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 오다.

(마음의 당뇨)

by 몬스테라

오랜만에 글을 쓴다.

한동안 글을 쓰고 읽는 게 싫고, 그림 그리는 것도 재미가 없고 밖에 나가는 것도 힘들어서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나가지 않고 집에서만 있었다.


나는 호기심이 많아서 남의 일도 궁금한 게 많은데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의 소식에 관심이 없어지고 말수도 줄고 단톡방에 답을 하는 횟수도 줄기 시작했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데 걷기도 싫고 움직이는 것도 음악을 듣는 것도 다 귀찮고 싫었다. 매주 받던 PT도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잠시 중단했다.


병원에 가서 우울증 약을 타서 매일 성실하게 먹었지만 호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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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려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고, 접견신청을 했다가도 도저히 갈 수가 없어서 취소한 적도 있었다.


어느 날은 출근하러 나서다 호흡이 가빠지고 불안이 몰려와 병원으로 먼저 갔다. 원장님께 기존 약으로는 호전이 없고 애써 밖으로 나왔지만 호흡이 힘들고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린다고 말씀드렸다.


"변호사 안 하실 거예요?"


뜻밖의 말이었다.

그냥 부딪치라는 것이었다. 약 용량을 더 올리면 업무에 지장이 있을까 봐 염려도 하셨을 것이고 매사 약으로 해결할 순 없다는 취지인 것 같았다.


집에 있다고 해서 쉬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알 수 없는 그러나 깊은 우울감의 무게 때문에 마음이 아니라 어깨와 등이 무겁고 아파올 정도였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혼자 집 소파에 너구리 모양 애착인형을 안고 웅크리고 앉아서 해가 뜨고 해가 중천에 올랐다가 저물어가도록 그대로 있었던 날도 많았다.


우울한 것이 힘들어서 인형을 안고 울기도 했다.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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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대, 30대 시절 집안에 큰 우환을 겪었는데, 당시 같은 우환을 겪은 나의 동생들은 힘들어하기는 했어도 나처럼 감정적으로 우울해하지 않았다. 나만 지나치게 우울해했고 비통해했다.


나에게 어려움을 주었던 일들은 길게 나를 힘들게 했지만 그것도 시간이 흘러 모두 지나간 일이 되고 안정도 되었다.


나의 MBTI는 INFP다. 감성적이고 예민한 나의 성격은 공감과 창의성에는 장점으로 작용했지만 나머지 일상에는 불편함을 주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원래 생물학적으로, 선천적으로 우울증에 취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상태를 걱정한 친구들은 집에 한우를 보내주기도 했고, 친한 언니는 직접 구운 갈치를 퀵으로 보내주기도 했다. 아침마다 톡으로 운동인증을 올리며 나에게 운동을 독려하고 함께 걷자고도 했다. 그런 도움들 때문에 조금씩 밖으로 나가고 나아지려고 노력을 한 것 같다.


지속되는 우울감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뇌의 문제인 것 같아서 약은 꾸준히 먹고 있다. 깊은 우울이 온 것은 여러 요소가 결합되어 천천히 스며들듯이 온 것이겠지만 생각해 보면 트리거는 있었던 것 같다.


최근 캄보디아 범죄단체 사건을 맡아서 여러 명을 변호하고 있다. 그런데 그 피고인들 입장에서도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하니 예민했던 것 같고, 캄보디아에서 감금 폭행 당하다가 탈출한 사정도 있어서 억울한 사정도 있다 보니 나에게 좀 거칠게 따지거나 모욕적인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기소한 것도 아니고 나는 변호인인데.


우울하던 차에 여러 명으로부터 압박면접을 받듯 따지는 소리도 듣고 하다 보니 출근해서 그 기록이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걸 보는 게 가슴이 답답했다. 다른 사건에서도 예민하게 따지는 피고인을 만났는데,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명으로부터 비난의 말을 들으니 내가 무능력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힘이 빠졌다.


그러나 그런 일도 예전 같았으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우울하다 보니 모든 것이 우울증을 악화시키는 요소로 된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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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을 극복하기 위해 오랜만에 글을 쓴다.

지난 주말에는 민화 수업에도 나가서 그림을 그렸다.


PT 수업을 다시 받기 시작했고, 출근해서 다시 기록을 보고 피고인들을 만나고 일상을 회복해 가는 중이다.

날이 좀 따뜻해지면 음악을 들으며 걸어서 출퇴근을 해보려고 한다. 사무실과 집은 걸어서 40분 거리이니 운동도 되고 좋을 것 같다.


내 마음도

봄동처럼 곧 흙 위로 쏘옥 솟아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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