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거짓말

by 배진화

92년도. 우리나라에 콜레라가 한참 유행하던 시기, 내가 5학년 때의 일이다.

새벽 내내 기침 때문에 잠을 설치고 일어나니 옆집 할머니께서도 그 소리를 들으셨는지 “한 여름에 감기라도 걸렸나 무신 기침을 그래 하노?” 하고 물으셨다. 그리고 시작된 복통과 설사.

늘 그랬듯, 홀로 동네 의원으로 가서 우물우물 증상을 늘어놓으니 선생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청진기를 배에 대보셨다. ‘아파봐야 엉덩이 주사겠지’라고 마음을 단단히 잡고 있었는데 예상을 벗어난 선생님의 말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콜레라네”

네? 아니 그, 테레비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있다는 전염병 말인가요? 제가 왜요?? 나는 끓인 물만 먹었는데.. 끓인...

아!...... 생각해보니 수돗물을 마셨다. 체육수업을 끝내고 목이 말라 친구들을 따라 딱 한 번, 벌컥벌컥 들이켰던 순간이 떠오르고 말았다. 후회해봐야 소용이 없다. 나는 이미 중병환자다.

“니는 그냥 콜레라가 아니고 가성 콜레라다. 그거는 전염력도 낮고, 약만 잘 먹으면 괜찮아지니까 한 2주는 꼬박꼬박 들러라.”

아니에요. 가성이고 고성이고 이름에 콜레라가 들어가잖아요. 전 이제 죽을병에 걸렸어요-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일까를 생각하며, 죽상을 하고 병원 문을 나서는데 할머니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린다면 집안이 발칵 뒤집히겠지? 입에 담기도 무서운 콜레라가 나를 덮쳤다고 말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병원에서 집으로 가는 익숙한 골목길도 애틋하게 다가왔다. 깔깔대던 추억들로 가득한 그 길에 눈물 자국을 얼마나 남겼는지 모른다. 우는 것은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결국 가족들에게 약봉지를 내밀며 장염이라고 말해버렸다.

그날부터 밥은 입맛이 없어도 깨끗이 비워 먹고 쓴 약도 예민하게 챙겨 먹었다. 식후에는 생전 하지도 않던 국민체조를 꼬박꼬박 했었다. 그때 내 마음속의 구호는 “살아야 한다!”였다. 할머니는 3일이면 다 나을 장염인데 병원을 너무 오래 다니는 것 아니냐며 의아해하셨다. 그때마다 나는 찌푸린 얼굴로 배를 쓸어내리며 심한 장염이라 며칠 더 가야 한다고 둘러댔다. 꽤나 꿋꿋하게 버텼지만 홀로 감당하고 있는 비밀은 날로 무게를 더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1학기에 친하게 지내다 옆 동네로 전학을 간 친구가 초대를 했다. 알고 지낸 시간은 길지 않지만 무엇이든 잘 통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붙어 다녔고 그러다 보니 가족들끼리도, 집안 사정도 다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연습장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친구는 나의 열렬한 구독자를 자청했다. 다수에게 반응이 시큰둥해서 포기할라치면 그 친구는 다음 편을 내놓으라며 닦달을 해댔다. 웃음코드마저 비슷해서 서로의 그림자만 봐도 쿨럭거리며 웃었다. 홍콩 영화를 자주 보던 친구 덕분에 서태지다 신승훈이다 논쟁을 벌일 때도 나는 주성치를 좋아하며 사진을 모으기도 했다.

아무튼 보고 싶던 친구네에서 종일 먹고 떠들며 신나게 놀다가 해가 떨어지고서 집을 나왔다. 친구가 데려다준다며 함께 나서는데 그제야 잊고 있던 콜레라가 떠올랐다. 어쩐지 혼자 안고 있는 이 짐을, 친구에게는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니 한테 할 말이 있다.”

친구는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나를 근처 중국집으로 데려갔다. 가게는 지하에 있었는데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많은 테이블 중간에, 둘만 덩그러니 앉았다. 사장님은 주방으로 들어가서 우릴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리고 나는 숨겨두었던 비밀을 친구에게 쭈뼛쭈뼛 털어놓았다.

친구 앞에서 우는 것이 머쓱해서 괜히 두리번거리며 나오려는 눈물을 참고 있었는데 갑자기 친구가 먼저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중국집이 무너지라고 대성통곡을 해댔다.

하아.. 이게 아니었는데. 너를 이렇게 울리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고.. 예상치 못한 친구의 눈물에 오히려 내가 그를 달래주는 상황이 되었다. 어르고 토닥이다 결국에 나는 거짓말이었다고 거짓말을 해버렸다.

“뭐라고?!”

딸기코를 한 친구의 눈에 황당함과 분노가 서렸다. 친구는 겨우 눈물을 멈추었지만 도끼눈을 하고 어찌나 잔소리를 하던지 진땀이 흐를 정도였다.

나의 무거웠던 비밀은 그렇게 거짓말이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병이 다 나으면서 그 사건은 완전히 잊혔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성인이 되었고, 여전히 사소한 일들을 공유하는 사이로 돈독하게 지내고 있었다. 나는 종종 지인들이 있는 술자리에 친구를 부르곤 했다.

어느 날 살짝 취해 기분이 좋아진 친구가 내가 어릴 때 얼마나 별났었는지, 엉뚱한 일을 벌이고 다닌 것들, 어떤 장난들로 자기를 괴롭혔는지 속속들이 일러바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툭하고 튀어나온 그 날의 일.

“하다 하다 그런 거짓말까지 해서 내를 울렸다니까!”

아이고. 그런 일이 있었지-

‘살아야 한다!’를 외치며 홀로 전염병을 버텨냈던 열두 살의 사건은 친구에게 어이없는 장난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런데 딱히 정정하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았다. 다큐가 개그로 된 것이 차라리 좋았다. 홀로 간직했다면 애처로운 감정만 남았을지 모른다. 지금은 사실 관계야 어떻든 친구도 웃고 나도 웃는다.

돌이켜 보면 중국집에서 나를 대신해 꺼이꺼이 울었던 친구의 눈물은 가장 듣고 싶었던 위로였을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껏 그 친구에게 못됐다는 소리를 들어도 밉지가 않다.

나의 35년 지기. 이따금씩 친구가 어릴 적 사진을 보내오면 낡은 엘피판의 자켓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그 안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어 우린 함께 부를 노래가 많다. 지칠 때 그 노래들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어딘가에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게 해주는 노래들. 나는 소중한 친구와 오래도록, 울고 웃는 가사들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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