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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by 몬스테라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얼마 전 점심을 먹고 밝게 웃으며 커피까지 마시던 동료 변호사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듣고 일어섰다.

다음 날 장례식장에 갔을 때 상복을 입고 슬피 우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뭐라고 위로를 하고 싶은데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고 그냥 슬퍼서 그녀의 팔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최근 나와 가까운 사람들 여러 명이 아버지를 잃었다.

그때마다 위로하고 힘이 되어 주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정작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아버지와는 아무래도 어머니보다는 서먹하게 지냈던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가 떠난 이후에는 후회와 아쉬움,
무엇보다 아버지에 대한 뒤늦은 이해로
일상에서 몰려오는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운 때가 종종 있는 것 같았다.

얼마 전 아버지를 잃은 내 동료 변호사는 예전에 어느 날 내가 조금 힘들다고 하자

며칠 뒤 따뜻한 편지와 손수 뜬 계란 모양, 물고기 모양 수세미를 내 방 책상 위에 두고 간 적이 있다.

참 고맙고 힘이 되었었다.


그래서 그녀가 힘든 일이 있을 때 나도 무언가로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장례식장에서도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팔을 잡고 눈물만 흘려서

위로도 못하는 내가 참 아쉬웠었다.


박준 시인의 산문집을 읽고 나니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산문집-



이하, 박준 시인의 시.


‘해남에서 온 편지’


배추는 먼저 올려보냈어.

겨울 지나면 너 한번 내려와라.

내가 줄 것은 없고

만나면 한번 안아줄게.


울음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꼭 울음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다.

일부러 시작할 수도 없고
그치려 해도 잘 그쳐지지 않는.

흐르고 흘러가다
툭툭 떨어지기도 하며.

그해 협재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오래 침묵했고
과거를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조금 안도했습니다.




그는 비가 내리는 것이라 했고
나는 비가 날고 있는 것이라 했고
너는 다만 슬프다고 했다.




박준 시인은 시인인데 글을 잘 써서 참 좋겠다.

나는 변호사인데 말을 잘 못해서 가끔 쫌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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