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지 않아도 닿는 말

by 배진화

늘 내방 침대는 덩그러니였다. 잘 시간이 되면 베개를 챙겨 할머니 옆으로 가 누웠다. 일찌감치 안방으로 들어간 할머니는 텁텁한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어있었다. 나는 끈적거리는 열대야에도 할머니 곁에 찰싹 붙어 눈을 감았다. 종종 가죽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얇게 늘어진 할머니의 쭈글한 팔에 팔짱을 끼기도 하면서.

할머니가 자주 가는 절의 스님이 그랬다. 할머니와 나는 전생에 깊은 인연으로 죽고 못 사는 거라고. 비가 오는 날 우산을 들고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것도, 발을 걸어 넘어뜨린 친구의 집으로 가 혼쭐을 내주는 것도,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손발이 찬 나를 위해 인삼을 달이던 것도 모두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칠순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 어린 손녀를 맡아 다시 엄마가 되었고, 나는 오리 새끼처럼 할머니만 쫓아다녔다. 할머니의 곁에 누웠던 수많은 밤중에는 잠결에도 할머니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아 화들짝 깨었다가, 오르내리는 가슴을 보고 다시 누운 밤도 있었다.


할머니는 소리를 잘 듣지 못했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 중에서 가장 오래된 모습을 떠올려보아도 보청기가 등장한다. 손바닥 크기의 네모난 기계. 그곳에 이어폰을 연결해 귀에 꽂으면 사람들의 목소리가 동굴에서 말하는 것처럼 크게 들려서, 나는 소머즈 흉내를 내며 놀기도 했었다. 그런 할머니의 영향인지 우리 집안 식구들은 죄다 목소리가 컸다. 대구 고모까지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은 5층임에도 불구하고 지하 엘리베이터에서부터 고함이 들렸다. 놀란 마음으로 뛰어들어가면 다들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뿐이었다. 얼굴을 마주하고 있을 때는 바짝 다가앉아 입 모양을 또렷이 하거나 목소리 톤을 높이면 곧잘 대화가 되었지만, 전화는 정말이지 힘들었다. 대부분 걸려온 전화를 보청기도 끼지 않고 호기롭게 받아서는 실컷 자신을 밝히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으면 말을 하라며 끊어버리거나, 서로 여보세요만 되풀이하다 통화가 끝나기 일쑤였다.

가끔 열쇠를 두고 온 날은 혹독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벨을 눌러도 할머니는 나오지 않았다. 수신 중인 전화기의 반짝임을 보면 통화가 될까 싶어 연락을 해봐도 역시나 소용이 없었다. 발을 동동 굴리던 차에 우유 투입구가 생각났다. 뚜껑을 돌려보니 할머니가 현관 근처에 앉아 콩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나는 센서등을 작동시키기 위해 우유 투입구 안으로 장을 봐온 음식들을 던져 넣었다. 애호박, 양파, 요구르트, 양갱... 이윽고 현관에 불이 켜지고 할머니와 시선이 마주쳤을 때는 역전홈런이라도 친듯한 기분이 들었다. 신발과 함께, 현관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음식들의 사진을 찍어놨어야 했는데 어쩐지 아쉽다. 그 후로도 두어 번, 열쇠 때문에 난리 부르스를 추고서야 번호키 도어록으로 바꾸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보청기도 소용이 없었다. 귀에 쏙 들어가는 최신식 보청기도 제 값을 하지 못했다. 할머니의 애창곡, 태평가가 울려 퍼지던 카세트도 멈춰섰다. 할머니는 드라마를 무표정으로 바라보다 잠드는 일이 많아졌다.

첫아이 돌이 지나고 나서 얼마 후, 요양원에서 자꾸만 기력을 잃어가던 할머니가 결국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날 밤, 할머니가 좋아하는 요거트를 사들고 신랑과 함께 할머니의 곁에 앉았다. 요양보호사가,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수액만 맞았는데 손녀가 사 온 요거트는 다 비웠다며 웃었다. 할머니는 우리를 지긋이 올려보고는 “밥은 묵었나”하고 물었다. 항상 그랬다. 밥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어도 할머니의 대화는 늘 밥은 묵었나로 시작했다. 그리고는 날이 흐리면 비 온다고 일찍 가라, 어두워지면 위험하다고 빨리 가라로 끝이 났다. 그날도 세상 아쉬운 얼굴을 하고서는 “추운데 어서 가야지”하고 우리를 돌려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큰아버지께 연락이 왔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할머니는 늘 자는 걸음에 가고 싶다 하셨는데 정말 잠이 든 것 같았다. 할머니와 함께하던 밤처럼 텁텁한 숨소리를 내면서 곤히. 할머니의 늘어진 팔을 어루만졌다. 할머니에게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서늘함이 손끝에 아리게 닿았다. 간호사는 이미 돌아가신 거나 마찬가지라며 숨만 남아있는 거라고 조금 있으면 심장 박동도 멈출 거라 말했다. 그래도 청각은 마지막까지 깨어있으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며 방을 떠났다. 발밑의 구겨진 하늘색 담요를 할머니의 가슴까지 끌어올렸다. 언제나처럼 할머니의 곁에 바짝 다가가 누웠다. 그토록 할머니 바라기로 쫓아다녔는데 한 번도 제대로 못한 말을, 귓가에 흘려보냈다.

“할머니 사랑해. 너무너무 고마워”

할머니의 가슴이 더이상 오르내리지 않았다. 심전도측정기의 그래프가 우리처럼 누웠다. 할머니와 함께한 마지막 밤이었다.

할머니는 보청기도 없이, 내가 했던 말들을 다 듣고 갔을까. 좀 더 크게 말을 할 걸 그랬다.

할머니가 좋아하던 노란 국화가 다부지게 피었다. 할머니는 잔꽃이 빼곡히 그려진 몸빼를 입고 주방에서 콩나물을 다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집으로 달려가 벨을 누른다. 와이래 전화를 안 받노 하며 전화기도 울려댄다. 우유 투입구를 열고 할머니 내왔다아! 하고 목소리를 높여본다. 나를 발견한 할머니는 배시시 웃으며 “밥은 묵었나”하며 문을 열겠지. 나는 여느 때처럼 할머니의 곁에 다가앉아 할머니와 눈을 맞추며, 입술을 또박거린다. 할머니를 보내고 내내 궁금했던 것.

“할머니. 그때 내가 한 말 있잖아, 잘 들리드나?” 할머니는 환한 얼굴로 대답한다.

“사랑은 큰소리 내지 않아도 자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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