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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마켓 탈퇴기

by 몬스테라

중고 직거래 마켓 ‘당근 마켓’

주변에 당근 홀릭도 많고,

당근 마켓을 통해 중고 직거래 장소에서 학생이 교수님을 만나거나

직장상사를 만난 썰도 재미있고


그냥 벤치에 앉아 있었더니 누가 다가와서

“당근이시져.”라고 물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고


너도 나도 당근 하니 나도 당근 마켓을 이용해 보고 싶었다.

소심하게 아이 책 전집을 2천 원에 팔아보고..

미사용 물건을

이쁜 마음으로 나눔도 해 보려고

무료 나눔도 올렸다.


당근 초보라 나는 그 세계의 관행을 잘 몰랐는데

무료 나눔을 올렸더니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명이 채팅으로 연락했다.

처음 연락 온 사람은 자기가 아무 때고 편하게 찾아갈 수 있도록

어디 걸어두거나 넣어두는 것을 의미하는 ‘문고리’를 원했다.


그러나 상대방이 우리 집 앞이나 우편함으로 들어오려면 내가 우리 아파트 동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줘야 해서 문고리 방식은 안 된다고 거절하고는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대화가 끊겼다.

그리고 두 번째 순서로 연락 온 사람이 직접 가지러 온다고 해서, 나는 그분에게 드리기로 했다.


이후 문고리를 원했던 사람(이하 ‘문고리’라고만 한다)이 나에게 동호수(아파트 지하주차장 진입에 필요)랑 비밀번호 가르쳐 주는 것이 부담스럽냐고 물으며 압박하기에

곤란함을 표시하고 다른 분께 드리기로 했다고 답 했다.


그랬더니 동호수와 동 비밀번호를 조르던 문고리가 나를 신고한다는 것이다.

비매너라고 하면서 대화가 끝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은 신고감이라나.


나의 대화는 끝났지만 문고리는 대화가 끝나지 않은 것이었다.

문고리의 대화는 문고리 방식 거래로 관철시킬 때까지였기 때문에.


무료 나눔에 신고씩이나..

나는 문고리에게 마음 상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취지로 사과를 했다.



또 하나는

내가 어디 참가하면서 받은 특정 상품 모바일 상품권을 사용하지 않던 중

괜스레 당근 자체를 해보고 싶어서 올려 두었더니 바로 바코드를 넘겨 달라고 연락이 왔다.

입금은 내일 할 테니 바코드를 먼저 달라고. 그것도 밤 11시에.


당근 초보였던 나는 당근이란 원래 이렇게 시도 때도 없는 무한경쟁의 공간인가? 의문반.

매너 온도가 영하가 되지 않으려면 친절해야 한다는 마음반으로 답을 했다.


심지어 다음날 입금할테니 바코드부터 달라는 요구에, 돈을 받기 전 바코드를 먼저 넘겨주었다.


다음날 입금한다더니 입금을 안 해서 여러 번 챗으로 똑똑똑 했고,

상대방은 입금 시간을 정한 뒤 다시 어긴 다음에야 깜빡했다면서 입금을 했다.

그러고는 상대방이 나에게 채팅으로 말했다.


바코드를 이중으로 넘기면 신고할 거라고.


그것도 웃는 눈 표시와 물결 표시와 함께.



신고.

당근 마켓이 무슨 검찰청이냐 ㅜㅜ
비매너 신고를 하면 내가 무슨 당근 전자발찌라도 차나?


그렇긴 해도 기분 나쁘고 쇽샹했다.

누군가가 신고해서 형사재판받고 구치소에 가 있고 이런 사람들의

‘엄중한’ 현실을 지켜보는 나에게 ‘신고’라는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어떻게 저런 말을 쉽게 하지..ㅜㅜ


내가 이 두 사람과 거래하고 난 이후

나는 왜 당근을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면서 에너지가 방전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당근멘탈이 안 되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래서 당근에서 탈퇴했다.

나랑 당근은 안 맞는 거 같다.



신박한 정리를 보고 필이 꽂혀서 집 정리를 하던 연휴 동안

남편의 휴대폰에는 딸꾹질하듯 ‘당근’ 알림이 울렸고

남편은 직업이 ‘당근업’인 것처럼 바빴다.


남편의 당근 거래에는 비매너 상대방도 없고

무언가 올해 운을 당근의 원활한 거래에 다 쓰는 것처럼 매끄러웠다.


5천만 명 국민이 맞다고 해도 나하고 안 맞으면 안 맞는 거지... 하며 탈퇴하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하다.

나도 누군가에게 진상이기도 하겠지.


내가 얼마나 매너 있고 좋은 사람들과 인연 맺고 살고 있는지,

당근을 통해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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