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있구마)
같은 사무실에 친한 변호사님 방에 놀러 갔는데
창문에 고구마를 키우고 있었다.
고구마 키우냐고 물어보니,
먹으려고 하다가 때를 놓쳤다고 했다.
고구마를 신문지에 싸서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삶은 고구마가 되는데,
그렇게 먹으려고 방에 둔 고구마가 싹을 틔우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고구마가 탐이 나서, 내가 가져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그 변호사님은 매우 흔쾌히 고구마를 나에게 양도했고,
나는 사무실에서 비닐을 구해 고구마 싹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집으로 들고 왔다.
싹이 난 줄기가 끊어질까 봐 신생아 안듯 안고.
일단 집에 하루 두고 감상을 했다.
그릇에 물을 넣고 고구마를 담아 놓으니
흐뭇했다.
먹히지 않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이 고구마들의 양육환경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래도 우리 집보다는 자연이, 흙이 좋겠지.
나는 주말농장 텃밭에 채소를 키우고 있었는데, 그곳에 이 고구마를 심기로 결정했다.
처음 옮겨 심었을 때는
머리끄덩이만 밖에 나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렇게 흙속에 묻어두고 집에 가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에게 온 그 고구마는 정말 훌륭한 고구마였다.
불과 일주일 만에 이렇게 잘 성장한 것이다.
이제 그 땅에 자리 잡고 요양을 시작했다.
건강을 회복하고
출산 계획을 세우겠지.
그다음 주에 갔을 때에는 잎이 드디어 초록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제 완전히 자리 잡은 것 같다.
고구마야, 여기가 이제 너의 집이야.
여기서 아기 고구마도 낳고
마음껏 줄기를 뻗어가길.
계속 잘 자라준다면, 서리가 내리기 전에 고구마를 수확할 계획이다. 수확하면 고구마 2개에 이자 고구마를 붙여 그 변호사님께 돌려 드릴 것이다. 수확량이 많다면 동료 변호사들에게 증여할 큰 그림도 그리고 있다.
내일 밭에 가서 고구마를 만난다.
안녕? 잘 지냈니 고구마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