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쓰레기를 쓰겠어!

by 몬스테라

나는 매일 무언가를 써야 하는 직업이다.

변론요지서나 의견서, 항소이유서 같은.

잘 안 써질 때가 많다.

리서치 한 내용은 어디쯤에 넣는 것이 좋을지.

어떻게 전개해야 보기 쉽게 쓸 수 있을지, 쉽게 이해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논리 없는 읍소만 이어져서는 안 되면서도

공감을 얻어야 하고,


논리와 법리로 차분하게, 사건과 거리를 두고 써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피고인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도록 사연을 나열해야 할 때도 있다.


어떤 때는 내가 피고인의 변호인이면서도 피고인의 주장이 터무니없이 느껴지거나

해서는 안 될 주장 같기도 해서 서면을 시작조차 하지 못할 때도 있다.


시작만 하면 되는데, 어떻게든 쓰면 퇴고를 할 수 있는데

퇴고하려고 해도 써놓은 게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무언가를 미루었다는 것은 가슴의 묵직한 짐이 되어

일상에서 불안감과 부담감을 준다.


이것은 내 잠재의식 속에 쌓여 있다가

별것도 아닌 일에 이 부담감이 합쳐져 반응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도 늘 글을 쓰는 것은 시작이 어렵다.


심지어 나는 대학원 석사논문을 써야 하는데 미루다가 졸업도 못하고

영구 수료생이 되고 만 전력이 있다.


그래서 재입학을 해서 석사논문을 쓰려고 하는데,

논문을 쓰고 있지도 않으면서 논문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도저히 논문을 쓸 수 없는

이상한 상태로 지내게 되었다.


그러다 얼마 전 박사논문을 써야 하는 분으로부터

어느 책의 좋은 구절과 조언을 듣게 되었다.


쓰레기를 쓰겠어!

라고 결심하니 써지긴 써진다.

매일 다짐해야겠다.

쓰레기를 쓰겠어!

- 이경미, [잘 돼가? 무엇이든] 141쪽.

쓰레기를 쓰는 것은 정말 자신 있다.

퇴고를 거듭하면 나아지겠지.


난 오늘 쓰레기를 쓰고 말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를 아프게 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