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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Jul 01. 2020

고액 알바 - 보이스피싱 편

(골로 가는 급행열차)

  

보이스피싱과 관련된 전자금융거래법위반사건이나 현금 인출책, 수거책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처벌받는 사기사건 피고인들을 보면 늘 마음이 무겁다. 일당 10만 원이 급하지만 절도를 하거나 중고나라 사기나 누구 등을 치지 않고 나름대로는 땀 흘려 일하려고 고액 아르바이트를 검색했다가 말려든 경우가 많다.  

  



고액 알바는 생명 ‧ 신체의 위험, 또는 법적인 책임이나 명예의 실추를 담보로 하는 것이 많다.


위에 열거한 것과 관련한 아무런 위험이 없고 편한 일이기까지 한데 고액 알바다,

그럼 채용한 사람이 아직 그 ‘위험’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은 것이다.    


고층건물 창문청소나 아파트 외벽 페인트 칠하기 이런 것은 고액인 것이 정상이다.

그 외 고액 알바로 ‘시체 닦기’가 거론되나, 이제 그런 아르바이트는 없다고 보면 된다. 염습은 전문적인 요령과 절차,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므로 요즘은 장례지도사가 한다.    

 

단순히 전달, 배달, 수거, 추심업무인데 고액이다, 그러면 알려주지 않은 위험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몇 천 원에 간단한 업무를 시킬 수 있는 심부름 어플 ‘김집사’가 있는데 왜 날 채용하지?

업무가 단순해서 외국인 노동자를 시켜도 되는데 왜 큰 비용을 지불하고 한국인을 채용하지?


잘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서울 중앙지검 소속 김민수 검사가 전화로 금융사기사건 등에 연루되었으니 조사를 위해 돈을 출금해서 옮겨야 한다거나, 검찰 수사관이나 금융감독위원회 직원을 만나 돈을 맡기라고 해서 나갔더니,

금융감독위 직원이 크록스 신고 바구니에 ‘김집사’라고 적힌 자전거를 타고 온다거나, 검찰 수사관인데 태국인이거나 하면 보이스피싱이 들통나겠지.    



 ‘고액 알바를 하다가 보이스피싱 범죄의 가해자로 되지 않도록’,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보았다.


[안전하고 합법적인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체크리스트]  

  

2개 이상 해당되면, 당신의 직장은 안심 직장.

  

1. 급여에 비해 노예처럼 일하고 있는 것 같다.

2. 월급이 내 방처럼 아담하다(월급이 쥐똥만 하다면 더욱 안심이다).

3. 이직하려고 맨날 취업사이트를 띄워놓고 일한다(범죄가 되는 고액 알바는 영원히 하고 싶을 정도로 편하다).

4. 얼굴도 보기 싫은 상사를 매일 보아야 한다(범죄조직에서는 상위 조직이나 총책을 보여주지 않는다).

5. 취업 전 대면 면접을 본다(보이스피싱과 연관된 알바는 대면 면접을 하지 않는다. 왜냐면

별다른 능력이 필요 없고, 그냥 사람이면 되니까).

6. 상사나 사장이 스토커처럼 나의 사무실 출퇴근 시간을 체크한다(보이스피싱 현금 수거 및 인출직 알바는 재택근무나 외근직).



한 20대 초반 피고인은 모자라는 지능을 가지고, 지능범죄로 기소되었다. 피고인의 부모님은 이혼 후 각자 재혼했고, 피고인은 외조부모님께서 키워주셨는데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는 치매 증상이 있었다. 피고인은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외할머니는 자신이 부양하겠다는 마음으로 아르바이트를 검색했다.     


여기저기서 면접을 보았지만 아르바이트 자리도 모두 거절당했고, 단 한 군데만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그 회사는 피고인을 직접 면접하지 않고, 일할 의지만 확인하고 채용했다. 피고인의 상사인 황 부장은 위챗으로 업무를 지시했다(문자나 카카오톡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음).    


피고인의 업무는 지하철에서 택배함에서 체크카드와 통장을 수거해 오는 일이었고, 하루 일당 15만 원이었다. 일도 힘들지 않고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정말 좋은 일자리가 생긴 것이다.    

 

피고인은 그 일을 열심히 했다. 그런데 계속 일당 15만 원을 진짜로 주었다. 피고인은 상사를 보기 어려운 직장구조가 아쉽긴 했지만, 약속한 15만 원을 매일 준 직장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고용주가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시장에 있는 외할머니 집으로 경찰이 들이닥쳐 피고인을 체포해 갔다. 피고인이 수거한 체크카드와 통장이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의 피해금 입금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피고인은 보이스피싱 공범이 되었다.    


피고인은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기록에는 1심 변호인이 제출한 피고인의 군 복무 시절 군의관이 작성한 의무기록사본과 피고인이 학창 시절 선생님의 권유로 받게 된 검사지가 붙어 있었다. 지능이 70이 되지 않고 숫자를 거꾸로 세는 것이 불가능하며 뉘앙스나 의미를 잘 모른다, 판단능력이 매우 저조한 정신지체라는 것이다.    

 

접견 온 나에게 피고인은 보이스피싱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나에게 되물었다.     


그 보이스피싱 사건에서도 열심히 무죄 주장해 보았지만 무죄는 받지 못했다. 왜 무죄를 못 받았느냐. 무죄를 주셔야 무죄를 받지. 서면도 열심히 써보았지만 보이스피싱 피고인들의 경솔함은 액체 괴물처럼 쭉쭉 늘어나 ‘미필적 고의’가 되고 ‘공모’도 되었다. 경찰 수사기록부터 쭉 보면 변신 로봇 같다. 영혼을 담아 변론해보았지만 내 변론은 MR 없이 생목으로 부르는 노래 같고, 마치 구치소 수용자들을 상대로 ‘밧줄로 꽁꽁’이라는 트로트를 부르고 있는 것처럼 싸했다.     


피고인에게 뭐가 제일 힘드냐고 하니까, 외할머니가 요양원에 입원하시기 전 화장도 하고 치마도 이쁘게 입고 면회 왔었다고 한다. 피고인은 나와 대화 중 갑자기 팔로 눈을 가리더니, ‘외할머니가 그렇게 이쁘게 한 모습은 첨 봤어요.’라고 흐느꼈다.     


평생 소박한 옷을 입고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할머니는 구속된 손자를 면회 가는 날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안 하던 화장을 했다. 손자에게 무어라도 보탬은 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모습에라도 공을 들인 외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졌다.        


보이스피싱을 근절시켜야 돼서 엄벌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어떤 사건에서는 형사소송법의 기본원칙이 훼손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고개를 갸웃하는 일도 있었다. 내가 준법의식이 부족한가? 내가 좀 이상한가? 나만 이렇게 생각하나?    

 


그러고 있던 어느 날 책상 위에 신건 유해물질 관리법 위반 환각물질 흡입 사건이 올라왔다. 피고인이 20대 여성이었는데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외출이 어렵다고 해서 내가 직접 정신병원으로 들어갔다.


미리 전화를 해서 3일 뒤에 간다고 했었는데, 피고인은 변호사가 병원으로 직접 와준다는 것에 고마워서 3일 밤낮으로 보석 십자수를 했다며 나에게 화려한 금문교의 야경이 담긴 십자수 액자를 주었다.


액자를 주는 그녀의 손이 약물중독 때문인지 심하게 덜덜 떨렸다. 그녀의 성의를 생각해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모습으로 받았다.  

  

술에 취한 채 부탄가스를 한 자리에서 3통이나 흡입해서 기소되었는데, 그녀에게는 아무런 전과가 없었다.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발레 학원 강사였던 여성이었다.     


몇 년 전부터 알코올 중독과 공황장애, 우울증으로 약물을 복용했지만 정신적 고통을 잊을 수가 없어서 부탄가스까지 손대게 되었다는 내용이 기록에 있어서 물었다.    

“언제부터 부탄가스를 흡입하고 알코올 중독 상태가 되신 건가요.”


그녀가 떠는 손으로 어렵게 한 알 한 알 붙여 나가 완성시켰을 그 십자수 액자를 들고 정신병원을 나오는데, 피고인이 내 질문에 한 답변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3년 전, 보이스피싱으로 몇 천만 원을 날리고부터요.”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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