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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Jun 09. 2024

엄마는, 60살에도 필요하다.

피고인은 미혼모로 아이를 낳고 자신의 성을 따라 아이 이름을 지었다.


아이의 출산을 반대했던 친정 식구들과 연을 끊고 홀로 아이를 키웠다.


이 피고인의 재판은 매번 수요일이었는데, 초등학생인 아이는 학교에서 수요일에는 일찍 마친다고 꼭 엄마와 함께 재판에 왔다.


피고인의 죄명은 음주운전이었는데, 징역형이 예상되는 상황에 선고기일이 다가왔다.


선고기일 전 딸이  재판부에 보낸 탄원서에는

판사님 엄마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잘 알아요.
그렇지만 우린 서로에게 유일한 보호자예요. 도와주세요.

라고 적혀 있었다.


아이는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혼자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학교에 잘 다니겠다고 했지만 아이를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피고인은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고 했다. 나는 관할구청 아동청소년과에 연락해서 사정을 설명드렸다.


담당 공무원은 아이가 보육원처럼 장기적인 보호시설로 들어가면 친부모라도 데리고 나오는 절차가 복잡하다면서 학대 아동들을 단기로 보호하는 시설을 알아보았다. 이 아이는 학대받은 아동이 아니지만 갈 곳이 없었다.


관할 구에는 이미 아동학대  보호시설  자리가 다 찼다. 그전에는 이렇게 학대받아서 부모와 분리된 아동들이 많은지 생각하지 못했다.


공무원은 다른 관할 아동학대 피해자 보호시설에 겨우 자리를 만들어서 아이를 보낼 수 있도록 준비했다.


드디어 선고기일.


피고인의 딸은 엄마의 만류에도 오후 2시 선고 시간에 맞추어 엄마를 따라왔다.

둘은 법정 안 방청석에 앉아서 서로를 쳐다보며 쓰다듬고 손을 잡기도 하면서 속삭였다.


사건번호와 피고인의 이름이 호명되자 피고인은 자리에 가방을 두고 피고인석으로 나갔다. 아마 자신이 구속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내 경험상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피고인처럼 있으면 구속이 자명했다.


나는 피고인의 가방을 안고 피고인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보통 선고기일에는 변호사가 나오지 않지만 , 나는 엄마가 구속된 이후 홀로 남을 아이를 위해 법정에 나갔다.


징역형이 선고되자 피고인이 살짝 비틀거렸다. 그리고 이어서 아이가 조용히 흐느끼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피고인의 휴대폰과 지갑이 든 가방을 피고인이 구치소에 영치시켰다가 출소하는 날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가방을 피고인에게 넘겨주었다.


피고인은 담담하게 교도관을 따라서 유치감으로 들어가는 문을 향하다가 뒤돌아서서 미소 띤 얼굴로 딸을  쳐다보며 살짝 손을 흔들었다.


피고인이 들어가자 나는 방청석에 있는 아이를 향해 다가갔다.


당시 법정에는 선고를 받으러 온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이는 크게 소리 내어 울지 않고 눈물을 쉼 없이 떨어뜨리고 있었다. 이제 세상에서 혼자가 된 것이다. 집에 가도 어딜 가도 이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는 신세가 되었다.


나는 아이가 매고 온 예쁘고 작은 백팩을 들고 나직하게  "가자.."라고 말했다.


아이는 한참을 차분히 눈물만 뚝뚝 떨어트리다가 일어서면서 숨이 넘어가듯 서럽게 흐느꼈다.


아이가 울면서 천천히 걸어 법정을 나가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소리 없이 지켜보았다.


선고할 사건이 많았음에도 재판장님은 아이가 법정을 나갈 때까지 다음 사건을 호명하지 않으시고  조용히 지켜보셨다.



 아이는 아이일 뿐이다. 아이는 죄가 없다. 가여웠다. 엄마는, 마흔에도 필요하다. 엄마가 없으면 60살도 슬프다.


나는 법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공무원에게 전화를 했다. 아이를 데리고 내려가서 대기하고 있던 공무원 두 분을 만났다. 공무원은 아이를 보자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고, 차에 태워서 법원을 나갔다.


이후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아이를 보호시설로 잘 입소시켰으며, 아이의 복리를 위해 도움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탁하겠노라고 문자가 왔다.


아이는 다른 관할로 가게 되어 전학을 시켰고, 주변에서 아이의 엄마가 구속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했다.



피고인의 딸을  보내고 몇 시간 뒤 나는 피고인을 구속한 재판부에 또 다른 사건이 있어서 증인신문을 하러 들어갔다.


그 사건 증인신문이 그 재판부의 마지막 재판이라서 재판을 마치자 경위가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라고 했다. 재판장님이 법정을 나가는 것이다.


나도 이제 사무실로 가려고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는데, 나가신 줄 알았던 재판장님이 우물쭈물 서 계셨다.


법정을 나가려던 찰나 재판장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변호사님, 아이는
보호해 주실 분에게 잘 갔나요..

재판장님은 다른 피고인들과  형평을 지키기 위해 피고인을 구속시키셨지만 우는 아이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셨던 것  같았다.




아이가 시설로 들어간 이후 통화를 했다.


엄마는 다음 봄이 가기 전에는
너랑 함께 있을 거야.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시간이 가고 해가 가는 것이 점점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올해만큼은 시간이 빨리 지나서 얼른 다시 봄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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