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월든 - 삶의 정수에 다가가다.

잔물결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망하지 않으리.

by 몬스테라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으며,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대자연의 예찬과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긴 불멸의 고전 ‘월든’

이 책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저술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매우 특이한 삶을 살았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으나 부와 명성을 좇는 안정된 직업을 갖지 않고 측량 일이나 목수일 등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글을 썼다.


세속의 관점에서는 특이한 행보였지만, 대자연 속의 한 사람으로서는 삶의 정수에 다가가 인생의 골수를 빼먹는 데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는 물질이나 성공지향적인 삶을 거부하고 내면의 풍요로움을 추구했다. 자연친화적인 삶을 중시하고 전쟁과 노예제도를 반대했다. 당시 미국은 영토확장을 위해 멕시코와 전쟁을 했는데 그에 드는 비용 충당을 위하여 인두세를 거두고 있었다. 인두세는 개인의 납세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성인에게 일률적으로 부과하는(사람 머릿수대로 부과)것이었다. 소로우는 제국주의적인 전쟁과 노예제도를 유지하던 정부를 불의한 조직으로 규정하고 항의하는 의미에서 인두세 납세를 거부했는데, 이 때문에 투옥되기도 했다.


그때 한 유명한 말이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1845년 그는 월든 호숫가의 숲 속에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밭을 일구면서 모든 점에서 소박하고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2년간에 걸쳐 시도한다. 소로우의 대표작인 '월든'은 이 숲 속 생활을 기록한 책이다. 당대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19세기에 쓰인 가장 중요한 책들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 고장 젊은이들의 불행은 농장과 주택, 창고와 가축과 농기구들을 유산으로 받은 데 기인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일단 얻으면 버리기가 쉽지 않다. 누가 이들을 흙의 노예로 만들었는가. 왜 한 ‘펙’의 먼지만 먹어도 될 것을 그들은 60 에이커나 되는 흙을 먹어야 하는가. 왜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무덤을 파기 시작하는가. 그들은 이런 모든 소유물들을 앞으로 밀고 가면서 어렵사리 한평생을 꾸려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병아리를 기르지 않기 때문에 솔개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자연에서 먹을 것을 얻고 월든 호수에서 낚시를 하고, 새와 곤충, 나무와 꽃들과 더불어 살았다. 그가 이 숲 생활을 기록해 둔 '월든'을 읽고 있으면 세상 속에서 진정한 독립을 이룬 한 인간을 보는 듯했다. 그는 이런 숲 생활을 통해서 내면의 풍요로움은 얻었으나, 반전 같은 아쉬움도 있다.

그는 좋은 공기 마시고, 자연 속에서 몸에 안 좋은 것은 안 먹었을 텐데..

45세에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sticker sticker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이었던 김여환 선생님의 책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멋진 근육질의 중년 남자였는데 수술도 힘든 말기 위암에 걸렸다. 그의 부인은 “뭐 하러 놀지도 못하고 헬스는 30년이나 밤낮으로 했던고”라고 하소연을 했다.

그래도

소로우는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에서 친지들에게 ‘살아 있는 순간들을 최대한으로 즐기고 있으며 아무런 회한이 없다’라고 편지를 썼다고 한다. 병문안을 갔던 친구는 “그처럼 큰 기쁨과 평화로움을 가지고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생을 깊게 살기를, 인생의 모든 골수를 빼먹기를 원했으며, 강인하고 엄격하게 살아, 삶이 아닌 것은 모두 때려 엎기를 원했다

소로우는 그 소망을 이룬 것이다.

내가 소로우의 말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이거다.

잔물결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망하지 않으리.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도 이 비슷한 느낌의 구절이 나온다. 신영복 선생님은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의 수감생활을 하셨다. 수형생활 10년 차인 옆방 재소자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 이야기이다.


20년 무기징역을 살아오는 동안 수시로 고민했습니다. 나는 왜 자살하지 않고 기약 없는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가.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 햇볕‘때문이었습니다. 겨울 독방에서 만나는 햇볕은 비스듬히 벽을 타고 내려와 마룻바닥에서 최대의 크기가 되었다가 맞은편 벽을 타고 창문 밖으로 나갑니다. 길어야 두 시간이었고 가장 클 때가 신문지 크기였습니다. 신문지만 한 햇볕을 무릎 위로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살아 있음의 어떤 절정이었습니다. 나는 신문지 크기의 햇볕만으로도 세상에 태어난 것은 손해가 아니었습니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받지 못했을 선물입니다.


사소한 것에 의미를 두고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다면,

그런 자신은

자신의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 브런치 작가 김마이너님이 쓴 ‘슬기로운 백수생활을 위해 정신무장을 도와줄 책 3권’이라는 글을 보고 ‘월든’(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은행나무)을 샀는데,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유기 고구마 구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