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골목의 연속이었다. 좁다랗고 울퉁불퉁한 길을 오르다 보면 갑자기 넓어지는 갈림길이 나왔는데 그 갈림길 앞에 우리 집이 있었다. 그곳에서 바라보면 학교 운동장이 펼쳐져있고 멀리 시장의 간판을 비롯해 도심의 빌딩들이 내다보였다. 골목이 굽이굽이한 동네인데도 할 수 있는 놀이는 다 했다. 숨바꼭질을 할 때는 총총히 늘어선 집들 중 아무 집이나 들어가면 그만이었고, 술래잡기를 할 때는 미로처럼 만나고 이어지는 골목이 제격이었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친구네 집이 쪼로미 있었다. 학교 앞에서 산 병아리를 닭으로 키워낸 유진이의 집도, 고무대야안에 몸을 구겨 넣고 다람쥐통이라며 깔깔거렸던 혜진이의 집도 거기에 있었다. 그 골목이 콘크리트가 아니라 나무길이었다면 벌써 닳아 반들반들 해졌을 테지. 비가 오는 날도 눈이 오는 날도 때로는 고무줄이나 종이인형, 살구 같은 것들을 챙겨 골목을 걸었다. 친구네에서 놀다가 늦은 날에는 배우지도 않은 축지법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그렇게 달려왔어도 대문이 잠겨있을 때면 할머니의 마음이 풀어질 때까지 골목을 뱅글뱅글 돌았다. 달밤에는 길이 더 좁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압력솥의 추가 칙칙 소리를 내며 골목을 메웠다. 티브이에서 나디아 오프닝곡이 흘러나왔을 때는 이번화를 건너뛰어야 한다는 사실에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아이가 리코더를 불다 혼나는 소리, 할아버지의 기침소리, 언니가 고함을 지르며 문을 닫는 소리, 맨날 마주쳐도 나만 보면 짓던 개는 밤중에도 변함이 없었다. 어떤 날은 위로가 되기도 했고, 어떤 날은 조금 슬프기도 했던 골목의 소리들이었다.
중학교를 하교하던 때였다. 멀리서 엄마가 내 이름을 불렀다. 몇 년 만에 마주했는데, 어떻게 단번에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친구들에게는 당연한, 그러나 나에게는 몇 번 없었을 찰나. 내게도 엄마가 있다는 사실에 어깨가 펴지는 순간이었다. 자장면을 먹는 동안 그녀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자신은 요즘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집에 할머니나 큰아버지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엄마와 골목을 걸어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엄마는 이만 원을 손에 쥐어주었다. “내가 그때 조금만 참았다면 아빠와 헤어지지 않았을 텐데.” 조금만.. 나는 여덟 살부터 삶의 절반을 엄마가 없는 아이로 살아내는 중이었다. 차라리 아빠와의 시간이 고통이었다 말했으면 덜 억울했을까. 그런 단어로 뱉어낼 수 있는 일이었다니 어딘가 바스러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가고, 집으로 바로 들어갈 수가 없어 골목을 돌았다. 어릴 적처럼 뱅글뱅글, 익숙한 골목을 돌다 보니 변함없는 풍경들이 나를 붙들어주었다. 이 길을 지나면 우리 집이 있고, 그 안에 고봉밥을 내미는 할머니와 장가도 마다하고 조카를 돌보는 큰아버지가 있다고. 골목 끄트머리까지 가는 동안 부서진 곳을 다듬었다.
수년이 흘렀어도 골목은 존재했다. 친정은 빌라 5층에 있었는데 할머니는 내가 집으로 갈 때면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나도 골목의 모퉁이 앞에서는 걸음을 멈추고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멀리 있지만 세상 아쉬운 표정을 하고 있을 할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들어가라는 손짓을 아무리 해도 먼저 문을 닫는 일이 없었다. 그 모습이 오래도록 생각날 것 같아서 사진으로 남겨 이따금씩 꺼내어본다. 항상 길을 꺾어야 할 때면 미안함이 올라와 언제쯤 발을 떼어야 할지 망설이곤 했다. 사랑한다고 자주 말해주지 못해서, 머뭇대던 나의 걸음이라도 할머니에게 닿았다면 좋을 것 같다.
골목의 기억이 그것뿐이겠는가. 데이트를 하고 돌아올 때도, 좁은 길은 약을 올리듯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다. 그 길의 끝에는 늘 집이 있었으므로 손을 더 꼭 잡는다거나 아쉬움의 말을 쏟아내거나 하면서 우리의 인사는 거창해졌다. 부푼 마음이 작아질 때까지 지겹도록 드나든 길을 몇 번이고 돌아보았다.
내 절반의 추억들과 걸음들이 그곳에 있다. 골목을 거니는 동안 산다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고, 내가 나의 집을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소중한 삶들이 골목을 밝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진다 해도 그 길 끝에는 쉴 곳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것도 골목이다. 어떤 날은 환희로 가득 차 걸었고 어떤 날은 시린 마음을 부여잡고 걸었을 테지만 지극히 평범한 하루들이 쌓인 골목이 때때로 그립다. 누구나 지나온 골목 하나쯤, 마음에 그려놓고 살겠지. 빛바랜 골목 위에 반짝이고 있을 시간의 조각들이 궁금해지는 날이다.