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물결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망하지 않으리.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으며,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세속의 관점에서는 특이한 행보였지만, 대자연 속의 한 사람으로서는 삶의 정수에 다가가 인생의 골수를 빼먹는 데 성공한 사람이었다.
내가 보기에 이 고장 젊은이들의 불행은 농장과 주택, 창고와 가축과 농기구들을 유산으로 받은 데 기인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일단 얻으면 버리기가 쉽지 않다. 누가 이들을 흙의 노예로 만들었는가. 왜 한 ‘펙’의 먼지만 먹어도 될 것을 그들은 60 에이커나 되는 흙을 먹어야 하는가. 왜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무덤을 파기 시작하는가. 그들은 이런 모든 소유물들을 앞으로 밀고 가면서 어렵사리 한평생을 꾸려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병아리를 기르지 않기 때문에 솔개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멋진 근육질의 중년 남자였는데 수술도 힘든 말기 위암에 걸렸다. 그의 부인은 “뭐 하러 놀지도 못하고 헬스는 30년이나 밤낮으로 했던고”라고 하소연을 했다.
나는 생을 깊게 살기를, 인생의 모든 골수를 빼먹기를 원했으며, 강인하고 엄격하게 살아, 삶이 아닌 것은 모두 때려 엎기를 원했다
잔물결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망하지 않으리.
20년 무기징역을 살아오는 동안 수시로 고민했습니다. 나는 왜 자살하지 않고 기약 없는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가.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 햇볕‘때문이었습니다. 겨울 독방에서 만나는 햇볕은 비스듬히 벽을 타고 내려와 마룻바닥에서 최대의 크기가 되었다가 맞은편 벽을 타고 창문 밖으로 나갑니다. 길어야 두 시간이었고 가장 클 때가 신문지 크기였습니다. 신문지만 한 햇볕을 무릎 위로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살아 있음의 어떤 절정이었습니다. 나는 신문지 크기의 햇볕만으로도 세상에 태어난 것은 손해가 아니었습니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받지 못했을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