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연수
2012년 여름. 일본 연수 공문이 떴다. 직장에서는 희망자 지원을 받았고, 지원자가 많을 시 연차, 나이, 성과 등의 기준으로 선발하겠다고 공지했다. 이런 공문들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같았고, 어린 꼬맹이들이 둘 씩이나 있는 나 같은 워킹맘에게는 언감생심, 당치도 않은 머나먼 일이라고 생각하고 접어버렸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며칠 후, 친하게 지내던 부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에 지원자가 많지 않다던데 한 번 내보면 어때? 이런 기회 흔치 않아. 이것저것 재지 말고. 밑져야 본전이잖아 한번 지원해 봐.”
너무 솔깃한 이야기였다. 내가 결정해야 하는 일임에도 결정권을 직장, 남편, 아이들의 상황에 넘겼다. 그들의 허락을 받아야만 하는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중 ‘계’에 위치한, 가장 밑바닥에서 서포트하는 존재라는 스스로의 판단 때문에. 용기를 내어 부서에,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약간 당황하는 듯 했지만 예상 외로 나의 앞길을 막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남편은 서울에 기거하며 주말에만 집에 왔고, 나는 대전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남편은 KTX로 출퇴근하며 아이들을 케어하겠다면서 흔쾌히 오케이했다. 여러 가지 저항을 예상했으나 생각지 못한 응원과 지지를 받고 나니 도리어 내 마음이 나를 붙잡기 시작했다. 낯선 곳에서 가족도 없이 기거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니 두려웠을까. 겁먹은 내적 자아가 고개를 들고 이러쿵 저러쿵 가지 않을 변명을 만들어냈다. 내가 없으면 아이들이 잠을 못 잘 테고, 우리 부서에서 그 일을 해결할 사람은 나 밖에 없을 테고... 어쩌구 저쩌구...
남편은 주저하는 나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며칠간 당신 없어도 직장일도, 가족들의 일상도 잘 돌아갈거야. 내가 아이들과 잘 지내볼 기회이기도 하고, 이 참에 요리연구도 하고, 아이들이랑 놀아주는 연습도 하면서 좋은 아빠가 되어볼게. 일본에 가서 당신이 좋은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어.”
한동안 복잡했던 머리를 정리하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 모든 상황이 나를 밀어주고 있잖아. 겁먹지 말고 떠나자. 포기할까 말까 했던 마음을 고이 접고, 설렘반 긴장반 한 달이라는 꽤나 긴 기간의 일본 연수를 결심했다. 짐을 꾸리고, 여권을 챙기고, 누가 함께 연수를 가게 될까 설레하며 준비하는 모든 기간을 만끽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타고 연수원에 도착하여 방을 배정받는 낯선 과정들은 오히려 나를 들뜨게 했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교육을 듣고, 이후는 자유시간. 집을 떠나면 매일 매일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아이들을 못 봐서 병이 날지도 모르겠다던 생각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전화기를 붙들고 울고 있지 않을까 했던 예상과는 너무 다른 나의 모습이 낯설고 신기했다. 그곳에서 나는 오롯이 ‘나 자신’이었다. 심지어 아이들 생각조차 나지 않았으니까. (모든 엄마가 모성애가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길치에 방향치라서 어딘가를 떠나는 것이 늘 무서웠다. 특히 혼자서는 아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좋은 기회를 연수원 안에 쳐박혀 있을 수 만은 없지 않은가. 연수원에 비치되어 있는 자전거를 대여했다. 매일 조금씩 동네를 탐색하고 알아가기 시작했다. 작은 골목길에 자판이 열려있으면 과일도 사고, 간식도 사고,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다. 또 어떤 날은 자전거로 역까지 가서 도쿄의 지하철을 타고 아무 역이나 내려 도쿄 탐방을 했다. 남들이 그리도 말하던 신주쿠, 하라주쿠, 아키하바라를 집 앞 동네 돌아다니듯 다니게 되었고, 그 외에도 처음 보는 이름의 역에서도 거침없이 내려 돌아다녔다. 특별할 것도 없고 남다를 것도 없었지만, 그저 마음껏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일본은 한국과는 달리 교통비가 비쌌기 때문에 몇 군데의 역만 돌아도 원화로 1만원이 훌쩍 넘고 어떤 날은 2, 3만원 이상을 쓰기도 했다. 그래도 너무 신나고 재미있었다. 걷다가 다리가 붓고, 발에 물집이 잡혀도 신나는 마음은 숨길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동네 탐방 정도로 시작했으나, 연수가 끝날 즈음에는 30일 중 28일을 돌아다닌 어마어마한 기록을 달성하게 되었다.
10년 전의, 까마득하고도 어설펐던 나의 일본 여행은 마음 한 켠에 탄산처럼 녹아있어 답답할 때 한 번씩 꺼내어 마시는 청량음료 같았는데, 올해 여름 또 한번의 기회가 왔다.
전처럼 고민의 시간이 길지 않았고, 공문을 보자마자 바로 마음속에서 ‘이건 가야해.’하는 마음이 들어 남편에게 연락을 하고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원하는 것을 지긋이 생각해보기 위해 노력해온 지난 몇 달간이 결정에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된다.
마음가짐이 10년 전과 확연히 달라져 준비하는 내내 들뜨고 신나고, 어느 것 하나 걱정되지 않았다. 자유로운 새처럼 구비 서류를 일사천리 작성하여 제출했다. 나에게 주는 포상휴가같은 기분이랄까? 서류 작업만으로도 설레고 좋았는데 아무래도 진짜 일본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몇 년간 꼼짝마라 했던 만료된 여권을 뒤로 하고 구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깃털처럼 가볍다. 열 살을 더 먹은 나는, 아니 십 년이라는 경험을 채운 나는 이번에는 어떤 세상을 마주하게 될까? 어떤 맛의 여행을 가슴에 담아오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