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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외국인의 사법통역

by 몬스테라

요즘 오징어 게임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가 핫하다.

그 드라마에는 외국인 노동자 ‘알리’가 나온다.

알리를 보니

생각나는 게 있는데,

내가 LA에 있을 때

2017년에 맡았던 한 외국인 노동자 엠디카(가명)의 사건이 떠올랐다.


나는 면허 없이 오토바이를 운전한 27세의 방글라데시 청년 엠디카를 국선 변호하게 되었다.

피고인 엠디카는 친구가 운전하는 오토바이 뒤에 타고, 또 다른 친구의 집이 있는 경기도 화성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국도변 좁은 길에서 오토바이가 넘어져 친구가 크게 굴렀다.

피고인의 친구는 앞니가 두 개 빠지고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다.


피고인도 다쳤지만 친구보다는 덜했다.

친구는 코뼈가 부러졌는지 코피도 멈추지 않았고 얼굴에도 계속 피가 흘러내렸다.

피고인은 오토바이를 끌고 친구와 함께 사고 장소 근처의 주유소로 갔다.

주유소 직원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요청했지만 직원은 외진 도로에 있는 주유소라서 택시가 오지 않는다고 했고, 버스정류장도 멀어서 오토바이까지 끌고 걷기가 어려웠다.


피고인은 주유소에서 휴지를 빌려 친구의 콧구멍만 겨우 막아주고 주유소 직원에게 가장 가까운 병원이나 약국을 알려달라고 했다.

피고인은 피를 흘리고 있는 친구와 함께 오토바이를 끌고 갈 수가 없어서 친구를 뒤에 태우고 오토바이를 운전했다. 그런데 피고인이 병원을 향해 운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나가던 경찰차에 단속되었다.


피고인은 오토바이 면허가 없었다. 그래서 무면허 운전으로 기소되었다.


피고인의 고향인 방글라데시에는 아픈 부모님과 가족들이 피고인 한 명만 바라보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다. 일정한 벌금형 이상이 되면 사증 연장이 되지 않거나 재입국이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인지 피고인은 별 논리도 없이 필사적으로 무죄라고만 주장했다.


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 행위에 ‘위법성’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형법에는 타인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행위로써 위법하지 아니하게 되는 ‘긴급피난’이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긴급피난에는 다른 수단이 없어야 한다는 ‘보충성’이라는 요건이 있다. 친구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긴급한 행위인 것은 맞는데, 피고인은 119도 불러보지 않았다.


“택시 안 오고 버스 정류장 멀면 119 부르면 되잖아요.”
“우리 방글라데시 119 없어요. 언제 부르는지 몰라요. ”
“공장에서 계속 일하셨다고 해도 한국에서 이렇게 오래 사셨는데 119를 부르는 것을 모른다고요?”
“그럼 주유소 직원 한국 솨람 왜 119 안 불렀어요?”


검색해보니 진짜 방글라데시는 국가적인 구급체계가 없었다.

2016년에 방글라데시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구급체계 도입하려고 견학을 왔다는 기사가 있었다.


나는 피고인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의 법은 무면허 운전으로 처벌받지 않기 위해 피투성이가 된 친구를 버리고 가는 인간말종을 요구하는 것인가요라는 취지의 변론요지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방글라데시가 이제야 119와 같은 구급체계를 도입하고자 다른 나라에 견학을 간다는 기사를 자료로 제출했다.


재판 당일에는 사법 통역사가 재판 진행에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다.


피고인이 방글라데시 사람이라서 상담할 때에도 사법 통역사를 대동해서 상담했다(통역비용은 법원에서 부담).

사법 통역사란 외국인 범죄인에 대해 경찰 및 검찰 조사와 진술 그리고 재판에서 해당 외국어의 법정 통역을 하는 사람으로서 사법통역 관련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피고인 엠디카에 대한 사법통역은 파키스탄 출신으로서 우리나라 사람과 결혼하여 정착한 사람이 맡았다.


파키스탄인인 그가 어째서 방글라데시어를 습득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담할 때 보니 그는 우리나라에 오래 살아서 한국어도 능숙했다.


피고인 엠디카도 우리나라 공장에서 오래 일해서 어느 정도의 의사소통은 되었지만, 방글라데시인이 법률용어와 법정에서의 언어를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우므로 수사에서 상담, 재판까지 법률 통역서비스를 받게 되었다.


법정에서는 사법통역인이 재판장의 말을 받아서 피고인 나라 언어로 피고인에게 전달하고, 피고인이 자기 나라 언어로 답하면 통역인이 이를 듣고 다시 재판장에게 한국어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드디어 재판 당일, 법정에서의 모든 말은 사법통역인을 한번 거쳐서 피고인에게 전달되었다.

1. 진술거부권 고지

재판장) 피고인은 이 재판 진행 중에 진술을 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할 수 있고...


통역인) 피고인은 이 재판 진행 중에 진술을 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할 수 있고...


피고인) 네.


2. 피고인 본인이 틀림없는지 확인하는 ‘인정신문’

재판장) 피고인 이름은 무엇입니까.


통역인) 피고인 이름은 무엇입니까.


피고인) 엠디카입니다.


이후 직업과 국내 주소, 국적까지 인정신문은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3. 주소 변동사실 보고의무 고지

재판장) 피고인은 재판기일에는 항상 출석하여야 하고..


통역인) 피고인은 재판기일에는 항상 출석...

이때 갑자기 재판장님 앞에 앉아 계시던 계장님이

코브라가 바구니에서 쉬이익하고 나오는 것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엉거주춤 일어나셨다.


그러고는 재판장님께 암표를 파는 것처럼 은밀하게(그러나 온 법정에 다 들리도록) 말하셨다.

지금까지 통역인하고 피고인이 계속 한국말을 했는데요.


재판장님이 한국말로 하시면 통역인이 이어서 피고인에게 한국말로 다시 옮기고 피고인은 한국말로 대답하고 재판장님은 피고인의 한국말을 듣고 다음 절차를 진행하고 그랬던 것이다.


재판장 한국어⇒ 파키스탄인 사법통역인 한국어 ⇒ 방글라데시인 피고인 한국어


통역인과 피고인이 우리나라에 산 지 오래되어 우리나라 말이 편했던 모양이다.

계장님이 말씀하시기 전에는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순간 모두 멍...


그러다 통역인, 피고인, 검사, 재판장, 계장님과 나도 모두 일순간에 빵 터졌다.



그리고 재판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엄숙하고 진지하게.

오올.. 외국어 하니까 사법통역인 머시써..


피고인에게 무죄는 선고되지 않았지만,

재판장님은 다친 친구를 버리지 않은 피고인에게 선고유예의 선처를 해 주셨다.


그 사건 재판 때 엠디카의 사장님이 엠디카는 숙련기술자로서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인재인 ‘반장’이고, 엠디카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넘겼다며 눈물의 탄원서를 제출해 주셨다.

엠디카를 고용하고 계시는 사장님은 오징어 게임의 알리 사장님과 다르게 따뜻한 것 같았다.


엠디카와 사법통역인은

버스정류장에서 자신이 탈 버스가 아니면

한 걸음 뒤로 물러나고 기사님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면서

진정한 한국솨람으로 잘 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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