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맛

by 배진화

철이 드는 일은 먼 나라 사람의 이야기이고, 그것과 별개로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예를 들면 마트에서 과자를 고민 없이 주워 담고 있을 때, 그리고 아이들을 슈퍼에 데려갈 때이다.

나는 신혼살림을 작은 빌라에서 시작했는데, 따닥하게 붙어있던 옆집에서는 자주 부부 싸움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 때면 어깨를 늘어뜨리고 지나가던 그 집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해 중학교에 입학을 한 것인지 소매가 손등을 덮을 정도로 헐렁한 교복을 입은 아이는, 걱정과 다르게 계단에서 마주칠 때마다 작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하루는 출근길에 들른 편의점에서 아이를 만났다. 계산대 위에 삼각김밥과 우유가 놓여있었는데, 나는 얼른 카드를 내밀며 “이모가 사줄게. 괜찮지?”하며 말을 건냈다. 아이는 쑥스럽게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단돈 천 원으로 흉내 내본 어른의 맛이었지만, 진짜 어른의 멋을 가르쳐준 분들도 있다.

중학생 시절, 예절학교에 가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날은 모두 한복을 입고 오라 했다. 한복은 돌 때 말고 입어본 적이 없는데 어쩌란 말인지. 가까운 친구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마침 한복이 있다며 흔쾌히 빌려주겠다 했다. 나는 어스름한 저녁을 달려, 급히 친구네로 갔다. “어. 진화 왔나” 친구의 어머니는 돋보기를 쓰고 열심히 바느질을 하고 계셨다. 부엌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도마 위에는 썰다만 양파가 놓여있었다. 내 키가 친구보다 훨씬 크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녁 준비를 하다 말고 접힌 치맛단을 뜯어 늘리는 중이었다. 바느질을 하는 동안 나는 친구와 장난을 쳐댔다. 제대로 인사를 하고 왔는지도 기억에 없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 아이의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한 번씩 바느질을 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무렵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하루는 친한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제안했다. 방과 후에 찹쌀떡을 파는 일인데 한 팩에 오천 원이고, 한 팩을 팔 때마다 삼천 원의 마진을 받는 거였다. 무려 30년 전이다. 당시 짜장면이 한 그릇에 2,500원쯤 했으니까 애초에 얼토당토않은 일이지. 어쨌거나 한참 모자란 생각으로 나를 포함해 친구 셋은 좋다며 동의를 했고, 우리는 다음날 바로 열 팩을 받아와 실행에 옮겼다. 찹쌀떡을 판 돈으로 햄버거도 사 먹고 예쁜 티도 사 입자!라고 파이팅을 외쳤지만 초겨울 찬바람에 파리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심지어 셋 다 배포가 쥐꼬리만큼 이라,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찹쌀떡 사세요”라고 합창을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가끔 포대기에 아이를 업고 가던 아주머니나, 허리를 구부리고 터덜대며 걷던 할머니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해는 무심하게도 일찍 져버려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혼쭐이 나는 시간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러던 중 회사 점퍼를 입고 퇴근을 하던 아저씨 한 분이 우리 앞에서 걸음을 세웠다.

“한 팩만 도.”

떡을 받아 든 아저씨의 손에 주름이 무성했다. 띄엄띄엄 난 흰머리를 보니 아빠 생각이 절로 났다. 아저씨는 “고맙습니다!” 하며 소리를 지르는 우리를 무뚝뚝한 표정으로 외면하며 얼른 돌아섰다. 몇 시간을 서성이다 겨우 벌게 된 오천 원. 셋이 깍지를 끼고 깡충거리고 있을 때 모퉁이를 돌던 아저씨가 다시 돌아왔다.

“마, 그거 다도.”

쌀쌀한 바람에 벌겋게 언 뺨을 한 아저씨가 웃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길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함께 편의점으로 향하곤 한다. 철은 못 들어도 어른 흉내는 내고 싶은 것이다. 그토록 기품 있는 멋은 따라 할 수가 없으니 맛이라도 부려본다. 바느질을 하던 어머니도, 걸음을 돌려세우던 아저씨도 내가 그 나이에 서고 보니 당연한 일들이 아니었다. 따스하게 받은 배려들을 아이들과 나누다 보면 그들도 세상을 배려하는 어른들로 자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내게서 어른의 맛을 본 어떤 아이는, 훗날 쭈쭈바를 내밀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멋있게 생각해 주지 않을까라고, 얄팍한 꿈도 꾸어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높이지 않아도 닿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