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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씨 Jan 03. 2019

김치 세레나데

“똑똑똑 똑똑똑”    


전해줄 것이 있다는 친구의 메시지가 온 지 10여분이 지나 현관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집을 미처 정리하기도 전의 방문이지만 ‘서로에게 격이 없는 사이니 부끄러울 건 없지’라며 청소를 미룬 게으름을 합리화해본다. 친구가 양손으로 받쳐 든 무거운 검은 봉다리에는 김치가 한 가득 들어있다. 김장을 했단다. 맛 좀 보라며, 맛만 보기에는 너무 많은 김치를 안겨주고 그녀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 모습이 나에겐 김치천사 같았다. 그런 천사가 벌써 네댓 명이나 다녀갔다. 후훗.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하루 삼시세끼를 하는 주부가 되면 요리를 잘하게 되는 줄 알았다. 몰라서 안했던 것이지 알고 하면 맛있는 요리가 뚝딱 완성될 줄 알았다. 그런데 요리에도 소질이란 게 있고, 적성이란 게 있더라. 친정 엄마의 솜씨를 물려받지 못하는 슬픈 운명을 지닌 사람도 있다는 사실은 내게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이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열심히 노력했다. 불앞에서 흘리는 땀을 스스로 대견해하며 맛의 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흔히 말하는 주부9단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맛은 쌓이지 않았다. 
맛은 없었다.
    

내가 먹어도 맛이 없는 음식을 남편에게 내밀었다. 일단 요기는 해결해야 했으니까. 살아야하지 않나. ‘아내가 해준 요리가 맛이 없어 굶어죽은 남편이 있어 화제입니다.’라는 뉴스는 막아준 고마운 남편이다. 심지어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소지한 그다.  

  

그런 내게 3년 전 늦가을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터졌다. 결혼 이후로 쭉 김장을 해주셨던 형님께서 올해부터는 힘에 부쳐 하지 않으시겠단다. 전화통화였기에 망정이지 충격에 흑색으로 바뀐 낯빛을 형님이 보셨다면 엄청 서운해 하셨을 거다. 고백컨대 난 김치성애자다. 세상 모든 김치를 사랑한다. 단 유산균이 씹을 때마다 톡톡 터져 온 입안을 그득 채워주는 익은 김치만 좋아하는. 그렇게 나의 김치는 일방적 원조로 시작되었다가 일방적 통보로 사라져버렸다.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버릴 때보다 더 허무했다.  

    

그 후 문화센터 김장김치담기 수업에도 가보고, 홈쇼핑 김치방송을 즐겨보고,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지난 2년간 요리가 적성에 맞지 않고 소질도 없던 나는 김장을 할 수 없었다. 한번 만들어 놓으면 오랜 기간 먹어야 하는 김치가 맛이 없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사태다. 쉬이 도전해 볼 만한 분야가 아니었다. 그런 나를 살리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김치천사들이 방문을 해줬다. 그녀들이 아니었다면 ‘김치를 먹지 못해 죽은 사람이 있어 화제입니다’란 뉴스가 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물거품처럼 사라진 김장김치가 올해 기적적으로 부활했다. 역시나 일방적 원조를 다시 시작한 형님 덕분이다. 11월 초 일상적인 안부연락이려니 하고 받은 형님의 전화는 그리스 신전 앞에서 언제일지 모를 기다림 후에 받은 신탁과 같았다. “어제 김장했어. 쉬기 전에 빨리 가져가.” 늘 일방통행이신 형님의 소통 따위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예예 그저 감사히 전화를 끊었다. 김치냉장고에 김치가 가득 찼다.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이제는 김치가 아쉽지 않은데도 지인들은 여전히 원조의 손길을 내민다. ‘김장이란 걸 했다고, 나도 김치 쟁여놓고 사는 여자’라고 말해주어도 맛만 보라며 한통 가득 가져다준다. 이제 난 김치부자다. 김치거지에서 김치부자로 거듭난 사람이다. 앞으로 1년 동안 행복할 사람이다. 우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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