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알베르 카뮈가 쓴 ‘페스트’와 또 다른 고전들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고전의 맛을 알게 해 준 이 책의 시작은 이렇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뜻이 없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알제리에서 선박 중개인 사무실 직원으로 일하는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를 돌볼 사람을 구할 돈이 없어서, 연로한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냈다. 그리고 어느 날 양로원으로부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어머니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양로원에 간다.
뫼르소 어머니와 친하게 지냈던 할머니와, 어머니와 연애를 했던 할아버지도 장례에 참석했고, 그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애도했다.
그런데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노인들의 울음소리가 그치기를 원했고, 졸려했으며 어머니와 친했던 사람들의 행동과 모습에 대해서 우스꽝스럽고 무미건조하게 묘사하였다.
뫼르소는 관 속에 있던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를 거절하였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며, 호로록 밀크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웠으며 잠을 잤다. 장의사가 어머니의 나이를 물었을 때도 대답하지 못했다.
뜨거운 여름날 영구 마차에 관을 싣고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성당으로 이동하는 날
뫼르소는 어머니를 사랑했던 페레스 영감에게
“저희 어머니께서 외롭지 않도록 산책해 주시고 그동안 잘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며 홍삼이라고 드려도 시원찮을 판국에
더운 날 장례식장까지 이동하느라 기절한 페레스 영감의 모습을 꼭두각시 인형이 해체되는 것 같았다고 묘사하였다.
장례식을 마친 이후에는 이제 열두 시간 연달아 잘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기까지 했다.
아.. 내 뒷목. 나는 뫼르소가 잘 사는지 두고 보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이 책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는 어머니 장례식 다음 날 예전 직장 동료인 마리를 만나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희극’ 영화) 해수욕을 즐기고 사랑을 나눈다.
마리와 데이트를 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어느 날 마리가 뫼르소에게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뫼르소는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우리가 결혼할 수도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마리는 뫼르소에게 자신을 사랑하는지 물었다.
뫼르소는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마리는 “그렇다면 왜 나하고 결혼을 해?”라고 물었고 뫼르소는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결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리를 말리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 나는 더욱더 책에 몰입했다.
한편, 뫼르소는 한 아파트에 사는 레몽과 친해졌고, 변심한 애인을 힘들게 하려는 레몽의 계획에 동참한다.
이후 레몽과 뫼르소는 한 무리의 아랍인들로부터 미행을 당한다.
며칠 후 뫼르소는 레몽과 함께 해변으로 놀러 갔다가 그들을 미행하던 아랍인들과 마주친다.
그들 중에 레몽 옛 애인의 오빠가 있었다. 싸움이 벌어져 레몽이 다쳤지만 소동은 큰 일 없이 마무리되었다.
인생의 결정적인 일들이 일어날 때에는 표식 같은 게 달려 있었으면 좋겠다. 천 원 접시, 오천 원 접시 색깔이 달라서 접시만 보고 피하거나 결단을 내릴 수 있는 회전초밥집처럼, 인생에 생기는 일도 노란색(가벼운 일임), 초록색(당분간 골치 아플 수 있음), 빨간색(행운이 될 수 있음), 갈색(골로 갈 수 있음) 등등
이후 뫼르소의 명을 재촉한 일이 발생하나, 그 경위는 너무 시답잖았다. 갈색 접시(골로 갈 수 있음)라는 것을 뫼르소가 알았어야 했는데.
태양이 작렬하고 아주 더운 날, 뫼르소는 술을 많이 마셔서 취한 상태에서 해변을 걷다가 문제의 아랍인을 마주친다. 부모님도 못 알아본다는 낮술을 마신 뫼르소.
심한 숙취, 햇빛, 땀, 더위, 아랍인, 아랍인의 칼,
순간적으로 태양에 번쩍이는 칼..
뫼르소는 자신도 모르게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뫼르소는 살인죄 피고인이 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뫼르소의 재판에서 검사가 신청한 증인들은 뫼르소가 장례식에서 엄마를 보려고 하지 않았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며, 장례식이 끝난 뒤 무덤 앞에서 묵도도 하지 않고 곧 떠났다는 사실,
엄마의 시신 앞에서 커피를 마신 일 등 '살인사건과는 무관한' 그의 지난 행적들에 대해서 말했다.
그러나, 그런 증언을 들은 배심원들의 마음은 돌아섰고,
뫼르소는 엄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 정도면
능히 살인도 저지를 만한 사람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사실이었지만,
왜 죽였냐는 질문에 뫼르소는 “햇빛 때문”이라고 말했다.
뫼르소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려는 사제에게 신을 믿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해버려서
직업상 잘 참는 사람인 '사제'까지 화나게 만든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계속 혼잣말을 하게 되었다.
“에혀.. 사회성이라곤 아주...”
여차저차 뒤의 스토리들이 많지만, 결론을 스포 하자면
뫼르소는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어' 사형을 당했다.
건조하고 냉정한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남들이 공감할법한 행동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이 책에 나오는 뫼르소는 그런 말이나 행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
재판 과정도 그렇다. 잘못했다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며, 오상 방위 아니면 과잉방위, 심신 미약 등 이것저것 주장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무성의해 보이게 ‘햇빛 때문’이라고만 말해버린다.
뫼르소는 관행을 따르지 않았고 공감능력과 표현력이 부족한 면이 있었지만,
뫼르소와 같이 구속되어 있는 일상 잔혹 흉악범들과는 결이 달랐다.
그는 솔직하고,
어쩌면 그저 적게 말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 이 책을 볼 때는 뫼르소가 사회성이 부족한 대가를 혹독히 치렀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관행과 부조리에 타협하지 않는 개인에 대한 생각, 이해도 조금 해 보았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
뫼르소는 ‘피고인이 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일인데, 왜 피고인에 대해서 모르는 검사와 변호인 재판장만 말을 많이 하고 피고인인 자신은 그 재판에서 말할 기회가 별로 없는지 의아해했다.
“왜 저는 말할 기회가 없나요.”라며 항의하는 나의 피고인들이 생각났다.
그런 때 나는 “절차가 있어요. 피고인이 말할 기회는 조금 더 뒤에 있어요.”라고 조용히 일러 주면서도 왜 이렇게 성급할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피고인 입장에서 사건 당시에 같이 있지도 않았고 자신을 처음 본 사람들인 검사, 변호인, 재판장이 자신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 하는 것을 보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한 장면이 생각났다.
남편이 남자 친구이던 시절이다.
연애시절 어느 날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오빠, 나 얼마만큼 사랑해?”
그러자 남편이 바로 대답하지 않고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침묵했다.
남편이 차분하게
“나만큼.”이라고 말했다.
“.....(어이없어)”
결혼해 보니,
그는 자기 자신을 겁나 사랑하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