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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by 몬스테라

사법연수생 시절, 형사변호실무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사람의 '인생 3대사'는

부모 사망, 본인 결혼, 직계 가족 구속

이라고 하셨다. 그때는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형사재판을 받고 구속되면 관가로부터 재앙을 입는다는 뜻의 ‘관재’가 있었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때의 관은 벼슬 관(官)을 쓴다. 죽어서 들어가는 관은 벼슬 관에 나무 목자만 붙인 널관(棺)을 쓴다.


구속이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사망’과 유사하다. 사람에 대한 실종신고가 있으면 경찰은 실종자가 살아서 활동하고 있는지 사망했는지를 살피기 위해 금융거래내역과 병원 이용내역, 휴대전화사용내역 등의 ‘생활 반응’을 확인한다. 사람이 사망하면 그런 생활 반응이 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속되어도 생활 반응은 없다.


본인에게도 이런 큰 의미가 있는 일대의 사건인 구속은, 가족에게도 큰 충격과 영향을 준다. 구속된 사람이 가장인 경우도 많고.


이 세상을 떠날 때 가지고 갈 수 없는 것들은 대부분 구속되어 신입 수감자가 되는 순간에도 들고 들어갈 수 없다. 구속이 되면 입고 온 속옷, 양말, 신발, 옷 모두 벗어야 한다. 구치소나 교도소도 마치 저 세상처럼, 그곳에 들어갈 때는 세상에 처음 올 때의 상태로 가게 된다. 그래서인지 구속이 되면 피고인들은 처음 바깥세상을 만나게 해 준 존재인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남달라 진다.


피고인들이 법원에 형을 깎아 달라고 읍소할 때 가장 많이 등장시키는 요소가 어머니이다. 어머니 부양을 위해, 건강이 나쁜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돌 볼 사람이 나 밖에 없어서 최대한 빨리 구치소를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노모’는 구속 피고인들에게 필수품? 같은 존재이다. 어머니가 환갑이 안 돼도 일단 구속되면 어머니는 ‘노모’로 변신한다.


여자 친구 가방 사주려고 도둑질 한 청춘은 봤어도

엄마 가방 사주려고 범행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는 것은

안 비밀.


잊을 수 없는 어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4 총사로 절친하게 지내던 20대 초반 남자 4명이 의기투합해서 사기를 쳤다. 이들은 대출을 받아 줄 능력이나 의사도 없이 대출을 받아 준다고 무작위로 문자를 보낸 다음 전화가 오는 사람들에게 대출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입금받는 방법으로 사기행각을 벌였다.


방까지 얻어서 전화를 설치하고 나름대로 매뉴얼도 갖추어 체계적으로 사기를 쳤다. 피해자가 많고 액수가 커서 이들 4명은 모두 수사과정에서 사이좋게 구속되었다.


나는 그 4명 모두의 항소심(2심)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었다. 이미 1심에서 징역형을 받은 상태에서 항소심을 담당하게 되었다. 피고인 4명 모두 특정한 친구에게 미루는 사람이 없이, 모두가 함께 범행했다고 말했다. 이들의 1심 기록을 보니 피고인 중 한 명의 어머니의 활약이 도드라졌다.


1심에서 네 피고인에게 같은 사선 변호인이 선임되었는데 피고인 김정석(가명)의 어머니가 모든 비용을 부담한 것이었다. 김정석의 어머니는 피해자를 찾기 위해 은행과 통신사에 사실조회를 거듭했고 연락처를 알게 된 피해자들에게는 기어코 피해금액을 변제했다.


10명도 넘는 피해자에게 피해를 회복하고 변제하느라 1심에서 많은 시간을 썼다. 김정석 피고인의 가정도 어려웠고, 그 피고인의 아버지는 큰 사고로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로 투병 중이었다.


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피고인의 어머니는 20대 초반의 아들이 구속되자 아들의 친구들까지 변호인을 선임해주고, 어렵게 조달한 돈으로 피해를 회복하면서 아들의 친구들에게도 처벌불원서, 합의서까지 받아서 제출해 준 것이다.


일부 피해자들은 사건 이후 전화번호를 바꾸었는데

자신을 어떻게 찾았는지 놀랐다고 했다.

피고인의 김정석의 어머니는 1심에서 끝내 연락이 되지 않아 합의를 하지 못한 2명에게 피해를 회복하고 싶다고 했다. 1심에서 선처를 이미 많이 받아 추가 합의를 한다고 해서 형이 낮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피고인의 어머니는 반드시 피해자를 찾아 아들이 사기 친 돈을 돌려줄 것이라고 했다. 항소심에서도 피해자들을 찾기 위해 사실조회 신청을 거듭하다 결국 피해자들과 연락이 닿게 되었다.


피고인의 어머니는 피해자에게 사죄드리고 피해금액보다 더 큰 금액을 주고 합의했다.

피고인의 어머니에게 형이 깎일 것을 기대하지는 말라고 했는데 피고인의 어머니는

아들이 쉽게 돈 벌려고 이 일을 한 거잖아요. 엄마가 남한테 피해 주지 않으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걸 아들이 보면 깨닫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라고 했다.


피고인의 어머니는 나에게 부탁이 한 가지 있다고 했다. 아들 정석이에게 접견 가서, 이 말을 꼭 해달라고 했다.


너는 친구들에게 위험한 친구였고 좋은 친구가 아니었다. 앞으로 친구들이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출소해서도 연락하지 말고 지내라.


이 말을 변호사님이 해주면 더 잘 새겨들을 것 같다고 했다.

보통 자기 아들은 멀쩡하고 착한데, 나쁜 친구를 만나 삐뚤어졌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자기 아들은 친구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친구가 아니었으니 서로 만나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래야 4명 모두 바르게 설 수 있다고.


나는 이 피고인의 어머니를 보니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보냈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 피고인은 나와서도 한 때의 어리석음을 뒤로하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년 신임검사가 임관하면 기사가 나온다. 그 기사에는 ‘장한 검사 아들을 안아주는 어머니’라는 제목의 사진이 올라온다. 어머니들은 임관식 날 검사 법복을 입은 아들을 여기저기서 안아주고 있었다.


어머니에게는

검사 아들도 소중하지만,

검사에게 잡혔던 아들도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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