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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을 모으자. ​

(선도 악도 무르익으면 그 과보를 받는다.)

by 몬스테라

친한 언니가 일본 드라마 ‘중쇄를 찍자’를 추천했다.

원래 제목은 ‘중판출래’이다.

중쇄란 출판사에서 낸 책이 인기가 많을 때 추가로 인쇄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드라마에는 자기 일에 진심인 사람들이 나온다.

그중 출판사 사장 에피소드가 인상적이다.


검소하고 선행을 하는 삶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장은 사실 불우하게 성장했다.

공부를 잘했지만 대학 진학기회가 없었고

어머니는 그의 고등학교 졸업식 날 그를 홀로 두고 집을 나갔다.

충격과 상처를 받은 그는 탄광촌에서 고되게 일하면서 번 돈을 도박에 탕진하고 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악행을 저지른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어느 노인의 목에 칼을 대며 돈을 내놓으라고 한다.

그러자 노인이 말한다.


나를 죽이면 네 운은 거기서 끝이다.
좋은 걸 가르쳐 주지.
운은 모을 수가 있다.
좋은 일을 하면 운이 모이고
나쁜 짓을 하면 금세 운은 줄어든다.
사람이라도 죽여봐라. 너도 그 길로 끝이다.
운이 네 편을 들어주면
몇 십배로 복이 부풀어 오르는 거다.
운을 잘 써야 해.
내 말을 못 믿겠나?
그렇다면..
그건 네 운이다.


그는 그 길로 마을을 떠나 도시로 갔는데,

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중

동료로부터 시집 한 권을 받는다.


그리고 그 시집에 있는 ‘비에도 지지 않고’라는 시를 읽게 된다.

[비에도 지지 않고]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와 여름철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탐하지 아니하며
결코 화내지 않고
늘 조용히 미소 지어

동쪽에 병든 아이 있거든 가서 돌봐주고
서쪽에 고단한 어머니 계시거든
찾아가 볏단 지어 날라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거든
두려워 말라 가서 전해주며
북쪽에 싸움이나 소동이 나면
부질없는 짓이라며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이 들면 눈물 흘리고
냉해 든 여름이면 허둥대며 걷고

모두에게 얼간이 소리 들으며
칭찬받지는 못하나
근심을 끼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그는 시집 글귀에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며

책이 사람에게 주는 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평생 책을 만드는 일을 하기로 하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좋은 책에 모든 운을 쏟아 붓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그는 운을 모으고자

지나가는 길마다 쓰레기를 줍고 사소한 일부터 선행을 하며 검소하게 산다.


인상적인 내용이었다.


지난주 금요일 구치소 접견 때 나는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예민한 피고인을 만났다.


그는 사건과 무관한 얘기를 한 시간 동안 늘어놓으며

사건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못하게 했다.

항소 이유를 정리하려 하면 궁예가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하는위기의 눈빛으로 변했다.

경청하면서 그가 사건에 대한 얘기를 해주기를 기다리기도 하고

깜빡이 켜고 끼어들어서 사건에 대한 얘기를 조심스럽게 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말을 자르지 말라고 명령했고,

법은 자신이 나보다 더 잘 알기 때문에

항소 이유는 자기가 주장한 대로 정리하라고 했다.

말도 안 되는 법리를 내세우면서.

도저히 신뢰관계가 형성이 되지 않고,

어쩌면 나라서 저 사람이 이렇게 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믿음직한 변호인이 국선이라면 다를 수 있겠다 싶고

심장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나는 '국선변호인선정 취소신청’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안도감이 느껴졌다. 내려놓으니까 편안한 그런 느낌.

일어나려고 기록을 정리하려는 순간

중쇄를 찍자의 ‘운을 모으자’가 떠올랐다.


잠시 생각했다.

나는 지금 이 사람과 소개팅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


는 일어서려다 말고 용기 있게 그의 말을 끊었다.

그의 표정이 다시 ‘누가 기침을 하였는가’로 변했지만 상관없이 말했다.


“기록을 보니 일을 하면서도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따고, 먼 나라에서 고되게 일한 돈으로 어머니와 조카까지 부양하셨더라고요. 열심히 사시고, 가족들에게도 헌신적인 사람이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는 접견을 마칠 때에도 일어나다 앉기를 반복했고, 내가 접견실이 있는 건물을 나왔는데도 교도관을 통해 다시 불렀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무한 투덜거림..

나는

나에게 적대감을 보이고 위압적이었던 그에게

화를 내지 않았고

진심으로 그를 돕고 싶었고 그의 입장을 헤아렸으나

그에게 조금도 칭찬받지 않았다.


운을 모았다고 생각하니 나쁘지 않았다.

악한 사람도 악이 무르익기 전에는 복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악의 열매가 무르익으면 반드시 화를 입게 된다.


선한 사람도 불행한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선의 열매가 무르익으면 반드시 그 복을 받게 된다.


- 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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