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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변호사

by 몬스테라

어제 오전에 모 교도소에 정신장애인인 피고인을 접견하러 갔다. 그는 공무집행방해죄로 구속되었고 그에게는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가 있었다. 그를 처음 본 날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무죄 주장을 하겠다고 했다.


그의 수용자복에 붙은 번호표에는 그가 직접 그려 넣은 십자가가 있었다. 그는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했다.

그의 뜻에 따라 무죄를 주장하는 서면을 제출한 후 기록을 다시 보면서 궁금했던 것이 생겨서 다시 접견했다. 그런데 그의 태도가 지난번 접견 때와 달랐다. 마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얼굴도 말도 차분했다.


자신에게는 망상 증상이 있기 때문에, 자기의 기억을 믿을 수 없어서 무죄 주장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병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것은 그 사람의 증상 중 하나였다. 자기가 분명히 기억하고 경험한 것인데 그것이 망상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그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일까. 그런 결정에 이르기까지 많은 생각을 하고 기억의 화면을 수도 없이 돌려보았을 것이다.


그는 과거에 노래방을 운영했었다. 사업이 망하고 이혼을 하게 되면서 술에 의지하고 정신질환도 발병했다.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하면서 아들을 형에게 맡겼는데 형이 3살이 된 그의 아들 잠바 주머니에 생년월일을 적은 종이를 넣어 보육원에 밀어 넣고 도망쳤다. 형은 그의 아들을 어느 보육원에 두고 왔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는 아들이 보호 종료 아동이 되어 보육원을 떠난 뒤에야 아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에게는 면회를 오는 가족이 없었고, 교도소에서는 요시찰 수형자로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방에 수용되어 있었다. 망상 증상이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람의 말은, 그 속에 진실이 있더라도 망상이라고 묵살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증상이 있는 정신장애인들은 약자 중 약자이다. 나는 그가 주장했던 것에 작은 진실이라도 있다면 그를 위해 열심히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저 선처만 구해 달라는 그의 말에 단호함이 느껴졌다.

다시 교도소로 찾아온 나에게 그는 국선변호인을 여러 번 오게 해서 미안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자 그가 말했다.


신을 만났어요. 신이 저한테 말했어요.
'너는 전생에 남들이 가지지 못했던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리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번 생에는 거지로 살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자기는 그래도 전생에 부귀영화를 누렸으니까 괜찮다고. 그리고 아들은 보육원에서 17년간 고생했으니 이제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교도소를 나오는데 마음이 아팠다.

그가 행여 전생에 부귀영화를 누린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부귀영화에 대한 기억은 없지 않은가.


오전에 그 접견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오후에는 모 구치소에 접견 갔다. 처음 만나는 피고인과 여러 번 만난 피고인들 모두 다섯 명을 접견했다. 오전에 교도소에서의 경험이 슬퍼서 힘이 빠져 있는 상태였지만 텐션을 올려서 접견하느라 조금 지쳐있었다.


마지막에는 꼭 볼 필요가 없는 피고인이었는데 며칠 전 접견 때 그가 다시 한번 접견해 달라고 해서 온 것이었다. 20대 초반의 남자 피고인이었다. 어린이 같은 어른.


지난번 접견 때 사건에 대한 정리가 다 끝났는데 그가 접견 말미에 다시 와 달라고 했다.

이유를 묻는 내 질문에 그는

그냥 사람이 그리워서요.

라고 말했다.

그는 그 말을 삼켜서 먹는 듯이 말했다. 좀 쑥스러운 말이고 그가 어렵게 꺼낸 말 같아서 수요일 오후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수요일 오후에는 다른 일정이 생겨서 접견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금요일인 어제 다른 피고인들 접견을 마치고 그를 접견하게 되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일반 민원인들이 접견하는 장소에서 접견하는데 그곳에는 서로를 가리는 아크릴 투명 칸막이 같은 것으로 막혀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면회 장면으로 나오는 그런 모습이다. 반대편 피고인이 들어설 방의 문이 열렸는데 피고인은 울면서 들어왔다. 피고인을 데리고 온 교도관님이 웃으면서 피고인이 있는 쪽 방 문을 닫아주셨다.


나도 그가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들어온 것이 당황스러웠는데 왜 우냐고 하니까

그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앉아서

아.. 진짜 왔네. 나는 안 올 줄 알았는데.

라고 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어른들 속에서 고단하게 자라 온 그는 사람을 믿지 않았다.

나에게 다시 접견 와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그에게

변호인이 접견 온 것이 대단한 일이 아닌데 이걸 그렇게 고마워해 주시니 내가 더 고맙다고 말했다.


어떤 경험들은 내가 사회의 안전망을 짜는 일을 하고 있으며, 누군가의 보호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고, 나에게 힘이 된다. 그 힘은 아파트 아래에 박힌 파일과 같 단단한 자존감을 가지게 해 준다.


많은 피고인들이 조금씩 나에게 보태준 힘은 때때로 진도 7.5 강도로 나를 흔드는 피고인들을 대할 때 도움이 된다.


구속 피고인의 옆에서 변론을 마치고 법정을 나올 때 피고인의 지인들이 나를 따라붙는 경우가 있다.

“000가 변호사를 선임했어요?”
“네 제가 국선변호인입니다.”
“국선이세요? 아, 변호사가 없어요?”
“........”

어떤 피고인은 내가 나름의 최선을 다했건만 법정에서 최후 진술 때 변호인인 내가 옆에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없어 변호사도 없이 재판받고..

라고 해서 나를 유령으로 만든다.


구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어떤 피고인은 재판을 마친 후 나에게 자신의 다른 사건을 사선 변호인으로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사선 사건을 수임할 수 없는 국선전담 변호사이다. 국선전담 변호사일을 하는 동안에는 일체 돈을 받고 하는 소송이나 자문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가 얼마를 주건 법원에서 나에게 국선으로 배당한 사건 이외에는 맡을 수가 없다.


그런데 피고인은 나에게 사선 선임을 부탁하면서, 국선이니까 다른 사건도 용돈 정도에 맡으면 되겠다는 식으로 말했다. 내가 사건을 사선으로 수임하는 것은 안된다면서 이유를 설명했지만 그는 자신이 제안하는 돈이 작아서 내가 더 달라고 밀당을 한다고 오해한 것인지 나를 졸졸 따라오며


"그러니까 변호사님 사려면 얼마면 돼요."

를 반복했다.


“그러니까 얼마면 하겠다는 건데요.”


아, 100억을 주셔도 할 수 없다니까요.

그는 갑자기 나에게 어이없다는 듯 썩소를 날리며

'너 뭐냐..' 하는 눈빛을 보였다.


저요?

저요?

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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