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튼 친정아버지의 일방적인 호의를 거절하지 못한 나는 어느 날 포도밭 옆에 있는 콘크리트 포장길에서 운전대를 잡고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아버지는 나에게 왜 자꾸 브레이크를 밟느냐며 면박을 주시고, 속도가 느리다고 면박을 주시고 밟아 밟아 더 밟아 왜 이렇게 느려 이런 식으로 계속 압박하셨다.
영혼이 탈탈 털리고 겁도 나고 해서 그만하고 싶었는데 친정아버지가 나보고 차를 돌려보라고 하셨다.
옆에 강을 끼고 있는 길에 차를 넣었다가 다시 후진해서 빠져나오는 방식으로 차를 돌리라고 했는데, 너무 쫄아 있어서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걸 가속페달을 밟아버렸다.
차가 앞으로 쑥 나가고 강으로 추락할 뻔한 걸 작은 콘크리트 구조물에 부딪쳐 겨우 섰다.
차 유리창은 다 깨지고, 순간 죽을뻔한 우리는 한참을 말없이 차에 앉아 있었다.
그날 '운전미숙으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구나' 하는 공포감이 들었고, 무려 15년간 극복이 되지 않았다.
너무 불편해서 운전할까 생각이 들다가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겁이 많아서 남편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서도 반대방향에서 달려오는 차를 보고 부딪칠까 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또 조금 극복하려던 차에 국선전담변호사가 되어 교통전담 재판부에 전속되게 되었고, 허구한 날 교통사고 기록을 보게 되었다. '운전대 잡는 순간 가는데 순서 없네..'이런 생각이 또 날 주저앉히고..
음주운전 사건 피고인들은
맨날 다시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을 것이라며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다.
그때마다 나는
술을 끊는 것보다 운전을 끊으시라는 현실조언을 드린다.
무수한 음주운전 사건을 하면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알중이신 분들은 술을 끊는 것이 다시 태어나는 것 수준으로 어렵구나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