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용케도 마음이 통한다. ‘볼 때가 되었는데’하면 너도나도 당연하게 시간을 비웠다. 놀다 보면 자정이 넘고 집에 가자니 못다 한 이야기가 아쉬워 발목을 붙들었다. “그러면 자고, 내일 가면 되지” 한 것이 10년이 넘도록 1박 2일 모임이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리 집 여기저기서 편안한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좋았다. 먼저 일어난 누군가와 커피를 앞에 두고 속삭이는 시간도 즐거웠다. 내게 행복에 대해 묻는다면 첫 번째로 이 아침 풍경을 이야기할 것이다.
미술학원에서 만나 화실을 꾸리고, 함께 대학을 가고 같은 꿈을 키우던 사람들. 그중에는 단짝이 된 남편도 있다. 맨몸에 패기만 걸치고 펜촉 하나에 미래를 맡기던 시절부터 각자의 꿈을 이룬 지금까지, 청춘의 역사를 함께한 것만으로도 우리는 굳건한 동지다. 학원 사람들에서 ‘우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던 지점은 내 인생의 분명한 터닝포인트라 할 수 있다.
‘다정한’, ‘덕분에’도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우리>이다. 사람과 가장 닮은 말이기도 하고 다른 수식어가 없어도 든든한 기분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라서 외롭지 않았고 ‘우리’이기에 견뎌낼 수 있었던 많은 경험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로 묶이는 일에도 서로를 지켜주는 적당한 거리와, 각자의 울타리로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린 날에는 잘 몰랐었다. 그저 오늘 만났다면 내일은 ‘우리’로 불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만큼 상처받고 관계에 미련을 두는 내게, 남편이 진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부재가 나를 사람들 안에 있게 하고 그 속에 있음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나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관계에 몰두하던 내 모습들이 객관화되면서, 껍데기 하나가 벗겨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나는, 그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국민학교에 들어가서부터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할 때까지 등본을 제출하는 일이 가장 불편했다. 등본 안에 나는 할머니와 함께 둘째 큰아버지의 집에 사는 동거인에 불과했다. 새 학년마다 담임 선생님이 “부모님은 안 계시나”하고 물으셨다. 나를 제대로 보여주기도 전에 불행한 아이로 만들어 버리는 그 질문이 몹시 거북스러웠다. 혼인신고 후에, 신랑이 내민 등본에는 우리 둘의 이름만 적혀있었다. 마치 혹 하나를 떼어낸 듯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입을 대지 않는 나의 울타리를 갖게 된 것이다. 할머니와 둘째 큰아버지께 더없는 사랑을 받았음에도 마음 한편으로는 내가 속한 공간을 불안정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신랑의 말대로, 자각하지 못했을 뿐 누군가와 함께하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우리’라고 불리는 것으로 엉성한 나의 울타리를 메꾸려고 애썼을지 모른다.
그때, 사람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결핍에 의해 억지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지 고민을 했었다. 사람에 대해 무심한 척도 해봤지만 고질적으로 박힌 습관은 쉬이 가시질 않았다. 다만 버둥거려 보아도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는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생각해 보면 관계에서 오는 괴로움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부모의 부재와 상관없이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할 숙제일지도 모른다.
관계가 주는 온기와 냉기를 왔다 갔다 하며 나이를 먹고 보니 사람을 가까이하려는 이유가 좋아해서든지, 혹은 보상심리 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돌아보면 곁에 늘 도와주는 이들이 있었다. 어린 조카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장가도 가지 않고 기꺼이 아버지가 되어준 둘째 큰아버지가 그랬고, 사회에 긍정적으로 발을 내딛도록 따뜻하게 맞이해 준 첫 일터의 원장님이 그랬고, 아무리 모자란 그릇을 내보여도 한결같이 보듬어주는 친구들이 그랬다. 그러니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만원 버스를 타거나 인파 속을 지날 때 나와 옷깃이 닿는 사람들을 보며 홀로 감상에 빠지곤 한다. 만약 전생이 있다면 그 사람과 나는 어떤 인연이었을까-
진실로 절친한 친구였거나, 연인이나 가족, 혹은 앙숙이었을지 모른다. 하루에 몇 번, 일 년에 수십 번 옷깃을 스치는 사람들이 모두 나의 전생과 맞닿아 있다면 ‘이 세상에는 소중한 사람들이 참 많구나.’라고 언제나 같은 결론이 난다.
이제 더는 사람에 대한 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상처받는다 하더라도 다시 사람으로부터 치유받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나는 재미있는 영상이 담긴 신랑의 문자에, 에피소드를 늘어놓는 친구의 전화에, 김치는 다 먹었냐는 어머니의 말에, 언제 볼 거냐고 채근하는 ‘우리’들에게서 행복을 마주한다. 함께하는 사람들 덕분에 앞서가던 하루도 걸음을 멈추고 돌아본다. 그러면 무겁게 뒤따르던 아쉬움은 추억을 내려놓고 가뿐하게 저문다. 되도록 오래오래 우리들과 부대끼면서,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들을 오롯이 나의 손으로 건져 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