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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Aug 06. 2022

당신은 용감하신가요?

어제와 다른 그들을 대하는 법

 “Cheers!!” “오늘부터 진짜 속마음 터놓고 지내는거야.” “이제 언니(형), 동생 하는거야”

퇴근 후 같은 부서 사람들끼리 모여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걸친다. 그간 근무하며 쌓였던 스트레스, 서운했던 이야기, 친하게 지내고 싶은 애정 어린 말들, 그리고 반짝반짝 오가는 눈빛들.     

  시원한 맥주와 함께 그간의 시름을 꿀꺽꿀꺽 삼켜버리고, 앞으로 시원하게 지낼 생각에 조금은 흥분된 상태로 친하게 잘 지내보자며 회식을 마치고 귀가한다. 술에 취해 피곤해도 오늘은 기분 좋은 날. 서로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었고, 앞으로의 직장생활이 전보다는 보들보들해지겠지. 큰 숙제를 해결한 기분으로 잠을 청한다.     

  다음 날 출근해서 어제 쨍하고 잔을 부딪혔던 사람들을 마주한다. 보다 편안해질거라는 희망과 부푼 기대를 안고 말을 걸어보지만,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있는 사람들. 어제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 같더니 오늘은 다른 가면을 쓰고 출근했나 보다.     

  사람들에게 거는 희망, 애정, 관심, 그리고 편안하고 따뜻한 인간관계를 바라는 나에게는 이런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직장생활도 나름 20여 년이나 해왔는데 이런 상황은 20년 전에도, 20년이 지난 현재에도 당황스러움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술에 취해서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렸을까? 직장에 오니 현실자각이 되어 어제 했던 말들과 행동들이 제정신이 아니었다며 어제의 일을 누군가가 알아챌세라 얼른 서둘러 원점으로 돌려놓는 것일까?     

  학창 시절도 물론 그랬지만, 성인이 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직장 내에서는 마음을 나눌 생각이 없는 듯하다.     

  몇 년 전 직장에서 마음을 나누던 좋은 친구가 있었다. 새 직장으로 발령이 났고 어색한 환경에서 적응하기 힘든 시기에 한 사람을 만났다. 나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따듯하게 보듬어 주었고, 대화가 잘 통했으며, 매우 친절하고 상냥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버거운 나에게 선물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재치있는 언변에, 깔끔하고 센스있는 그의 일상은 나를 빠져들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 암투병으로 힘들어했다. 그 일을 통해 함께 걱정했고, 위로하고 다독이며 급격하게 친해졌다. 결국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신 후에도 아픔을 함께 나누었고 충분히 마음을 주고받았다고 생각했다.      

  이듬해 나에게는 직장 내 괴로운 일이 생겼다. 부서 내에서의 갈등으로 업무에 대한 문제가  사람들의 갈등으로 번져 괴로워할 때 나의 힘든 상황을 이야기하며 고민을 나누었다. 그러나 머지 않아 그 친구는 그런 이야기는 자기에게 버겁다며 주위 상황을 신경쓰지 않고 편안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그 말 이후 철저히 나를 오피셜하게 대했다.     

  마음을 나누었던 좋아했던 사람이 갑자기 안면몰수 하던 날. 그 날의 속상하고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크게 앓았던 것 같다. 연애할 때도 앓아보지 않았던 내가 직장에서 직장동료와의 문제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직장에서 친구 만들려 하지 마.”라며 같이 사는 사람이 조언을 해주었다. 학창 시절과 같은 환상을 품고 직장생활을 하지 말라면서 직장 내에서는 웬만한 사람들 모두 그렇게 오피셜하게 살아간다고. 진짜 다들 그렇게 사는 건가??      

  하루의 1/3 이상을 보내는 직장에서, 같은 환경을 공유하고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마음을 터놓고 지내지 않는다면 도대체 새로운 친구를 어디에서 만들지? 인간관계가 중요한 나 같은 사람은 어디서 잃어버린 1/3을 채우라는 뜻이지?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도 꾸준히 인간관계를 갈망하며 또 다른 관계 형성을 위해 부단히 애쓰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이야기한다. “너야말로 진짜 마음이 단단하고 멘탈이 강한 거야. 상처받을까 두려워서 마음을 아예 열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에, 꾸준히 도전하고 사람에게 정성을 쏟는 네가 진짜 용감한 거야.”라며.      

  나 같은 사람은 인간관계가 기초공사 같은 부분이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제대로 단단히 형성되지 않으면 다른 업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힘들기도 하고, 실패를 맛보기도 하지만 부단히 시도하고 노력하는 건 기초공사를 해야 다음 단계로 진척되기 때문인데... 뭐라고 딱히 결론 내리긴 어렵지만 친구들이 해준 그 말이 맞다면, 어쩜 난 용감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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