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2. 수원지방법원에서 이춘재가 저지른 화성 연쇄살인사건 중 8차 사건(강간하고 살인)의 누명을 쓰고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씨의 재심 재판이 열렸다. 방청하려는 인원이 많아서 방청권을 선착순으로 배부했고, 이 사건은 내가 변호인인 사건이 아니므로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방청권을 얻어 재심 재판 법정에 들어갔다.
윤성여씨가 누명을 쓴 이 8차 사건은 이춘재의 DNA가 검출되지 않았고, 이춘재가 법정에서 자신이 진범임을 밝힌 적은 없었기 때문에 재심법정에서 이춘재의 입을 통해 직접 진범을 가리는 의미가 있었다.
이 재심 사건에서는 피고인이 윤성여이고, 이춘재는 증인으로 나왔다.
고아이자 가난한 소아마비 장애인으로서 전형적인 사회적 약자였던 피고인 윤성여씨가 고문을 당하고 자백하여 20년이나 징역살이를 했는데, 피해회복은 안 되겠지만 최소한 이춘재가 스스로 진실을 밝히고 윤성여씨에게 사과하여 한을 풀어주길 바랬다. 나는 이춘재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윤성여씨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기대했고, 박준영 변호사님의 명변론과 증인신문을 보고 싶어서 방청하기로 한 것이다.
긴 시간 재판이 이어졌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 글에서 다 담기는 어렵고 인상적이었던 장면 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1. 저는 손이 예쁜 여자를 좋아합니다.
뉴스 기사에 이춘재는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임을 자백받은 프로파일러 여형사에게 손이 예쁘다며 손을 잡아도 되냐고 물은 사실이 있다고 나온 적이 있었다. 피고인의 변호인이 이춘재에게 물었다.
“여형사에게 손을 달라고 해서 만진 사실이 있습니까?”
그러자 이춘재가
네.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왜 그랬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무덤덤하게 “손이 예뻐서요.”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저는 여자의 몸매나 얼굴은 보지 않습니다. 저는 손이 예쁜 여자를 좋아합니다.”
라고 했다.
너무나도 대수롭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고, 여자들을 줄줄이 죽여놓고는 손이 예쁜 여자가 좋다고 하니 섬뜩했다. 이춘재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법정에서는 섬칫 놀라는 소리와 탄식이 흘러나왔다.
나도 모르게 내 손을 쳐다보며 손이 안 예뻐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2.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았지만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춘재는 살인의 추억 영화에 대해서 남의 일처럼 말했다. 그리고 그 영화 속 이야기들은 잘못되었다고 했다. 자신이 비 오는 날이나 빨간 옷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듯한 것은 사실이 아니고, 자신은 그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살인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스타킹으로 손이나 입을 묶는 것은 자신의 시그니처가 아니라 그저 재갈을 물렸을 뿐이라고 했다.
심지어 자신은 검거 전 살인이나 강간 현장을 수도 없이 지나다니는 일상을 살았지만, 범행 현장을 볼 때도 아무런 느낌이나 감정이 들지 않았다고 했다.
3. 그도 자신의 가족 주검은 차마 보지 못했다.
이춘재가 프로파일러 여형사에게 입을 열게 된 것은 그 여형사가 이춘재의 상처에 대해서 공감해 주는 것이 고마워서였다고 했다. 형사는 이춘재의 인생 전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보였다.
이춘재가 중학교에 다닐 때 초등학교 입학 전인 어린 동생이 냇가에 빠져 죽었는데, 동생의 주검이 물밖로 끄집어 내 진 것을 보았지만 차마 다가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일이 충격이고 힘들었으며 상처였다고.
만 8세 된 여자아이를 성폭행하고 살해하면서도 자신의 어린 동생의 죽음에는 힘들어했다는 것이다. 그는 살인행위를 하는 인격과 자신을 분리하여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4. 26년 수감생활 동안 단 한번 아들을 보았다.
이춘재가 구속될 당시 아들이 3살이었다고 한다. 이춘재의 말에 의하면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가기 전 한번 면회 왔었다고 한다. 그것이 구속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들을 본 것이란다. 아들을 보고 ‘많이 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남의 생명은 일찍 마감시켜 놓고, 자신의 아들을 보고는 많이 자랐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황당했다. 이춘재가 죽인 어린 여자아이도 살아 있었으면 자신의 아들 또래로 성장했을 텐데 그런 부분에는 무감각한 듯 보였다.
5. 이춘재는 모범수이다.
이춘재는 부산교도소에 있다. 그는 약 10년 전부터 1급 모범수로 지냈고 교도소장상도 여러 번 받았다고 한다. 한 번도 수용기간에 타인과 다툰 적이 없고 징벌을 받은 적도 없으며, 교도소에서 신임을 얻어 작업반장을 하기도 했단다.
반면, 자전거와 스팸 등을 훔치고 구속된 나의 피고인들은 걸핏하면 방 사람들과 다퉈서 구치소에서 징벌을 받는다. 구치소에서는 징벌을 받은 수용자의 재판에 징벌한 이유를 제출하는데, 이것은 범죄 후 자숙하면서 조신하게 살지 않은 정황으로 불리한 양형자료이다. 징벌사유를 보면 ‘구치소에서는 남자라도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것이 국룰인데 서서 보았다’,‘ 자꾸 몸을 긁어 방에 각질과 비듬을 날린다.’는 이유로 다투었다는 등 찌질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춘재는 26년 수용기간 동안 타인과 다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엄청난 폭력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것이 발현되지 않은 것은 인격장애일까. 약자만 해친 것을 보면, 강자에게만 약한 사람으로서 남자들만 있는 수용시설 내에서는 위축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6. 곧 경찰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춘재는 자신이 증거를 은폐하는 방식으로 범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경찰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춘재가 피해자의 시계를 소지하고 파출소에 가게 되었을 때에도 그냥 주운 것이라는 말을 믿고 풀어주었고, 경찰이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이춘재라는 사실을 알고 자신을 찾는 것이 이렇게까지 늦어질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이춘재는 여러 범행을 하고도 경찰이 자신을 잡지 못하자 계속 범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7. 14건의 살인, 34건의 성폭행
모두 제가 한 것이 맞습니다. 제가 진범입니다.라고 밝혔다.
법정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누명을 썼던 피고인 윤성여씨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감정을 추스르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경찰이 밝히지 못한 것도 자신이 적극적으로 자백한 것도 있는데, 그 이유는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다 말하지 않으면 그것은 진실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글쎄.. 공소시효가 지나서 처벌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8. 이춘재의 얼굴, 이춘재의 사과
이춘재는 교도소에서 구입한 듯한 천 마스크를 끼고 왔다. 그 마스크를 끼고 신문에 답하다 보니 변호인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 잘 들리지 않았다. 변호인이 일회용 마스크로 교체해 달라고 부탁하자 이춘재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마스크를 벗었다. 그때 이춘재의 얼굴을 보았다. 과거 사진처럼 날카로운 얼굴이었지만 살이 찌고 흰머리가 있어서 반백의 스포츠머리였다. 그도 늙고 있었다.
이춘재는 잠깐의 휴정 시간에 피고인 옆을 지나면서 피고인에게 목례를 살짝 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고, 증인신문을 통해 자신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쓴 윤성여씨에게 사과도 했다.
9. 피해자 어머니가 오열하는 영상을 보고도 무덤덤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를 살해한 사건에서는 피해자 시신을 찾지 못하고, 시신이 버려져 있었던 곳은 개발이 되었다. 피해자 어머니는 30년이 다 되도록 딸의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고 딸을 포기하지 못했다. 시신을 눈앞에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피해자 어머니는 이춘재의 자백 후 사망했다고 한다. 딸이 오래전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서 희망의 끈을 놓았기 때문일까.
피해자 어머니가 왜 죽였는지 말해달라며 오열하고 절규하는 영상을 법정에서 틀었는데 이춘재는 표정 변화도 없고, 자신이 왜 그랬는지 자신도 모르며 당시 고민하긴 했지만 아이를 돌려보낼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춘재의 누명을 대신 쓰고 진범으로 몰려 수사받다가 고문으로 사망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소아마비 장애인이고 고아이면서 가난했던 피고인 윤성여씨가 겪어야 했던 고통의 과정에는 많은 사람의 잘못이 단계적으로 개입되어 있었다. 그런 것들이 절망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희망을 발견하기도 했다.
윤성여씨는 억울함 때문에 교도소에 있을 당시 하춘화의 ‘무죄’를 부르고 다녔으며 자신은 강간도 살인도 한 사실이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윤성여씨의 말을 믿어주고 수용생활을 도와주었던 교도관이 있었으며, 그 교도관은 출소할 때에도 갈 곳 없는 윤성여씨를 도와주었다고 한다.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된 죄수의 말을 믿어주고 그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피고인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자 재심을 주도한 박준영 변호사님, 지난 과오를 밝히고자 노력한 형사님, 사법부의 잘못에 대해서 사과한 현재의 재판부, 윤성여씨를 도와주는 이름 없는 사람들.
절대악도 존재하지만, 신의 돌봄과도 같은 선량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를 만든 봉준호 감독과 열연을 펼친 배우들은 이 사건을 세간에서 잊히지 않도록 했고,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을 갖도록 했다. 이 사건이 잊혔더라면 검거를 위한 노력도 시들했을 수도 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영화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과 그 파급력, 의미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