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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Feb 02. 2024

택시기사와 승객으로 다시 만나다.

시절인연(時節因緣)

시절인연(時節因緣)

- 법정 스님-
 
불가 용어에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게 있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 뜻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될 인연은 만나게 되어 있는 것이고
애를 써도 만나지 못할 인연은 만나지 못한다.

사람이나 일이나 물건과의 만남
또한 깨달음과의 만남도
그 때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혹은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시절 인연이 무르익지 않으면
바로 옆에 두고도 만날 수 없고
손에 넣을 수 없다.

 만나고 싶지 않아도 갖고 싶지 않아도
시절의 때를 만나면
기어코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헤어짐도 마찬가지다.
헤어지는 것은 인연이 딱 거기까지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재물이든
내 품 안에 내 마음속에서 내 손 안에서
영원히 머무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나는 이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좋다.

살다 보면 관계가 희미해지고 인연이 다 해가는 것을 느낄 때가 있고,

스며들듯이 인연을 맺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사나 이직처럼 이동하게 되면서 인연이 끝나는 사람도 있고 눈에서 멀어졌지만 아직 시절인연이 끝나지 않고 유지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사건으로 만난 피고인들과는 사건이 끝남과 동시에 인연도 끝난다.

그리고 다시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 만난다면 그건 또 형사재판을 받게 되었을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생각나는 피고인이 있었다.

그녀는 뇌종양과 심장병, 소아마비가 있는 여성 택시기사였는데, 가정폭력으로 이혼한 후 억척같이 일하며 혼자 아들을 키워냈다.  

   

사건은 비접촉사고 도주차량 사건이었다(뺑소니). 피고인은 억울해했고, 블랙박스 영상 등 어디에도 피고인이 사고사실을 인식했다고 볼 수 있거나 피해 오토바이가 피고인 때문에 넘어졌다고 단정할만한 자료가 없었다.


그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피고인의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어느 날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다. 대학병원을 수소문한 결과 피고인은 2주간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가 의식이 회복된 이후에는 심장수술을 하고 입원 중이었다.


피고인에게 염증이 있는지 재판 날짜가 다가오는데도 매일 심한 열이 나서

의사가 열이 계속 나는 한 재판이 있는 날 외출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피고인은 소아마비로 다리 길이가 달라서 식당일이나 파출부 일 등 다른 일은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앉아서 하는 운전은 가능한데, 뺑소니가 되면 면허가 취소되므로 택시기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면 생계가 막막해지는 상황이었다.     


피고인은 재판에 출석하지 못하거나 무죄를 받지 못하면, 자기는 퇴원해도 그냥 죽어 버릴 거 같다고 했다.


20대 앞길이 창창한 아들이 공사판에서 일하는데 그 아들에게 짐이 돼서 살 수는 없다고 했다.      

    

피고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출석할 테니 대신 자신이 일어설 때나 앉을 때 앞에서 안아달라고 했다.


가슴을 열고 수술했기 때문에 상체에 힘을 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국민참여재판 당일에 피고인이 아들의 부축을 받아 나왔다. 이뇨작용이 있는 약 때문에 수시로 화장실에 가야 하는 피고인(나와 같은 여성임)을 앞에서 안아 들고 일으켜 세우고 화장실까지 부축해서 간 다음 피고인이 바지를 내리면 다시 피고인을 안고 변기에 앉혀야 했고, 용변을 다 보면 내가 안고 일으켜 세워야 했다.


손에 힘을 주지 못하고 주저앉기를 반복하며 힘들어할 때에는 옷을 내리고 올리는 것도 내가 해 주어야 했다.    


가사와 일을 병행해 보았지만 변론과 간병을 병행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 사건은 무죄를 받았었다. 선고를 듣고 피고인을 부축해서 법정 밖으로 나오니 피고인의 아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우리를 살피며 엉거주춤 일어났다.     


피고인이 아들을 안고 소리 없이 울자 아들이 엄마의 등을 위아래로 쓸어내렸다.


고생하면서 살아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아끼는 모자의 모습을 보니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나와 그 피고인은 그날 선고를 마지막으로 시절인연이 다했고,

그 후 4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인근 다른 도시로 근무지도 옮기고 이사도 가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주,


나는 어떤 조직의 징계위원회 위원으로 참석해 달라고 하여 예전에 일했던 도시로 갔다.


회의를 마치고 역으로 가기 위해 카*오 택시를 불렀다.     


택시가 배차되고 기사님 이름과 얼굴이 떴다.


여성기사였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얼굴과 이름.  


택시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가슴이 뛰었다.


택시에 타고 내가


“선생님..”

이라고 부르자 기사님이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깜짝 놀라 입을 틀어막다가 너무 반갑다고, 내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녀는 악착같은 마음으로 운동하고 식단하고 재활해서 건강을 회복했다고 한다.

그리고 개인택시를 샀고, 재판 당시 일용노동을 하던 아들은 소방관이 되었다고 했다.   

  

그녀가 갑자기 미터기와 콜을 받는 기계를 껐다.


그러고는 집이 어디인지 물었다.

나는 택시로 한 시간이나 걸리는 곳이라 한사코 거절했는데, 그녀가      

“변호사님이 저를 살려주셨는데, 제가 이것도 못 해주나요”라고 했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다가 그 택시를 타고 집까지 함께 오게 되었다.


그녀는 그동안 어떤 좋은 일들이 있었는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그동안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건강도 좋아졌고 영구임대주택에도 들어가게 되었고, 아들은 공무원이 되고 자신은 정년 없이 일할 수 있으니 이제 부러울 것이 없다고 했다.

  

그녀에게서 사람의 강인함과 희망 같은 것을 느꼈다.     


집 앞에서 택시에서 내리기 전 그녀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 날 또 이렇게 기사와 승객으로 만나요.”


“그럼 다음에 만나면 그땐 택시비 받기예요?”    



찰나의 시절인연으로 만났다가 헤어졌고,

또다시 만났다가 헤어졌다.


새로 옮긴 사무실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피고인들 이 있어서 지쳐있는 나에게

그녀가 갑자기 나타나


그래도 사람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과

사람이 얼마나 강인한 존재인지를 다시금 알려주고 홀연히 떠났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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