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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려던 나무

(호의와 권리의 경계)

by 몬스테라

피고인 김정호(가명). 30대 초반의 남자 피고인이다.

그는 아무런 전과가 없던 사람이었다.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쳤다.

세계 100대 명문대에 포함된다는 중국의 한 명문대학교를 나온 사람이었다.

그는 최근 부쩍 쉽게 흥분하고 뇌전증으로 쓰러지는 일도 생겼다.


그는 아내에게 핀잔을 주고 있는 어머니를 보다 흥분하여 어머니를 식칼로 찔렀다.

그러고는 바로 직접 경찰에 신고했다. 그 무렵 피고인은 아내도 때리고 아이도 때려서

특수 존속상해죄와 폭행, 아동학대로도 기소가 되었고 아내, 아이와는 분리가 되었다.


이후에는 아내와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센터를 찾아가

아내를 보게 해 달라고 난동을 부려서 업무방해와 재물손괴죄가 추가되었다.

나는 항소심을 맡고 있었고 피고인은 양형부당만을 주장하고 있었다.

1심에서 어머니와 처로부터는 용서를 받았고 이러한 점이 참작되었다.


피고인과 접견하고 난 다음에는 의례히 피고인들에게 하는 말로

더 궁금하신 것이 생각나시거나 요청하실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서신 하세요. 답변드릴게요


라고 했다. 나는 평소 피고인들이 편지를 보내면 인터넷 서신 등으로 비교적 빨리 답변해주었다.



그런데 이 피고인은 사실조회를 하듯이 꼼꼼한 질문사항을 써서 매일 편지를 보내는 것이다.

재판기일을 앞두고는 떨리니 재판을 보러 오지 말라는 말도 가족에게 전하라고 했다.

합의가 어찌 되는지 알아보라고도 하고 아버지로부터 탄원서와 진단서를 받아서 제출하라고 하고

좀 있다 보면 아버지로부터 받아서 재판부에 제출했는지 답을 달라고 편지가 왔다.

좀 번거롭기는 했지만 어찌 보면 필요한 일들이기도 하니까... 이러면서 서신에 다 답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피고인의 아버지가 나에게 전화를 해서, 피고인이 가족을 죽이겠다고 수시로 협박하고 어떤 때는 지금 죽이러 가고 있다고 연락을 해서 공포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피고인의 형이 너무 짧게 느껴지고, 자식이지만 솔직히 무서운데 형을 올리거나 깎이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이후 재판기일이 되었을 때, 법정에서 재판장님께서 물었다.

피고인은 아내와 아이가 보호받고 있는 센터에 가서 왜 난동을 부린 건가요.


그러자 피고인은

센터장이 도와줄 일이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아내를 보게 해달라고 하니 거절했습니다.

라고 했다.


재판장님은 피고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도와주지 않았다고 해서 그렇게 하면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피고인이 “센터장이 먼저 도와주겠다고 했다.”라고 했다.

재판장님은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피고인은 더 목소리 높여 같은 답을 반복했다.

그러자 재판장님은 “아.. 피고인이 왜 그랬는지 알겠네요.”라고 했다.


그에게는 도와주겠다는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도와주겠다고 했으면 그가 원하는 핀셋 도움을 줘야 하는 것이었다.


재판 이후에도 편지가 왔다. 매일 꼼꼼한 질문 리스트가 있었는데 답변을 해도 같은 것을 재확인하곤 했다.

매일 편지를 주고받으니 이건 내가 변호를 하는 것인지 사귀고 있는 건지..

항소이유서 내용을 보자고 해서 보내주고, 이것저것 묻는데

나중에는 집요하게 느껴졌고 ‘아주 국물 한 방울까지 안 남기고 다 퍼먹으려고 하네’하는 반감이 느껴졌다.


재판기일에 피고인이 한 말이 생각나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하계 휴정기(법원은 혹서기와 혹한기에 긴급한 사건을 제외하고는 각 2주씩 재판을 쉰다)에 사무실에 급한 연락 메모는 없는지 살피러 들렀다가, 또 그의 편지를 보고 말았다.


그런데 그 편지에는 ‘0월 0일 편지에 답변해주세요.’라고 되어 있었다. 는 그 날짜 편지에 이미 답을 했다. 그의 질문에 충분한 답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내가 보낸 서신이 도착하기 전에 그가 이 편지를 썼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오늘 김정호를 보고 한마디 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1시간 뒤로 접견신청을 했다(보통 접견신청서는 하루 전에 제출함).


촉박하게 신청해서 접견 안될까 봐 00 구치소 민원과에 접견신청서를 이메일로 보낼 때 ㅠㅠ 이런 눈물 표시까지 해가면서 긴급해서 한 시간 전에 신청한다고 죄송하다고 적었다.

그러면서도 이왕 가는 김에 접견 와 달라고 했던 조폭 출신 마약사범 피고인도 한 명 더 접견신청을 했다.


나는 사무실에 가볍게 들렸기 때문에 짧은 반바지에 구김이 많고 늘어진 티셔츠에 크록*를 신고 있었지만 복장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 없이 구치소로 질주했다.

막상 구치소에 도착하니 마음이 진정되었다. 접견실에 들어오는 그를 보기 전에

‘한 번의 화를 참으면 백일의 근심을 면한다’는 경함록의 문구를 떠올리면서 심호흡을 했다.

그냥 편지가 많으니 한 번에 얼굴 본 김에 물으라고 하고 일어서자 하고 다짐했다.


그런데 피고인이 손에 메모를 들고 들어와서 볼펜을 그어가면서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 메모에는 나에게 물을 것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는데

내가 이미 수도 없이 답한 것들을 재확인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 거문고의 줄이 탁 끊기는 느낌을 받았다.


팔짱을 끼고 피고인에게 말했다.

“김정호 씨, 저번에 법정에서 놀랐습니다. 보호센터 센터장이 민원인에게 어떤 도움을 드릴까요, 도울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돕겠습니다라고 했지 아내를 만나게 해 준다고 했나요. 김정호 씨가 원하는 것만이 도움은 아니잖아요.”


피고인은 매우 발발 떨면서 손소독제를 들어서 “제가 센터장이고 변호사님이 저예요, 제가 변호사님한테 어떤 음료를 드시겠어요라고 한 다음 변호사님이 콜라요라고 하자 줄 수 없어요.라고 하면 변호사님이라면 어떠시겠어요.”


(어이없어..)“상대방이 해줄 의무가 있는 일을 하지 않아도 그것은 절차대로 민원을 제기해야 하는 것이지, 김정호 씨가 한 행동은 우리 법이 허용하지 않는 행동입니다. 재범 가능성을 볼 때 반성 여부를 보는 이유는, 자기 행동이 잘못되었는지 모르면 또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김정호 씨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재범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고 이제 형을 뭐로 깎으실 거예요.”


피고인과 설전을 벌이다가 나는 피고인이 참 염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 받은 나는 지금까지 단호하고 차분한 모습이 사라지고,

머리를 흥분하여 깨방정처럼 흔들며 말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그러면 김정호 씨 사랑하는 거예요?
민원인 응대 매뉴얼이나 관행, 매너라는 것이 있잖아요. 김정호 씨한테는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라고 말하면 안 되겠네요.

라고 했다.

여기서 멈추었으면 좋았을걸.


내가 “편지를 쓰라고 한 것은 제 호의였어요. 제가 서비스를 하는 것이지 그것이 김정호 씨 권리는 아니에요. 권리처럼 저를 이용하지 마세요.”라고 하자

세계 100대 명문 대학교를 나온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구속된 피고인이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헌법에서 보장된 권리, 제 권리가 아닌가요. 변호사님의 서비스는 제 권리인데요.”

양심 없고 똑똑하기만 해 가지고.... 뭐래. 흥칫뿡.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그늘을 아낌없이 주려고 했는데,
김정호 씨는 나무를 베어 침대를 만들어 누우려고 했잖아요!

뻥 찐 피고인과 아무 말을 하던 나는 잠시 댕.. 적막이 흘렀다.

아 부끄럽다..

서로 진정하는 시간을 가진 뒤

“뭐 쓰고 싶으면 또 쓰던가요.”라고 했으니

내 크록*를 유심히 쳐다보는 교도관의 시선을 무릅쓰고 접견했지만 얻은 건 없었다.


방금 한 헛발질의 여파로 멍한 상태에서 그다음 조폭 출신 마약사범인 피고인을 접견했다.

그는 팔에 문신이 있었는데 화려한 채색 때문에 자꾸만 시선이 그쪽으로 갔다.


접견 중 피고인도 내 시선을 느꼈는지 경계심 있는 눈빛으로 나에게 물었다.


변호사님, 왜 자꾸 제 문신을 보는 겁니까?


그는 내가 그의 문신을 보고 자신에게 선입견을 가진다고 생각하여 불쾌했던 모양이었다.

정신을 차린 나는

아.. 제가 요즘 민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가지고...

갑자기 피고인이 큰 소리로 미친 듯이 웃었다.



누구나 가끔

자기 자신을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하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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