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지면 만날 수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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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17. 2021
나는 밥을 먹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사람이 제일 불쌍하다. 밥걱정을 하는 생활을 하면, 무형의 가치를 추구하거나 고양된 정신상태가 될 수가 없을 것 같고 지능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것만 같다.
얼마 전 내가 국선 변호하게 된 피고인이 구속되어 있는 교도소에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피고인이 곧 임종할 것 같으니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해 달라고.
그 피고인은 노숙인이었고 식품을 절도해서 구속된 사람이었다. 노숙하면서 절도 전과가 꽤 쌓였기 때문에 이번에 훔친 음식들의 피해금액이 크지는 않았지만 구속이 되었다. 배가 고플 때 음식을 먹을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거리생활을 했으니 매 끼니마다 고달팠을 것이다.
먹을 것이 없고 음식을 살 돈이 없기 때문에 남보다 먹을 것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떻게 음식을 구할 것인가에 대해서. 무엇을 먹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어쩌면, 과거에 먹어보았거나 남이 먹는 것을 본 것 중 먹어보고 싶은 것에 대한 생각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먹을 궁리를 하며 지내다가 먹을 것을 훔치고 구속된 그 피고인의 병명은 구강암이었다. 구속 후 교도소에서 받은 건강검진에서 구강암이 발견되었고, 발견했을 당시에는 이미 4기였다.
그는 구강암 4기까지 거리에서 어떻게 버텼을까. 구속되지 않았다면 어느 날 자신이 어떤 병에 걸린지도 모른 채 거리에서 마지막 잠을 잤을 것이다.
기록을 보니 그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피고인은 급속도로 암이 악화되어 교도소에서 내게 전화할 당시에는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는 상태였다. 교도소에서는 암투병 수용자를 간병할 별도의 인력이 없어서 피고인의 수용에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가족이 없고 음식도 먹지 못하는 피고인을 어디로 보낸단 말인가.
나는 교도소에 전화를 해서 피고인에 대한 구속집행을 정지하면 갈 곳이 없어서 곤란하다고 했다.
교도소에서는 피고인이 기초생활수급자로 의료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고 간병받을 수 있는 요양병원으로 보낼 것이라고 했다. 교도소에 있는 것보다는 피고인이 영양제도 공급받고 안락한 침대에 누워있을 수 있는 요양병원이 나을 것 같아서 급히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했다.
재판부에서는 교도소에서 피고인을 요양병원으로 보낼 것이라는 내용과 피고인의 병세가 적힌 진단서를 확인한 후 신속하게 구속집행을 정지해 주었다.
피고인의 재판기일은 변경이 없었고, 나는 피고인과 상담 후 항소이유서를 작성해야 했다. 그래서 요양병원으로 접견 가려고 병원에 연락하니 코로나 때문에 피고인을 만날 수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일단 피고인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피고인의 선처를 바라는 항소이유서를 제출하고 재판 날을 기다렸다.
며칠 뒤면 그 피고인의 재판인데, 재판이 취소되었다. 피고인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가 먹은 마지막 음식은 무엇이었을까.
며칠 새 기온이 뚝 떨어지고 추워졌다.
날씨가 추워지면, 길거리 노숙인들이 생각난다.
나는 국선전담 변호사가 되기 전에는 민사사건 소송대리도 하고 다양한 사건을 하던 변호사였다. 누군가의 사선 변호인, 소송대리인일 때에는 수임료를 지불할 능력이 되는 사람들만 보다 보니 내가 노숙인의 변호인일 기회가 없었다.
국선변호만 하면서부터는 노숙인인 피고인을 종종 만나게 되었다. 특히, 날씨가 추워지고 겨울이 다가오면, 추위를 견디지 못해 무전취식이나 절도를 해서라도 구치소로 들어가려고 시도하는 노숙인들이 있다. 그래서 완전히 추운 겨울이 되면 무전취식 사기사건이나 노숙인의 절도 사건 비율이 조금 높아진다.
노숙인들 중에는 중독과 치매, 정신질환으로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여름에 두꺼운 옷을 껴 입고 거리에 누워 있거나, 이불과 겨울옷이 든 거대한 짐을 들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겨울에 노숙인인 피고인을 구치소에서 만나는 것을 거듭하면서,
한 여름에 노숙인이 두꺼운 겉옷들과 이불을 안고 이동하는 것을 보면
저 사람은 이번 겨울을 자기 힘으로 견뎌 보겠다는 의지가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