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가 멈췄다. 매번 4주, 28일 만에 찾아오던 빨간 손님이 오질 않았다. 그리도 귀찮고 번거롭더니 오지 않는다고 걱정을 하고 있다.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한다는 말이,
‘에이 한 달 그냥 넘긴 거겠지.’
‘그래 그런걸거야.’
그러겠지 했는데 두 달을 넘겼다. 친구는 우스갯소리로 임신 아니냐며 축하한다는 실없는 소리를 해댔다. 휴~ 맙소사. 드디어 올 것이 왔나 보다. 원래도 더위를 많이 타던 내가 올해 유독 더워더워 하더니 폐경, 아니 요즘은 완경이라고 한다던데 완경이 된 건가? 갱년기가 온건가?
완경 이야기가 나오니 주위에서 한마디씩 거든다. 완경이 되면 갱년기가 오고, 갱년기가 오면 밤에 자다깨다를 밥 먹듯 하고, 열이 오르락 내리락 한다고. 괜히 슬프다가 화가 나다가 성격 파탄자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고. 또 골다공증이 오고, 탈모도 온다고. 온갖 무서운 이야기를 다 해댄다.
걱정만 하고 있지 말고 제대로 검사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병원에 가기로 맘을 먹었다. 병원에 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자궁초음파, 피 검사 등 갱년기 관련 검사를 받자고 하셨다. 순순히 시키는 대로 검사실에 들어가 피를 뽑고 대기실에 앉아 결과를 기다리는데 왠지 초조했다.
13살 초경을 시작했다. 그땐 참 어렸다. 천지 분간도 못할 나이였다. 처음 겪는 일이라 놀라서 언니에게 도움을 청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차근히 배웠던 기억이 난다. 이후 소녀에서 여성이 되어가는 과정에 생리는 나와 늘 함께였다.
그렇게 30년 넘는 동안 함께 했지만, 한 번도 반갑다거나 고마워하지 않았었다. 그저 귀찮은 숙제. 언젠가 끝나버리면 홀가분하고 좋을 것만 같은 월례 행사였다. 유독 생리통이 심했고, 생리 전 증후군도 날 너무 괴롭혔다. 포장 뜯지 않은 서프라이즈 선물도 아닌 것이, 매번 다르게 찾아왔다. 어떤 때는 몸살로, 고열로, 구토로, 어지럼증으로. 한 번도 늦어본 적이 없었다. 빚 받으러 오는 빚쟁이처럼 꼬박꼬박 오는 것이 지겨웠다.
그런데 두 달간 찾아오지 않는 생리에 난 초조해지고 말았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버리는 건가 서글퍼졌고, 여성성을 잃는 것 같은 감정에 허탈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진료실에서 “유지현님” 하고 내 이름을 불렀다. 벌떡 일어나 진료실에 들어갔다.
“호르몬 수치 정상이구요. 가끔 이런 경우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자궁 내막이 두꺼워져 있어서 호르몬제 처방합니다. 약 드시면 1주일 후 생리 시작하실 거에요.”
생각보다 간단하게 결과가 나왔다. 의사 선생님께 감사하다며 허리를 굽혀 몇 번을 인사했다. 그간 걱정하고 슬퍼했던 기분이 싹 사라졌다. 멀쩡한 나의 호르몬에, 일주일 후에 올 생리에 감사했다. 귀찮다고 없어지기만 바라던 예전 마음을 반성했다.
이제 길어야 10년, 아니 5년, 어쩜 그보다 더 조금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완경이 되고 나면 호르몬 문제로 병원을 드나들겠지. 젊을 때 넘쳐흐르던 여성호르몬이 훗날엔 귀한 보물 같겠지. 젊었을 때를 그리워하며 그때는 그랬지 이런 말이나 하고 있겠지.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생리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있을 때 잘해, 그러니까 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