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건강검진을 마친 후 어느 날 나는 새로운 사건의 피고인을 만나기 위해 00 구치소로 갔다.
변호인 접견실에 가니 교도관이 피고인은 말기 간경화 환자인데,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도저히 접견할 수 없다고 했다. 며칠 뒤 다시 접견신청을 했더니 이번에는 피고인이 00 대학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했다.
재판기일을 한번 미루고 다시 접견신청을 하고 갔더니, 이번에는 교도관이 구치소 측에서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했다면서 아직 만날 수 있는 몸상태가 아니라고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피고인을 만날 수 있었다. 환자용 죄수복을 입었는데 나에게 걸어오는 짧은 거리를 하염없이 제자리에서 걷고 있는 듯했다. 바싹 마른 몸에 얼굴이 까맣고 배는 만삭처럼 부풀어 있었다.
그가 천천히 바닥을 제치고 접견실 근처까지 왔지만 그는 유리문을 열 힘이 없었다. 유리문을 열어주니 이번에는 의자를 당겨 앉을 힘이 없었다. 의자를 당겨주니 심호흡을 하며 앉았다. 앉을 때 생기는 통증 때문에 이런 사소한 일도 그에게는 ‘마음먹고 하는 일’로 보였다.
내가 그를 만날 당시 그는 이미 먼저 재판받은 형이 확정되어 징역형을 복역 중인 기결수였다. 내 사건도 무죄라고 다투지 않으므로 형이 추가될 것이다.
그는 자리에 앉았지만 쉽게 말을 하지 못했다. 호흡이 가빠서 호흡을 가다듬느라 한참 기다려야 했다. 그의 배는 만삭처럼 부풀어 올랐고, 그의 설명에 의하면 복수가 많이 차서 폐를 압박한다고 했다.
그는 모든 잘못을 인정한다고 했다. 사업이 망할 고비마다 무리하게 일어서려고 했던 것도 자기 욕심이었다고.
“말기 간경화 상태에서 법정 구속되셨나요.”
“아니요 몇 년 동안 괴롭게 지내고 형편도 어려워서 병원 한번 못 갔습니다. 구속되면 혈액검사 같은 걸 하는데 그때 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의무실에서 말했습니다.”
그는 구치소에서 말기 간경화로 보인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고, 이후 00 대학교 병원에서도 같은 진단을 받았다.
구치소 측의 구속집행정지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말기 간경화 환자라서 간이식 외에는 별다른 치료방법이 없기 때문에 구속집행정지가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접견을 마친 후 일어날 때 그는 ‘일어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에 절망한 듯 오래 망설였다.
그가 건강해지면 살아서 형기를 채울 것이고, 더 나빠진다면 그는 어느 교도소에서 생의 마지막 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 피고인은 법정구속 이전에 몇 년간 병원에 다니지 않았을 뿐이지만,
나는 구속이 되어 구치소에서 생애 첫 건강검진을 한 피고인을 여럿 만났었다.
오래전부터 거리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 처음에는 방치되어 살았으나 어느 날부터는 본인이 그런 삶을 선택하기도 했다. 길가에 쓰러져 있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하여 병원 응급실에 보내려고 하자, 의료보험이 없고 병원비를 지불할 능력이 안 된다는 이유로 도망갔던 사람도 있다.
구속이 되면 그런 사람들도 건강검진을 피할 수 없다. 구치소나 교도소에서는 전염병 방지를 위해 구속된 신입을 상대로 혈액검사 등 기초검사를 한다. 그리고 수용 중에도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한다.
구속이 되면서 생전 처음 의사를 만난 사람도 있고, 모르고 싶은 병을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사람들도 있다.
어떤 피고인은 구치소에서 생애 첫 건강검진을 하고 말기 암을 발견했다.
내 건강검진 결과는 검진 한 달 뒤 택배로 집에 왔다.
작년부터 1년간 매일 플랭크나 스쿼트를 하여 나는 내 잔근육을 느끼고 있었다. 겉에 살로 둘러쌓여 있지만 그 안에 뭔가 탄탄함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번에는 근육량이 표시된 신체계측에 두근거렸다.
그런데 결과는 작년과 근육량은 똑같고 체지방량이 늘었다.
분명 있다고 느꼈었는데
사실은 존재하지 않았던 근육.((((무섭다))))
근육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근육이 있다는 망상이 있었던 것인가.
건강검진 표에는 무난한 것도 있고 우려스러운 것도 있지만, 나는 내년에 검진을 받으면서 추적할 것이니 괜찮다.
건강한 것도 복이지만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복인 것 같다. 올해는 건강검진 결과표를 보는데 엄숙한 마음이 들었다.
건강검진을 받고 싶을 때는 받지 못하다가, 어느 때부터는 치료해야 할까 봐 무료검진도 무서워서 거부하는 삶을 사는. 거리의 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