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 나오는 법정 모습이 실제와 다른 경우도 있고, 실제 법정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경우도 있다.
검사나 변호사가 주인공인 법정 드라마나 영화가 실제와 차이가 있다고 느낀 부분을 적어 보자면,
1. 법정에는 판사봉이 없다.
드라마에서는 한 사건만 선고하지만, 실제 법정에서는 한꺼번에 여러 건, 많을 때는 십 여건이나 수 십 건을 선고한다. 그때마다 판사봉을 들고 탕탕 치면 팔 나간다.
2. 갑작스럽게 증인이 등장하는 경우는 없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피고인이 억울하게 궁지에 몰려 있을 때, 법정 문이 벌컥 열리면서 반전을 일으키는 증인이 들어와 극적인 전개가 이루어지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장면은 아침 드라마에 나오는 이사회나 주주총회 장면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경영권 암투를 벌이다가 궁지에 몰려 있던 주인공이 이사회나 주주총회가 열리고 있는 회의실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 극적으로 경영권을 탈환하는 장면 같은 것이다.
실제 법정에서는 증인을 신청하면 재판장이 받아 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절차를 거친다. 만약 받아준다면 증인신청서를 제출하고 소환하는 절차를 거친다. 법정에는 매 기일마다 빽빽하게 많은 사건이 진행된다. 그중 비는 시간을 만들어서 증인신문을 하는데, 증인신문기일은 한두 달 전에 미리 정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나의 피고인은 재판받으러 오는 날, 나와 상의도 없이 ‘목격자’라면서 동네 사람들을 데리고 법정에 와서 “증인이 저기 있다”라고 했다. 재판장이 방청석에 우글거리고 있는 목격자들에 대한 증인신문을 하지 않고, 신청서를 별도로 내라고 하니 편파 재판이다, 정의가 죽었다면서 항의했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3. 드라마에 등장하는 법원 계단
드라마에서는 법원 건물 중심에 있는 큰 계단으로 이혼소송 당사자나 변호사들이 변론을 마치고 나오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법원 건물은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이 함께 있는 건물인데, 중앙계단은 법정으로 통하는 계단이 아니라서 실제로는 이 계단이 법정에 드나드는 계단으로 이용되지 않는다. 법정은 아래 사진에서 옆으로 뻗은 낮은 건물에 위치해 있고, 그 건물 끝에 법정으로 출입하는 각 통로가 있다.
4. 이의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법정에서 잘 쓰지 않는다. 그냥 재판장님이라고 호칭하고, 이의가 있으면 이의가 있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그냥 본론을 말한다.
5. 법정을 돌아다니며 하는 변론
아 제발.. 드라마에서 이 장면만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변론하는 사건의 피고인들은 그것이 정석인 줄 알고 나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일단, 일반 재판에서의 변론은 변호사석에서 서서 하거나 앉아서 한다(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들 앞에 서서 구두변론 하므로 예외임). 가만히 제자리에서 재판장을 보고 하거나 서류를 보면서 차분하게 한다. 대부분 재판 전 변론요지서나 답변서 같은 서류를 미리 내고, 재판부에서는 그 서류를 다 읽고 온 다음 법정에서는 내용을 확인하는 정도에 그치므로 실제 재판에서는 격정적인 공방이나 설전이 오고 가는 일이 잘 없고, 짧게 끝난다.
증인신문도 변호사석에 앉아서 한다. 서류를 증인에게 제시하는 것도 실물화상기를 통해서 한다. 법정 안에서 산만하게 오가거나 증인석에 엉덩이를 턱 걸치고 말하는 것이나 서류뭉치를 들고 마구 흔들면서 변론하는 것은 실제 법정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러면 재판장에게 한 소리 듣는다.
6. 수사를 한 검사는 법정에 없다.
검사는 수사검사와 공판검사로 분리되어 있다. 수사검사는 수사만 하고 법정에 검사복을 입고 나오는 검사는 공판검사이다. 공판검사는 수사검사가 공소를 제기한 사건이 유죄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공소유지’ 업무를 한다. 즉, 공판검사는 그 사건의 수사를 담당하지 않은 사람이다.
드라마에서는 수사한 검사가 법정에도 나와서 변호인이나 피고인과 치열한 공방을 펼치는데, 아주 간혹 복잡한 사건이나 특수한 경우 수사검사가 공판검사와 함께 나와서 증인신문을 하거나 보조하는 경우는 있어도 매 사건마다 그 사건의 수사검사가 공판까지 담당하는 경우는 없다.
7. 형사재판에서 “피고!!”라고 하는 경우는 없다.
드라마에 형사재판 장면에서 재판장이나 검사가 피고!!라고 소리치는 경우가 있다. 민사소송에서는 소를 제기한 사람이 원고, 상대방이 피고이다. 형사사건에서는 수사단계에서는 피의자, 법원 재판 단계에서는 피고인이라고 한다. 즉, 형사재판에서는 ‘피고’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수사과정에서는 자신이 ‘피의자’로 불렸는데, 재판 단계에서는 피고인이라고 하니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가끔 피고인이 최후진술을 할 때 “본 피고자..피고자는..피고자..”이런 말을 반복할 때가 있다. 피고자?? 불시에 그런 특이한 단어를 들으면 웃지 않기 위해 나는 혀를 또 깨물어야 한다. 그러나 사건 당사자들은 충분히 헷갈릴 수 있는 용어이다.
실제 법정에서는 드라마보다 드라마 같은 일도 있다.
얼마 전에는 법정구속이 되는 피고인을 피고인의 부모가 붙잡고 유치감에 못 들어가게 낚아채는 소동이 있었다. 교도관과 경위들이 부모를 떼어놓고, 피고인과 부모는 발버둥 치고 절규하고 법정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홀로 아기를 키우는 아빠가 아기띠에 생후 몇 개월 된 아기를 안고 재판받는 경우도 있었다. 아기 엄마가 출산 후 가출하고 연락을 두절했다고 한다. 아기는 아빠의 마스크를 벗기고 아빠 콧구멍에 손가락을 넣으며 아빠 품에 안겨서 천진하게 놀고, 아빠는 선고기일에 구속이 자명한 재판을 받고 있었다. 아이를 안고 달래는 폼과 그의 기저귀 가방을 보니 이건 쇼 아니고 찐이다 싶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이렇게 드라마, 영화와 실제는 다르지만 드라마와 영화가 우리 실제 인생보다 더 극적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