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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은 오늘 무척 실망했다.

by 몬스테라

사건기록을 복사하면 검사가 기소하면서 붙여 놓은 범죄경력 조회서를 볼 수 있다. 그래서 변호인은 피고인들이 범죄를 저지른 경력과 수사를 받았던 전력, 청소년 시절에 보호처분을 받은 전력과 가정폭력사건으로 보호처분을 받은 전력을 알 수 있다.


구속되어 있는 피고인에게 꼬박꼬박 어머니처럼 접견하고 탄원서를 내어주고르바이트비로 영치금까지 넣어주는 연인들을 종종 본다.로 어려울 때 버리지 않고 도와주는 것은 참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가끔은 참 안타깝다. 20대 청춘의 피고인들 중 자신의 과거 범죄전력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이에 나아가 여전히 과거와 같이 반복해서 나쁜 행동을 하면서 새로 사귄 여자 친구나 남자 친구에게는 이번이 단 한번 인생의 실수인 것처럼 속이는 경우가 있다.


사기 전과가 많지만 또 중고나라 사기로 구속된 피고인이 있었다. 그의 여자 친구는 직업이 없는 남자 친구를 대신해서 자신의 돈으로 합의를 해주었고, 끊임없이 추가로 수사되어 병합되는 사건에 놀라면서도 이번에 한하여 경솔한 판단을 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힘들게 일해서 모은 돈을 남자 친구의 합의금으로 다 써버렸다. 돈 먹는 하마 같은 피고인..

나는 피고인의 변호인이지, 피고인 여자 친구의 엄마는 아니니까.. 그냥 마음속으로 생각할 뿐이다.


얼마 전 20대 남자 피고인의 재판이 열렸다.

이 피고인은 청소년기에 비행 전력도 없고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성실하게 살았던 청년이었다. 단 한번 경솔한 판단을 한 이 사건에서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면서 깊이 반성하고 있었고, 그의 말과 글에서 성품이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고되게 일해서 아픈 어머니를 간병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대학까지 마친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조금이라도 선처를 받아서 다시 예전처럼 성실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구치소에서 접견할 때 나에게, 자신의 구속으로 상처 받았을 약혼녀와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눈물을 흘렸다.


재판 전날 그의 약혼녀라는 여성이 나에게 피고인의 재판시간과 법정 호실을 확인하는 전화를 했다. 다음날 피고인의 재판을 보러 온다는 것이다. 집이 법원과 멀지 않다고 했다.


재판 당일 피고인은 최후진술을 하면서

“제 약혼녀에게 너무나도 미안합니다..”라며 울었다.


법정에서 훌쩍 거리며 휴지로 눈물을 콕콕 찍어내고 있는 여성이 그의 약혼녀인 듯했다.

재판장님은 방청석의 약혼녀를 쳐다보셨다.

그런데 그 약혼녀는 낙타와 같은 눈썹에 진한 화장을 하고

귀걸이에 명품백까지 걸치고 있으면서도 수면바지에 털실내화를 신고 있었다.


재판을 마치고 법정 밖을 나가자 약혼녀가 눈물을 글썽이며 내게 다가왔다.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변호사님.”


나는 그녀와 사건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녀에게 물었다.

“오늘 혹시 병원에서 오시거나 무슨 사정이 있으셨나 봐요. 수면잠옷 바지를 입고 계셔서..”

한겨울에 속옷만 입고 다녀도 다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나에게 그녀가 한 말은

아뇨 좀 쌀쌀한 거 같아서요


법정에 특별히 드레스코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자 친구, 약혼자의 인생에 중요한 재판인데

낡고 남루하더라도 깔끔한 옷을 입으면 좋으련만

약혼녀라는 사람이 수면잠옷 바지를 입고 있으니 피고인이 나가서 저 약혼녀랑 함께 살면서 결코 재범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주는 것에 동력이 좀 떨어지는 것도 같고...


재판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니 아까 그 약혼녀가 전화해서

내가 어떤 법률적인 부분을 잘못 알고 변론한 것 같다고 했다.


자기가 잘 아는 분께 물어보니까 법적으로 뭐가 성립이 안 된다고 했다.

분명히 법률적으로 가능한데 안 된다고 하니 대체 그 아는 분은 누구시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그 약혼녀 하는 말이

아니 변호사 아니구여, 살다 나온 사람이여.


아는 오빠가 징역 살다 나와서 빠삭하다는 것이다.

법률전문가도 아니고 징역 살다 나온 사람의 말을 믿고

변호사에게 항의하는 이 약혼녀에게도..

이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는 피고인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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