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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by 몬스테라

구속된 피고인들은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환자인 수용자의 경우에는 하늘색 등으로 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옷의 작은 표식이 다른 수용자들과 구분 지어 준다. 수용자들이 입는 옷 오른쪽 가슴에는 그 사람 방의 위치를 알려주는 명찰이 붙어 있고, 왼쪽 가슴에는 그 사람의 수용자 번호가 적힌 명찰이 붙어 있다. 방 위치는 층과 동, 호실을 의미하는 문자와 숫자로 구성되어 있고, 명찰은 천 재질이며 옷에 핀 없이 붙어 있다.

그 명찰의 색깔은 흰색인데, 조직폭력배나 예의 주시해야 하는 인물의 경우 노란색 명찰을 달고 있다. 폭력조직원 계보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명찰에 조직명도 표시된다. 예를 들어, 조직 이름이 ‘청담동 불쏘시개’라면 ‘청불’로 표시된다.


내가 만나는 피고인들은 팔에 문신이 있는 경우가 많다.

구속된 피고인들도 여름 복장은 반팔이기 때문에 팔에 한 문신은 훤히 보인다.


문신을 한 피고인들은 구속되어 있으나 밖에 있으나 형사재판을 받으러 올 때는 드레스코드가 있다. 바로 팔 토시다. 팔토시는 문신을 가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역으로 팔 토시를 하고 법정에 선 사람은 문신을 한 사람임을 입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요즘은 문신을 하지 않은 사람이 문신을 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한 팔 토시도 판다. 이름 하여 ‘보복운전 방지 팔 토시’다. 이걸 끼고 있다가 누가 ‘운전을 그따위로 하느냐’고 욕을 하며 차로 다가올 때 창문만 내려주면 된다.





얼마 전 항소심 재판 중인 구속 피고인들을 접견했는데 팔에 문신을 한 사람이 4명이었다. 문신은 주로 잉어나 용, 고사성어 같은 것들 이었다. 그런데 한 피고인의 문신은 컬러감이 전혀 없고 잉어인지 붕어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조잡했다. 아직 젊었는데 문신이 저게 뭐냐 싶어서 잉어를 짜리 몽땅 토실하게 그리고 잉어 수염을 꼭 메기같이 그린 이유가 있냐고 물었다.


피고인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피고인을 두고 재혼해서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피고인은 명태 공장과 공사현장에서 일용노동을 하면서 살아온 20대 청년이었다. 동네 형이 타투하는 일을 하려고 준비하면서 피고인의 팔에 그리기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림도 동네형이 골랐고, 그 형이 색깔도 넣어주지 않아서 거의 몸에 심하게 낙서를 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어 있었다. 피고인도 흉해서 지우고자 했으나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포기했다고 한다. 동네 형이 양팔과 상반신에 그림연습을 하는 동안 통증이 심했지만 안 한다고 하면 때리니까 참았다고 한다.


다음 피고인도 20대였는데 소년보호처분 전력도 없고, 초범인데 징역형이었다. 팔에 한자로 ‘불립문자’라고 엉성하게 적혀 있었고 옆에 지렁이 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다. 용을 그리려다 실패했던 것 같다.


피고인에게 ‘불립문자’가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으니 형들(물론 친형 아님)이 강제로 태국 문신업자에게 데려가 새겨달라고 한 문신이라서 잘 모른다고 했다. 불립문자란, 진리는 말이나 글로 전할 수 없다는 뜻이다. 피고인의 몸에 있는 문신은 사과에 ‘복숭아’라고 새겨 놓은 것 같이 뜬금없었다.


다른 피고인은 문신이 있는지 모르고 상담하다가 벌어진 상의 사이로 살짝 ‘c’ 자가 보여서 뭐라고 적은 거냐고 물으니 쑥스럽게 웃으며 ‘카르페 디엠’이라고 했다. 피고인은 조금도 참지 않고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욕하고 찰나에 충실했기 때문에 이번엔 징역 2년을 받았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카르페디엠처럼 살았던 피고인이라 문신이 피고인과 잘 어울린다고 해주었다. 잘 어울린다고 하니 일단 피고인이 좋아했다.


피고인들의 행위는 나쁘지만 처지는 안타까웠다.

부모의 부재나 학대, 가난과 학업단절로 인한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열심히 일하면서 건전하게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부실한 문신이 말해주는 그들의 삶처럼 모범적이지 않고 비주류인 인생에도 1등부터 꼴찌가 있다.


예전엔 문신을 한 사람을 보면 위압감이 들었는데 요즘엔 문신을 한 사람을 보면 그냥 문신의 모양을 본다.

저것은 누가 그렸을까. 동네 형이 그렸을까 태국에서 초빙한 불법체류자인 타투이스트가 그렸을까.


어린 시절에 양 팔과 상반신 앞뒤로 문신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환경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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