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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간섭기

(소심한 개복치 목격자)

by 몬스테라

요즘 기사에서 아파트 주민의 경비원에 대한 갑질이나 직장 갑질 기사를 종종 본다.


갑질.


어떤 권력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사람이 약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부당한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직이나 단체의 힘을 자신 개인의 힘으로 혼동하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전의 이야기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체육시설 안에 사우나가 있다.
그 사우나 입구에는 체육시설 관리도 하고 탈의실 사물함 열쇠를 나누어 주는 일을 하는 관리사무소 직원이 있다. 작은 부스 안에서 일을 하는데, 나이가 어려 보이는 여직원이다.


어느 날 내가 운동 후 사우나를 이용한 다음 탈의실에서 옷을 입고 있는데, 밖에서 난동에 가까운 괴성이 들렸다. 욕설과 고성, 폭언이 난무했는데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 톤이 너무 무서워서 내 손이 벌벌 떨릴 정도였다.


만취한 사람일까, 대체 무슨 일이지.


그 고성이 좀 오래 이어지는데도 말리는 사람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나가서 누군가 피해를 입는 상황이라면 112에 신고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우나 밖으로 나가 보니, 고성을 지르는 사람은 젊은 여자였다. 그 옆에는 그녀의 남편도 있었고, 심지어 그 여자 옆에는 5, 6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우리 와이프가 이만저만해서 화가 난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관리사무실 여직원을 책망하듯 말하며 거들었다.


그녀는 반말로 직원에게 소리 지르고 있었고, 삿대질도 하고 있었다. 여직원은 일어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대체 관리사무소 직원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사람이 저 정도로 광분하나 싶어서, 사건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그들 근처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는 척하면서 귀를 쫑긋했다.


대강 들어보니 그 주민은 직원이 키를 줄 때 공손하지 못했다는 것을 탓하고 있었고 그 여직원은 그러지 않았다고 항변하고 있었다. 별 일이 아니지만 그 주민은 네가 여기 사장이냐부터 해서 이제 여기서 일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말도 하고 굉장히 흥분한 상태였다.


건너편 골프연습장에는 주민들이 있었지만 스윽 쳐다보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주민이 관리사무실 직원에게 소리치는 것을 보고는, 무언가 관리사무실 직원의 실수로 주민이 아주 단단히 화가 났나 보다 생각하는 듯이.



그러나 그 장면을 보는 나의 시각은 좀 달랐다. 그 주민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 정도로 지속적이면 업무방해죄인데? 가까이 다가가서 삿대질이면 폭행죄. 어? 막말을 하네? 이건 명예훼손죄, 욕설을 하네 이건 모욕죄 추가..’


나는 싸움을 말리다 싸움에 휘말려 쌍방폭행 등등의 죄목으로 형사재판을 받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에 일단 직접 개입은 삼갔다. 내가 뜯어말리기에는 주민이 지나치게 광분 상태라 주변을 맴돌며 매의 눈으로 쳐다보았다. 남자 사우나에서 나올 가족을 기다리는 듯이 음료수를 꼴깍꼴깍 하면서.


내가 탈의실에 있을 때보다 근처에 있으니 주민의 목소리가 조금은 줄었다(핵폭탄 터지는 소리에서 터널공사 발파 소리 정도로).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그 직원에게 두고 보자는 말을 남긴 채 주민은 사우나로 들어갔다.


나는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다가가서 괜찮냐고 물었다.
당연히 안 괜찮겠지. 내가 가서 묻자 그녀는 서러운 듯이 울었다.
그녀가 상처도 받았겠지만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제가 다 보았어요. 문제가 생기면 제가 본 사실대로 말씀드릴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그 직원에게 내 휴대폰 번호와 내가 사는 곳 동, 호수를 적어 주었다.
곧 필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그 관리사무소 직원인데, 그날 괴성을 지르고 난리를 쳤던 그 주민이 관리소장과 입주자 대표에게 알리고 사과와 해고를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아파트 커뮤니티 홈페이지에도 올리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주민이 일방적으로 관리사무실 직원에게 당한 것처럼 사실관계를 왜곡시키고 있으니
체육시설 센터장님과 관리소장님과 통화를 해주고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그 직원의 요청에 따라 그녀의 상사들과 통화를 해서 내가 본 사실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 주민은 형사처벌 감인 행동을 하고도 여직원에게 사과를 하지 않았는데
그 직원이 왜 주민에게 사과를 해야 하느냐,
만약 왜곡된 사실로 커뮤니티에 글이라도 올린다면 내가 반박하겠으며
직원을 이 일로 해고한다면 ‘주민 갑질 사례’라고 했다.


그 주민이 사과와 해고를 압박하면 내가 한 말들을 전해 달라고 했다.
자기 자식한테 해도 아동학대로 처벌받을 만한 행동을 남의 집 귀한 자식에게 하셨다고.


이후 지금까지 그 직원은 계속 사우나 앞 부스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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