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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프게 한 사건

(조현병)

by 몬스테라

구속되어 있는 20대 남자 피고인이 있었다.

횡단보도에서 일면식 없는 행인을 밀쳐서 다치게 한 사건이었다.

접견 가서 피고인에게 공소장을 내밀었다.


“읽어보셨죠?”


공소장을 한참 들여다보던 피고인은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돈 가방을 낚아채가는 사람으로부터 돈 가방을 빼앗은 것이 전부라고 했다.


“현장에 돈 가방은 없었어요. CCTV에서도 김대희(가명)씨는 손에 아무것도 없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어요. 겨울인데 반팔을 입고, 추워서인지는 몰라도 팔짱을 끼고 길을 건너다가 갑자기 행인에게 달려들었어요.”

피고인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실관계를 설명했다.


“아버지가 임대업을 하세요. 저는 아버지 심부름으로 수억 원을 인출해서 돈 가방에 넣은 다음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어요. 우리 부모님이 구속사실을 아신다면 당장 오셔서 저를 여기서 빼 줄 텐데, 아무래도 제가 어디 있는지 지금 모르고 계신 것 같아요.”


“구속영장 발부될 때 김대희 씨가 원하는 곳으로 구속 통지가 되었을 텐데 가족이 모를 리 가요.”


“아니에요. 우리 부모님이 아시면 구속될 때부터 사선 변호인을 선임해 주셨겠죠. 제가 왜 국선을 써요. 우리 어머니한테 전화 좀 해주세요. 저녁에는 늘 집에 계실 거예요. 꼭 좀 부탁드려요.”


“전화번호 한번 불러보세요. 어머니 전화번호요.”


기록을 넘겨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니 거기에 적힌 피고인의 전화번호와 똑같다.


“김대희 씨, 그건 김대희 씨 전화번호잖아요.”



기록상 피고인의 주소는 고시텔로 되어 있었다.

고시텔을 인터넷에 검색해서 전화하니 총무라는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총무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고시원비가 밀렸다면서 그 사람의 짐을 좀 가져가라고 했다.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하니 나는 한 번 더 접견을 갔다.

“변호사님, 집에 연락해보셨어요?”

“김대희 씨, 고시원 총무가 짐 좀 빼 달래요..”

“무슨 고시원이요? 아, 거기 우리 아버지 건물이에요.”

“일단 공소사실을 부인하는지,인정하는지 정리가 되어야 하는데, 대체 김대희 씨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요.”

“제가 나가면 아버지께 변호사님한테는 좀 두둑이 챙겨주시라고 할 테니 신경 좀 써주세요.”


나는 피고인의 기록을 보다가 그의 작은 아버지 연락처를 발견했다. 피고인의 작은 아버지 집을 찾아가 탐문한 경찰은 수사보고서에 피고인의 작은 아버지도 근래에는 피고인과 연락이 되지 않고 어디 사는지 모른다는 내용을 적어 놓았다.


나는 기록에 적힌 피고인의 작은 아버지 연락처를 보고, 피고인의 작은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통화를 하고 나니 온 몸에 힘이 빠졌다.



피고인은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자녀가 없는 가정에 입양되었다.
피고인의 친부모님은 경제적 형편이 어려웠지만 피고인을 사랑으로 키웠다.

피고인은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친부모님이 아닌 사실을 알고 방황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연이어 아버지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자 큰 충격을 받았다.

피고인은 어머니께서 투병하시느라 남긴 빚을 떠안았고,
피고인의 아버지가 목을 매단 현장을 직접 수습했다.

피고인은 부모님이 남긴 빚을 갚아야 된다는 생각에 고시원에 거주하면서
전단지도 돌리고 배달 일을 하고 물류센터 일을 해가면서 열심히 살았다.

피고인은 정신분열 진단을 받고 성실히 정신과 약을 먹었지만, 약이 독해서 고된 노동을 하기 어려워지자 먹지 않기 시작했다.
피고인이 약을 먹지 않는 동안 여러 사건이 일어났고, 이는 환청과 망상으로 인한 것이었다.

요즘은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이라고 한다. 조현(調絃)은 현악기의 줄을 조율하는 것을 말한다. 현악기의 줄은 너무 느슨하면 음이 낮아지고 너무 팽팽하면 음이 높아지고, 줄이 고르지 못하면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 음률을 고르게 현악기의 줄을 조율하는 것이 바로 조현이다. 조현병은 현악기의 줄을 고르게 하여 소리를 조화롭게 나도록 하는 것처럼 치유된다는 희망적인 병명이다.


그의 환청과 망상은 치유되어야 한다.

그러나, 환청과 망상이 없어지면 그다음에 이 사람은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


그가 줄을 고른 후에도 줄이 끊어지지 않고 제 소리를 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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