍어 데이터화하고 있다는 제작진의 촬영 현장이 나옵니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남기고 기록해두고 싶은 절박한 심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시들고 다시 싹을 틔우는 순환이 아니라 소멸에 대해서, 말이죠.


지금껏 소개했던 다큐들과 달리 <산호초를 따라서>에는 앞으로 닥칠 미래를 추론하는 데이터나 연구 자료를 제시하는 인터뷰보다, 좋아하는 대상을 계속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상이 사라져가는 현실을 목도하는 과정과 슬픔을 대하는 모습을 더 비중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일종의 자외선 차단제를 만들어낸 산호들. 다큐 <산호초를 따라서>의 한 장면.


산호가 처한 문제를 알리기 위해 필사적인 사람들의 여정을 보며 영상으로 보는 사람도 눈물이 나는데 몇 달에 걸쳐 바다에 나가 촬영하고 편집했을 제작진은, 매일 어제보다 더 죽어가는 산호를 보며 카메라에 담는 심정은 오죽했을까 싶어졌습니다.


보통의 다큐 소개글에는 개인적인 감정이 드러나는 것을 최대한 지양하고 있지만 이번 다큐 리뷰에는 마음이 몹시 아팠다고 적고 싶습니다. 뜨겁다고 물밖으로 이동할 수 없는, 그저 그 자리에서 가만히 높아지는 열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을 산호와 해양 생물들에게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내뿜은 형광빛이 구조신호(S.O.S)처럼 느껴졌고요. 뜨겁다고 지구밖으로 나갈 수 없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017년 이후 더욱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추정되는 수온 변화. 출처 : 다큐 <산호초를 따라서>


<산호초를 따라서>는 2017년 작품입니다. 그간 더 많은 산호 군락이 사라졌을 거라 추측됩니다. 아직 이 영상을 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던 총천연색의 산호와 바다 수온이 올라가고 있는 현재 산호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관심이 늘어나길 바랍니다. 훗날 이 다큐멘터리 영상이 살아있는 산호가 담긴 역사적 유물로 남지 않도록 우리가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기후변화 속도를 늦추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길 바랍니다.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

-다큐 <산호초를 따라서>의 제작진이 남긴 클로징 멘트-


커버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다큐 <산호초를 따라서> 2017


참고 자료

[다큐] 산호초를 따라서.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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