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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Nov 25. 2022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사회

 2014년도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딸은 세월호 참사 뉴스를 보며 밤새 자지 못하고 울던 내 옆에 와서 함께 울었다. 그러면서 내 딸은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엄마 선생님이 나오지 말라고 방송했잖아. 나도 그 언니들처럼 수학여행 가는 중이었다면 나도 나가지 않고 선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거야. 그랬다면 나도 방에서 그렇게 죽었을까?’ 

어린 너희들을 지켜주지 못해 어른들이 미안하다고 땅을 치며 통곡하던 그 장면들, 노란 리본이 끝도 없이 묶여있던 팽목항이 떠오른다.

  이후 아이는 자기는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를 해왔다. 그때마다 그래, 그래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고 넘겼었는데 중학교 3학년이 되니 심각하게 이야기를 해왔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숨막히는 한국 학교 시스템 말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생각할 수 있는 시스템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그냥 넘겨버릴 수 없어서 유학원에 연락을 했다. 이것저것 정보를 수집하고, 고민하고 결정을 내려 내년에는 유학을 가기로 결정을 했다.

  아이와 떨어져 지낸다는 슬픈 감상은 행정 처리에 밀려 뒷전이 되었다. 아이의 성적, 부모의 경제력, 영어인터뷰, 원하는 지역 선정, 학교선정, 현지의 홈스테이 가정 매칭 등등 해야 할 게 얼마나 많은지.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과정과 스케줄이었다. 결국 나보다 더 꼼꼼한 남편이 도맡아서 처리하기로 했다. 

  마지막 관문인 비자 발급용 신체검사가 있는 날. 학교에 현장체험학습을 신청하고 남편과 딸은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다. 간밤에 영등포 선로 탈선 사고가 있었다고 보도가 났고, 새벽에 예매한 기차표가 취소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미 내놓은 남편의 휴가가 있었고, 아이의 현장체험학습이 있었기 때문에, 또한 병원 예약을 어렵게 해놓은 터라 실시간으로 여분의 기차표를 검색하고 겨우 표를 구했다.

  다행히 기차는 제 시간에 출발을 했고 병원 검진 시간에 맞추어 용산역에 도착할 수 있게 계획되었다. 그러나 웬걸. 광명을 지나고 나니 갑자기 영등포에서 정차하지 않는다는 방송이 나왔고, 열차가 멈춰버렸다. 처음에는 40분 지연 예상이라던 열차가 언제 서울역에 도착할지 모른다며 선로 중간에 정지해버렸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했고, 역무원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관제소와 연락이 두절되었다, 또한 이후 상황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른다는 말만 돌아왔다. 사람들은 고립된 채로 발을 동동 굴렀고, 간간히 숨이 쉬어지지 않는 사람, 현기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발생했다. 지방에서 서울 올라가는 일은 아무리 KTX가 3시간 안쪽으로 데려다준다 해도 거사로 느껴지는 법인데,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기차에 올랐을 승객들은 영문도 모른 채 대책 없이 고립되어 있었다.

  상공에서 위급한 상황이 생길 때 비행기에서는 기장이 상황판단을 하고,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배에서는 선장이 모든 결정권을 쥔다. 그렇다면 기차에서는 기관사가 위급한 상황에 판단하고 현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조치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만일 그 시간에 촌각을 다투는 환자가 타고 있었다거나, 긴급하게 공항으로 이동해야 하는 중한 일을 맡은 사람, 그보다 더 위급한 많은 일들이 얽혀있을 때 우리는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그 안에 있던 딸과 남편은 어느 누구도 자신을 지켜주지 못하는구나를 깨달았다고 했다. 철저한 매뉴얼이 세워져 있지 않은 이 나라에서는 불상사 시에 시스템도, 기관도, 나라도 어느 것 하나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하겠구나, 무방비하게 방치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한국의 시스템에 실망했고, 그들의 입에서 한국은 이제 헬이야 라는 말이 터져나왔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연달아 재해와 참사, 불상사가 연거푸 일어나고 있다.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어 국민들은 묘한 데쟈뷰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책임지겠다는 말은 없고, 후속 조치는 어설프기만 하다. 

  어린 딸의 눈에 우리나라는 - 부모가 물려준 이 나라는, 믿음직스럽지 못했고, 안전하지 못했다. 엄마인 나도 딸에게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라고, 네가 걱정할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지 못했다. 어른들이 제대로 만들어주지 못한 부실한 나라, 어설픈 사회를 물려주게 되어 아이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엄마가, 아빠가, 이 시대의 어른들이 제 몫을 하지 못해 불안전한 나라를 만들어서 미안하다. 너의 세대는 눈을 크게 뜨고 사회와 정치가 돌아가는 것을 감시하고, 심사숙고하여 좋은 지도자를 뽑도록 해라. 그들이 감히 국민들을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눈가리고 현혹하려 해도 혼쭐내줄 수 있도록. 국민들이 무서워 중심을 잘 잡고 바른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무감을 느끼도록, 다른 정치관을 가졌더라도 어깨를 나란히 하며 협력할 수 있도록. 지금보다 단 한 발짝이라도 발전시켜 다음 세대들이 안심하고 뛰어놀고 공부할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넘겨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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