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몬스테라 Mar 26. 2023

사소한 일도 꾸준히 하면 신성해진다.

(출간 작가 2명을 배출한 3인의 글쓰기 모임)


몇 년 전의 일이다.

사무실에 계신 변호사님 한분이 매일 피아노학원에 다닌다는 것이다. 내가 그분이 피아노학원에 다니는 것을 본 지는 8년이 지났다.

매일 꾸준히 연습한 결과 연주 실력이 상당히 수준급이다.

올봄에는 피아노학원 아이들과 연주회를 한다고 한다고 좋아하셨다.     


한편, 그 변호사님은 변호사로서 이름을 크게 날리신 적이 있다. 그 변호사님의 노력으로 어떤 법이 위헌판단을 받았고 법이 개정되기까지 했다.

일을 잘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려운 분들을 대하는 자세도 남달랐다.     


어느 날 나는 세면대에서 손을 씻다가 그 변호사님과 마주쳤다. 일을 하고 집에 가서 아이 챙기고, 하루 세끼 먹고 나면 하루가 다 가는 생활을 하던 내게

그 변호사님이 신기해 보였다.

변호사님, 어떻게 매일 운동하시고
매일 피아노를 치세요?


가장 우선순위에 두니까요.


일은요?

일은 반드시 하게 되지만,
운동이나 취미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이후 그 변호사님께서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을 써서 서로의 독자가 되어주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나는 너무나도 기뻤다.


졸업하기 위한 논문이나 변론하기 위한 변론요지서도 아니고 책을 내기 위해서 마감에 쫓겨 쓰는 원고도 아니고 이 세상에 단 한 명의 독자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쓰는 글쓰기라니!


직업상 변론요지서나 준비서면을 쓰기는 하지만 그것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법기술적인 부분도 있어서, 매일 법률서면을 쓴다고 해서 글을 쓴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순수하게 글을 쓰는 즐거움만을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다.     


글터디


나와 그 변호사님은 단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그 모임을 ‘글터디’라 이름 붙였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 점심에 서로의 글을 보았다.     

우리의 글터디는 한 해 뒤 또 다른 변호사님 한분이 참여해서 세 명이 되었다.

이 세명은 몇 년간 돈이나 출간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글을 쓰면서

서로의 독자가 되어주었다.          


우리는 글터디에서 서로 글을 써서 나눠보고 소회를 나누는 것 외에 더 대단한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 목적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철저히 행복을 추구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모임을 소중히 여기면서 계속 함께 했다.

나는 이 글터디가 소중했기 때문에 글 쓸 시간을 확보했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새벽에 글을 썼다. 일보다도 먼저하는 것이 글쓰기였던 것이다.

그때그때 의식의 흐름에 따라서 쓰는 글이라서 어떤 부담도 되지 않았다.


참 행복했다.

왜냐면 우리만 보는 글이라서 날 것의 감정을 드러냈으며 대중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각자 쓰고 싶은 글을 썼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글이 많이 쌓였다.  그리고 그 글의 일부를 브런치에 올렸고 출간제안을 받기도 했다.


처음 글터디를 시작한 이듬해, 처음 나와 글터디를 시작했던 변호사님의 책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2년 뒤 그 변호사님의 두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2년 뒤 나의 책이 출간되었다.     

세 명이서 하던 글터디에서 출간작가가 2명이 나왔고 다른 변호사님의 책은 베스트셀러에 디즈니 + 오리지널 시리즈 드라마로 제작되기까지 했다.

나머지 변호사님은 출간에 뜻이 없으셔서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그 변호사님의 글은 내가 지금까지 본 글들 중에 가장 매력적인 글이다. 그분은 올해 판사가 되었다.


우리의 글터디는 다른 변호사님들이 더 참여해서 이제 더 많은 멤버가 있다.     


얼마 전 글터디 원년멤버들이 만났다.

그리고 우리의 글쓰기에 관한 책을 낼까? 하는 얘기가 있었다. 농담처럼 한 얘기였다.     


우리 세명 다 글 쓰는 스타일이 달랐다.

나는 감성적이지만 비문이 많다. 맞춤법이나 논리도 잘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한 호흡에 글을 쓰는 편이다.

왜냐면 나는 ‘다 쓴 글’이 가장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똥글이라도 일단 글을 써야 퇴고를 할 수 있으니까.     


나머지 두 변호사님의 글은 잘 다듬어져 있고 논리적이며 모범적이다. 그렇지만 두 변호사님 글의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다.

한 분의 글은 단정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고,

한 분의 글은 동네 똥개가 홈그라운드 믿고 막 내달리는 그런 분위기지만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출판된 그 어떤 책들도 담을 수 없는 미췬 매력이 있다.     


나는 글쓰기 모임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 모임을 지속하는 것을 선택했다.


오랫동안 단순한 모임을 반복했지만

집중했고, 이 모임을 우선순위에 두고 별도의 시간을 확보했다.      

    

내가 책을 출간함으로써 금전적으로 크게 이익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친구들과

함께 한 시간들을

실물로 받아 들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다.    

 

사소한 일이라도 집중하고 꾸준히 한다면

그 힘을 느낄 때가 온다.


꾸준히 하는 일은 신성하다.

                                                     


작가의 이전글 자라서 피고인이 되지 않는 방법 - 청소년 법률강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