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의는 법정 공방을 지켜본 배심원들이 평의실에서 피고인의 유·무죄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는 절차이고, 평결은 배심원이 평의를 통하여 유·무죄에 관한 최종 판단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배심원은 평의에 참여하여 자신의 주장을 충분히 진술하고 상대방 의견을 경청하여 법정에서 보고 들은 증거에 따라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배심원 대표는 평의를 주재하고 재판부 의견 진술 요청, 평결결과 집계, 평결서 작성 및 전달의 역할을 한다.
평의 과정에서는, 법정에서 보고 들은 증거와 재판장 설명에 기초하여 유·무죄를 논의한다. 유·무죄 의견이 나뉘면 토론·설득을 통하여 만장일치에 이르도록 노력한다. 배심원 과반수가 요청하면 재판부 의견을 청취할 수 있다.
배심원 대표는 배심원의 유·무죄 의견을 분명하게 확인하여 평결 결과를 집계해야 한다. 만장일치 평결이 내려지면 평결서를 작성하여 재판부에 전달한다.
유·무죄 의견이 일치되지 않으면 반드시 재판부 의견을 들어야 한다. 재판부 의견을 들은 후에는 충분히 평의를 진행하고, 평결이 내려지면 배심원 대표가 평결서를 작성한 후 재판부에 알린다.
유죄 평결이 내려지면 재판부와 함께 피고인에게 부과할 적정한 형에 대하여 토의한다.
배심원들은 주로 법원에 처음 오는 사람들이지만, 타인의 형사처벌에 관해서 판단을 함에 있어서는 굉장히 신중하고 냉철하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판단을 잘못하지 않기 위해서 더욱 공을 들이고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오히려 법조인보다 사건에 대한 편견이 덜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배심원들은 그날 배운 무죄추정의 원칙,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등 형사소송법 기본원칙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는 점 때문에 국민참여재판이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참작할 여지가 거의 없는 강력범죄나 성범죄의 경우는 주의해야 한다. 시민들이 엄할 때는 법원보다 더 엄하다. 일반재판으로 하면 살인사건에도 사형을 잘 선고하지 않는데,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배심원들의 의견을 따라 사형을 선고한 사례가 있다.
배심원의 평의 절차에는 변호인이 참여할 수 없으므로 변호인의 역할은 변론종결 시까지이다.
국민참여재판의 경우라도 선고는 변론종결 이후 몇 시간 뒤에 이루어지므로(새벽 2시에 선고가 된 적도 있었다. 자정이 넘으면 배심원들은 일당을 더 받게 된다.), 나는 보통 선고까지 법원에서 기다리지 않고 돌아간다. 피고인은 선고할 때 있어야 하므로, 법원에서 대기한다.
한 번은 선고 때까지 피고인과 법정 복도에서 함께 기다린 적이 있었다. 저녁이 되니 법원 복도에도 불이 꺼지고 어두웠다. 피고인은 뇌병변 장애가 있는 독거노인이었고, 자살시도로 정신병원에 행정 입원해 있던 상태였다. 정신병원에서 법원에 피고인을 데리고 와 있어 줄 인력이 없어서, 나는 재판 마치고 피고인을 정신병원에 다시 데려다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피고인을 외출시켰다.
어두운 복도에서 오래 침묵을 지키기가 어색하면 서로 질문도 하고 그랬다.
“선생님은 언제가 제일 좋았어요?”
“버스 기사 할 때.. 운전할 수 있었을 때..”
이런 대화를 하다 보니 선고한다고 피고인에게 들어오라고 하였다.
피고인에게 유죄가 선고되고 구속되면 데려다주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할 텐데.. 어쩌지 하면서 기다리다 보니 피고인이 비틀거리면서 법정을 나왔다.
뇌병변이 있어서 잘 걷지도 못하고 말도 어눌한 피고인이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형사보상청구’ 안내문구가 적혀 있었다.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었다.
그때 울컥해서 피고인을 안아 주고
“다시는 이런 곳에 오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밖에는 비가 오고, 나는 차가 없고..
장애가 있는 노인을 데리고 먼 곳까지 가려니 막막했다.
택시를 부르려는 순간
전화가 왔다. 비가 오는 날에 차가 없는 내가 피고인을 정신병원에 데려다주어야 하는 사정을 알고 있었던 동료 국선전담 변호사 두 명이 법원 앞에 차를 대기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