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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씨 Apr 14. 2019

어느 날 갑자기 날 찾아왔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른이.


5시 기상! 

    

4월을 시작하며 내 삶에 작은 변화를 주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른이 되기로 한 것이다. 비록 새 나라의 시대는 사라졌지만 말이다. 

    

딱 41세가 되던 해 1월 어느 날 아침, 욕실 거울 속 내 얼굴을 보다가 날 찾아온 두 녀석을 발견했다. 굵고 선명한, 완벽한 좌우대칭의 그 자태는 너무도 당당해 무서워 보일 정도였다. 사전예고도 없이, 전날까지도 아무런 티도 내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불쑥 찾아오다니 너무 무례했다. 괘씸했다.  

    

'혹시 실수인가? 아~ 사람을 잘못 찾아온 거구나. 그럼 그렇지.'

      

나한테 올 녀석들이 아니라 여겼다. 그러나 그 녀석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일 년이 지나가도록 끈질기게 딱 들러붙어서 여전히 위풍당당하게 미치도록 아름다운 좌우대칭의 모습이다.

      

두 녀석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받아들인 건 아직 아니다. 그 당당한 자태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릴 방법들을 찾아다녔다. 우선 매일 밤마다 똑바로 누워서 자는 데 집중했다. 어쩌다 모로 누워서 잔 날 아침이면 거울 속 그 녀석들이 더 센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는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우연히 보게 된 홈쇼핑에서 스무 개씩 파는 기능성 크림도 샀다. 어쩜 이리도 딱 필요한 시기에 딱 필요한 상품을 파는 건지 홈쇼핑은 귀신같은 사람들만 모여 있는 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생각해보면 늘 필요한 물건을 팔고 있으니 홈쇼핑이 무서운 곳이란 건 확실하다. 깨끗하게 씻고 자기 전에 크림을 처발랐다. 콩알만큼 짜서 얇고 고르게 도포하라고 쓰여 있었지만 불안했다. 오백 원 동전만큼이나 짰다. 특히 두 녀석의 면상에 서너 번씩 치덕치덕 바르고 나면 기분도 좋아졌다. 어쩌면 내일 아침에는 녀석들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마저 안고 잠들 수 있었다. 

     

어느 날 아침은 기세가 좀 꺾인 녀석들을 만나기도 했다. 섣불리 김칫국을 들이켰다 쓰라린 패배감을 몇 번 맛 본 뒤론 그마저도 반갑지 않았다. 나란 인간이 뭐가 그리도 좋은지 이렇게 딱 달라붙어 있는 걸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강력한 퇴치 수단을 떠올리기도 했다. '병원을 찾아가 두 녀석을 물리쳐 달라고 의사 선생님 바짓가랑이라도 잡아볼까? 아니야. 그건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둬야지.' 

     

텔레비전은 절대 바보상자가 아니었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좋은 정보를 알게 되었다. 홈쇼핑과 정보 프로그램은 귀신들이 만들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내 또래의 여성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실험을 하고 있었다. 한 달 동안 10시 이전에 잠을 잔 후 세포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정말 딱 한 달 일찍 잔 그녀들은 젊어졌다. 물론 할머니가 아가씨로 변신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수치상의 변화는 놀라웠다. 당장 실천해보기로 마음먹었지만 난 완벽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보름 하고도 삼일이 더 지나서야 난 10시 취침을 시작했다.

     

오늘로 4일째 10시에 자고 5시에 일어남을 실천하고 있다. 솔직히 완벽한 기상은 아직 힘들다. 알람을 누르고 정신을 차려서 온몸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는 이불 한 자락을 걷어내기가 지구를 들어 올리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생각했다. 내가 왜 이렇게 이른 기상을 해야 하는지, 나를 꽉 붙들고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그 녀석들을 생각하면 자리에서 박차고 뛰쳐나올 수 있었다. 스트레칭도 시작했다. 훠이 훠이 떠나가라고 되뇌며.

     

젊어 보이려 애쓰는 것만큼 추한 사람도 없다고 누군가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나의 이런 버둥거림은 추함일까? 나이가 들어 주름이 매력적인 사람들도 많다. 희대의 악당마저 포용할 것 같은 인자함이 그득한 그런 얼굴의 주름들은 멋있어 보인다. 사실 나도 그런 주름을 가진 노년을 맞고 싶다. 이미 노화의 흔적은 몸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나를 꾸준히 찾아오고 있다. 흰머리가 처음 났을 때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긴 하다. 생리주기가 짧아져가고 탈모가 나타나고 피부 곳곳에 기미란 녀석도 출몰했다. 그러나 모든 처음은 무뎌져 간다. 시간 속에 익숙해짐과 동시에 흐려져 갔다.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나이를 먹는구나.'라고 받아들이며 덤덤해지려는 찰나 나타난 두 녀석은 나를 전투태세로 전화시켰다. 

     

매일 아침마다 두 녀석을 만나는 그 순간은 무뎌지지 않았다. 흐려지지도 않았다. 그 당당한 자태는 시간의 흐름을 덤덤히 받아들일 수도 없게 만들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남은 세월을 슬픔 속에 잠겨 허우적거릴 것만 같았다. 어쩌면 녀석들은 세월에 따른 자연스러움이 아니라 삶의 게으름에 대한, 스스로를 소중히 돌보지 않음에 대한 벌은 아닐까? 배가 고프면 먹고 그나마도 물에 말아 신 김치로 후다닥 때웠다. 숨 쉬는 것 외엔 그 어떤 운동도 3개월 이상 해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은 새벽에야 잠이 들었고 어느 날은 종일 방바닥과 일체가 되어 지냈다. 작년 건강검진에서 심한 빈혈 처방을 받고도 철분제와 소고기 섭취 외에는 달라진 게 없는 삶이었다. 두 녀석은 내 몸이 나에게 보내는 마지막 구조 신호탄일지도 모른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어도 속도를 늦출 순 있지 않을까? 녀석들과 헤어지지 못한다 해도 적어도 동반자로 마음 편히 걸어갈 순 있을 것 같다. 녀석들 덕에 이미 나는 새벽을 얻었다. 책도 읽고 글도 쓸 수 있는 나만의 두 시간을 온전히 갖게 되었다. 저녁을 조금만 먹어도 공복을 느끼기 전에 잠을 자니 야식과도 헤어지게 되었다. 왜 어린이만 일찍 자야 하냐는 남매의 불만도 사라졌다. 시작이 반인데 작심삼일을 넘겼으니 반환점은 돈 것이다. 


이쯤 되니 고맙기까지 한 두 녀석이지만 당당하게 이별을 고하며 인사할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희망을 안고 나는 오늘도 10시에 잠이 든다. 꿈을 꾼다.

     

'잘 가라 내 팔자주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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